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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토리노/20150604-20150607] 고상함과 즐거움 사이의 간격

 


 시간은 참 빨리 간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의 시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뜨거운 태양이 강하게 내리 쬘 때는 '아, 도대체 이놈의 더위는 언제나 되어야 들어갈까' 싶은 생각을 하며 어서 밤이 되길 기다리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그 장소의 시간은 엄청나게 빨리 흘러가버린다. 거의 절반은 충동으로 인해 시작된 이탈리아 여행이었고, 얼른 일정을 끝내고 더위를 피해 파리로 가고 싶단 생각이 처음엔 강했지만 어느 새 3박 4일이 훌쩍 지나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괜시리 서운한 마음이 든다. 여행이란 다 그런것 같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토리노에는 박물관이 정말 많다피에몬테 지방의 수도라고는 해도 서울이나 파리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도시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른 개 가까운 박물관과 대여섯 개에 이르는 대형 극장이 성업 중이다그만큼 사람들이 문화를 중시하고문화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함을 의미한다이탈리아도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지갑을 꽁꽁 싸매고 얼어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한국보다 더 어렵고 빠듯하다는 뉴스는 가득하지만 실제로 가 본 이탈리아는 냉랭하기는커녕 활기가 넘쳤다레스토랑과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차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고사람들은 아이스크림이나 맥주를 하나씩 손에 들고 여름을 즐기기에 바빴으며박물관과 극장에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나중에 이탈리아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경제가 어려워도 좋은 음식과 문화생활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 조건이다국가 경제가 어렵다고 개인의 삶이 불행할 필요는 없다더 즐겁게 살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더라생각해보면 토리노에서 만난 이탈리아인 택시 기사 아저씨들도 똑같은 소리를 했었다국가가 어렵다고 당장 내가 모든 행복을 포기할 필요는 없고그 어떤 상황에서든 개인의 행복한 삶이 우선이라는 이야기를 말이다혹자는 이를 두고 그렇게 놀기만 하니까 너네 경제가 그런 거지!’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릴 수도 있겠지만한편으로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굳이 애써 거창한 목표에 맞춰 개인의 행복을 깎아가며 사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실제로 이탈리아 사람들은 재미있게 산다하지만 순간의 쾌락에만 치중하지 않고 문화적 자산을 누리는 것 역시 중요하게 여긴다토리노에 자리한 박물관들이 사람들로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는 현상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마지막 날의 첫 일정으로 내가 택한 곳은 카푸치니 언덕이었다. 토리노에서 가장 높은 카푸치니 언덕에는 예배당 겸 산 박물관으로 쓰이는 바실리카 양식의 건물이 있다. 애석하게도 내가 갔던 날은 예배가 진행이 되고 있어서 박물관을 둘러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런 것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언덕 꼭대기에 올라서 본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박물관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나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에 살이 익을 것만 같은 따가움 정도는 신경 쓸 것이 못 되었다. 카푸치니 언덕에서 본 토리노의 풍경은 몰레 안토넬리아나 전망대에서 본 첫날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둘 다 아름다웠지만 몰레 안토넬리아나에서 본 풍경이 모든 것을 미니어처로 축소시킨 것 같은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었다면, 카푸치니 언덕에서 본 풍경은 위대한 문화유산들을 살아있는 그대로 나열한 파노라마 같았다. 전자는 고공에서 축소된 공간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라면, 후자는 장엄한 역사의 흔적이 스펙트럼처럼 지나가는 시간의 파노라마를 마주하는 기분이다. 더불어 첫날에는 몰레 안토넬리아나 전망대에 올라갔기 때문에 정작 이 건축물의 형상을 보지 못했는데, 그 맞은편의 카푸치니 언덕에 올라서자 붉은 빛의 건물들과 푸른 녹음들 사이에서 진주처럼 빛을 발하는 건축물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와 더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하얀 색과 붉은 색의 돌들이 어우러진 고전적인 도시의 모습 사이에는 은빛을 내며 다이아몬드와 진주처럼 빛나는 세련된 첨탑들이 솟아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푸른 자연의 빛이 녹아들어서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색깔들이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공감각적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에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이탈리아의 태양은 강렬함을 넘어 온 에너지를 쏟아 이글거리는지라 썬글라스를 착용해도 눈이 부시다. 하지만 태양빛이 부서지면서 풍경위에 쏟아져 내리는 광경은 태양 그 자체보다 더 눈이 부셨다. 아마 로마인들도, 사보이의 사람들도, 모두 강 건너의 카푸치니 언덕에 서서 보이는 도시의 전경을 보며 나와 같은 감격을 느꼈을 것이다.



















