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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퐁투아즈/20150517]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는 순간, 퐁투아즈 중세축제(Medievald'Oise)

 퐁투아즈는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고흐가 살았던 마을인 오베르 쉬르 우와즈를 지나는 환승역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프랑스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마을이다. 퐁투아즈는 프랑스와 영국, 두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은 큰 전쟁인 백년 전쟁 당시 가장 큰 전투가 벌어졌던 마을 중 하나이다. 한 세기 동안 수십번이나 점령국이 바뀔 정도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곳이다. 그리고 마침내 3개월간의 포위전 끝에 1461년, 샤를 7세가 영국군에게서 퐁투아즈를 탈환하고 이를 계기로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어 프랑스는 영국군을 프랑스 영내에서 완전히 몰아내게 된다. 중세의 끝자락에서 프랑스란 나라를 구해내고 성공적인 중앙집권국가로 탈바꿈하게 되는 데 퐁투아즈가 오를레앙만큼이나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중세 축제라지만 전체적인 축제의 포커스가 15세기인 것은 이러한 역사적 연원에 근거한다. 아마도 영국군의 점령에서 벗어나 마을과 주변 지역이 완전히 프랑스의 영토에 편입되고 백년 전쟁의 승기를 잡은 것을 기념하는 일종의 재생 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기예보를 봤을 땐 날씨가 흐리고 빗방울이 살짝 떨어질 예정이라고 하기에 걱정을 했지만, 걱정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날씨가 화창했다. 여태까지 내가 본 성당들에 비하면 너무나 작고 볼품없을 만도 한 퐁투아즈의 노트르담 성당이 꽤나 낭만적으로 보였던 것도 전부 날씨 덕택이 아닐까 싶다. 파리나 루앙 등의 웅장한 대성당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성당이지만 퐁투아즈의 노트르담 성당은 마을의 상징임과 동시에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12세기에 지어진 이 성당은 지금까지도 마을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는데, 피를 말리며 영국군과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서도 마을 사람들을 묶어주고 프랑스라는 귀속 의식을 가지게 해주는 데에는 이 성당과 신앙심의 힘도 상당히 컸을 것이다. 아마 고려 사람들이 불심으로 팔만대장경을 만들면 몽고의 침입을 격퇴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듯, 그 시대의 사람들 역시 신에게 기도를 드림으로써 영국군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포스터에서도 보이듯이 금년도 축제의 테마는 ‘용’이다. 요즘 <왕좌의 게임>이 소설이든 드라마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어서 용을 테마로 삼았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리고 이번의 테마를 재확인 시켜주듯, 축제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철로 만든 용과 함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대장간이 가장 먼저 들어온다. 철제 모양의 용은 제법 그럴싸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사실 서양의 드래곤(Dragon)이라는 개념을 ‘용’으로 번역하기에는 여러모로 오류가 많다. 동양의 용은 가뭄에 비를 내려주고, 날씨 전반을 관장하는 영물이지만, 서양의 용은 고대에는 신이었다가 중세에 들어와서는 불을 관장하는 악마로 변형된 면이 많아서 둘을 같은 개념으로 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당장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용만 봐도 불의 속성이고, 영물이라기보다는 위험한 양날의 검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니벨룽의 반지의 주인공인 지크프리트나 성 게오르기우스 같은 영웅들이 용을 퇴치한 전사들이라는 것도 이와 같은 속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더불어 불의 속성인 만큼 불을 다루는 대장장이라는 직업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생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퐁투아즈 마을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용과 대장장이의 모습은 꽤나 멋졌다. 물론 용 신앙이 거의 사라진 후기 중세와 용은 다소 생소한 조합이기는 하다. 허나 성 게오르기우스가 용을 무찌르고 평화를 찾은 것처럼, 백년전쟁 당시의 퐁투아즈 사람들도 영국군을 무찌르고 프랑스를 지켜냈으니 아주 이상한 조합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마을 축제는 15세기를 중심 모티브로 삼아 당대의 상점이나 직업들을 재연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인 무기와 갑옷을 진열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해놓은 텐트였는데, 이 텐트는 백년전쟁을 집중적으로 고증했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에게 무기를 쥐어주면서 무기의 용도와 만들어진 시기, 그리고 백년 전쟁을 거치면서 변화한 프랑스 무기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참가자 아저씨의 목소리와 태도에서는 굉장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축제에는 가족 단위로 놀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파리 근교는 가족 단위의 거주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사실을 이런 곳에서 새삼 확인하게 된다. 아무래도 대도시보다는 넓은 마당이 있고 뛰어 놀만한 공원과 놀이거리가 있는 곳이 어린아이들에겐 더 좋겠지. 어른들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활발하게 노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아이들은 그저 모든 것이 신기하다. 어떤 아이들은 마녀나 괴물로 분장한 행렬에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신기한 것을 쫓아다니기에 여념이 없다. 아무리 부모가 진정하라고 타이르고 혼도 내 보아도, 그런 것쯤은 상관없다는 듯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두리번거리고 만지기에 정신이 없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체험공간은 무기이지만, 축제에서는 무기뿐만이 아니라 중세 기사들의 마상시합을 재연한 승마 쇼도 진행한다. 그 외에 중세식의 글씨체 필사와 놀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들 역시 백년 전쟁 이후의 시기인 15세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져 진행된다. 이 시기는 백년 전쟁에서 승리한 후 프랑스 영토 내에서 영국군을 완전히 몰아낸 시기이며, 동시에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과도기이자 프랑스가 유럽의 강대국으로 서게 되는 발판을 마련하는 시기이다. 그런 만큼 그 시대의 중심이 되는 계기를 제공한 백년전쟁 퐁투아즈 마을의 전투가,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지키고 기억해야 할 가치가 있는 과거로써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퐁투아즈 마을은 아주 작아서 두어 시간이면 마을 중심을 다 훑어볼 수 있다. 파리에서 기차로 한 시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이지만, 북적북적하고 다양한 인종과 언어로 가득 찬 세계 도시 파리와 달리 퐁투아즈는 15세기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조용한 마을이다. 그리고 이 조용한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요정이나 괴물로 분장하고 중세의 음악을 연주하며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음악대의 퍼레이드이다. 뾰족한 귀와 커다란 코가 달린 사람들이 닭과 악기를 들고 다니며 중세 시대의 광대들이 정기 시장에서 부린 재주를 선보인다. 아이들이 음악대를 따라다니며 꺄르르 웃는 모습이 피리를 불며 쥐와 아이들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가 등장하는 하멜른의 전설을 연상시킨다. 퐁투아즈 축제 피날레에서 마을을 한 바퀴 돌며 눈과 귀를 사로잡는 음악대들을 보니 하멜른의 사나이를 비롯한 각종 중세의 전설들이 어디서 모티브를 따왔는지 알 것 같았다.














 독일의 축제는 엄밀히 말하자면 독일의 축제가 아니다. 슈투트가르트의 크리스마스 마켓과 봄 축제는 뷔르템베르크의 축제이지 독일의 축제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뷔르츠부르크나 뉘른베르크의 축제는 프랑켄 지역에 속한 해당 도시 고유의 축제이고, 프랑크푸르트의 카니발은 자유 도시 프랑크푸르트의 축제이며, 뮌헨의 축제는 바이에른의 축제이다. 하지만 퐁투아즈의 축제는 확실히 프랑스의 축제이다. 영국군을 물리친 역사의 자부심이 실현된 곳이며, 동시에 프랑스라는 나라를 존재할 수 있게 한 마을 사람들의 저항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곳이다. 이는 그만큼 두 나라가 걸어온 역사적 자취가 상반됨을 의미한다. 중세적 봉건 자치의 흔적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 독일과 달리, 프랑스는 유럽 최초의 ‘성공한 중앙집권 국가’라는 것이 여기서도 증명되는 셈이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나라이지만 전혀 다른 두 나라가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던 곳은, 의외로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