 카푸치니 언덕에서 내려와 시내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 내가 향한 곳은 이집트 박물관이다. 토리노 이집트 박물관은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컬렉션을 지닌 이집트 연구의 메카이다. 1824, 사보이 백작이자 이집트 미술품 수집가이던 베르나르디노 드로베티에 의해 건립된 이 박물관은 고왕국 시대부터 초기 기독교 시대를 총망라하는 다양한 이집트 유물들이 소장하고 있다. 마침 내가 갔을 때에는 박물관이 긴 공사를 끝내고 개장한 지 한 달 반 정도 되었던 시점인지라 사람이 정말 많았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시민들 역시 너나 할 것 없이 나와 줄을 서고 있었다. 그만큼 이 박물관이 높은 유명세와 인기를 치르고 있음을 반증하는 현상이다. 한편으로는 경제가 어려워도 문화에 대한 관심과 박물관에 대한 높은 애정에 부러움이 먼저 든다. 국가 재정이나 경제가 어렵다고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희생과 행복 반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수록 더더욱 인간다운 삶의 질을 유지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열심히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매일같이 남유럽 지중해 국가들은 놀기만 해서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그저 과다 노동과 빈곤한 여가생활에 치이는 것을 합리화 하기위한 대상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리노 이집트 박물관은 과연 그 명성이 아깝지 않은 곳이었다. 어릴 적 세계사 책과 백과사전을 보면서 이집트에 대한 동경을 키웠고, 지금도 여전히 이집트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지라 박물관을 둘러보는 내내 즐거웠다. 토리노 이집트 박물관은 그저 훑기만 하는 데에도 3시간이 턱없이 모자라는 방대한 규모의 박물관이었다. 더불어 규모 뿐 아니라 전시물의 역사적 가치와 심미성 역시 나무랄 데가 없었다. 죽은 자가 저승 세계에 가서도 별 탈 없이 이승과 같은 평안한 삶을 누리기를 기원하던 사자의 서와 각종 부장품들, 신의 세계를 지상에 구현하기 위해 독특한 각도로 그려진 벽화와 부조들, 얼핏 보기엔 딱딱하고 부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눈과 입의 끝 부분 같은 작은 곳에서 생동감이 느껴지는 조각들까지. 분명 내가 있는 곳은 이탈리아 이지만 마치 이집트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달리 유리벽 안에서 고고하게 허리를 펴고 나를 내려다보는 조각들의 모습은 살아있는 사람 마냥 생생했다. 이집트 하면 떠오르는 미이라의 저주같은 괴기스러운 공포의 이미지는 전혀 없었다. 그저 한 때 찬란하게 꽃을 피우며 인류 역사의 새벽을 밝혔지만 지금은 사막과 정치적 혼란의 한 가운데에서 씁쓸하게 방치된 위대한 문명의 가장 아름다운 흔적만이 있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연도 참 짓궂기 이를 데 없다. 한 때 유럽 세계를 호령하던 로마와 사보이의 도시, 이탈리아의 옛 수도에서 제국주의의 유산으로 남은 인류 문명의 새벽을 만난다는 그 자체가 우연치곤 너무나도 절묘하다. 인간사는 어디로 갈지 알 수 없고,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파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에 내가 토리노에 작별을 고하면서 마지막으로 걸은 거리가 바로 비아 가리발디(Via Garibaldi)이다. 토리노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이곳은 상점과 카페, 레스토랑이 밀집된 상업거리이기도 하다.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일요일에 문을 여는 곳이 거의 없었지만 이탈리아에선 관광 성수기 한정으로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곳이 많다고 한다. , 7월이나 8월의 경우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지속되기 때문에 한낮에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는 것을 필수라고. 일요일이지만 활짝 열린 상점가와 테라스에 앉아서 여유롭게 식사나 음료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여유가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개성 있게 잘 차려입은 것이 눈에 띄었다. 파리지앵들도 멋쟁이지만 파리지앵들의 패션이 단조로운 무채색을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이는 변주곡의 향연이라면, 이탈리아인들의 패션은 체형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스스로의 신체에 대한 자신감과 즐거움을 드러내는 화려한 색깔들의 축제라 할 수 있다. 심지어 나이 들어서 주름이 지고 살이 찌고 배가 나온 체형의 사람들이라도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고 어울리는 옷을 입는다. 획일적인 기준으로 재단된 즐거움이 아니라, 정말로 삶을 사랑하고 현세의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큰 기쁨이다. 아마도 나는 이 사람들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토리노에 또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차에 올랐다. 이탈리아의 태양도 프랑스의 태양 못지않게 아름다웠지만 조금 더 강렬했다. 그러나 그 따가운 태양이 싫지만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