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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제노바/20150604-20150607] 가장 생명력있는 푸른색



 내가 제노바에 간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연구 주제를 위해 책 속의 도시를 직접 내 몸으로 체험하고 확인하는 것, 두 번째는 작년에 우리 학교에 교환 연구생으로 왔다 친해진 이탈리아인 친구 다니엘을 만나는 것이었다. 제노바 출신인 다니엘은 토리노에서 공부를 마친 후 작년에 우리 학교에 연구 교류 차 왔던 이탈리아 교환학생이다. 비잔티움과 지중해 문화교류 및 십자군을 연구하고 있는데, 지금은 논문을 쓰면서 제노바에 살고 있다. 전공의 성격 상 내 주변에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지중해 국가 출신들과 세르비아,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등 발칸 반도 출신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고, 학교와 이쪽과의 교류도 상당히 활발하다. 다니엘 역시 이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학교에 왔었고, 그 때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즐거운 학기를 보냈다. 이번에 이탈리아에 온 것도, 절반은 다니엘을 보기 위함이었다. 기차 안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다가 다시 단조로워지다가를 반복하는 풍경을 구경하며 넋을 놓고 있다 보니 어느새 제노바에 도착해있었고, 제노바 역 앞의 광장에서 다니엘과 재회했다.


 토리노에서 제노바까지는 기차로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이렇게 보면 서울과 대전, 혹은 전주 정도의 거리인지라 둘 사이에 큰 간격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두 도시와 지역이 걸어온 역사적 자취는 판이하게 다르다. 켈트와 로마를 기원으로 하여 프랑스 문화가 더해져 성장한 토리노와 달리, 제노바는 갈리아와 로마의 영향이 뒤섞인 지역 방언과 바다를 통해 들어온 그리스, 아랍 등의 여러 문화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해양 도시이다. 피에몬테가 산악 문화와 프랑스의 영향을 자양분으로 성장한 북부 이탈리아의 세련된 귀족이라면, 리구리아는 해양을 통해 들어온 여러 문화의 혼합을 통해 만들어진 역동적인 용광로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것이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역사를 지켜냈어. 새로 지어진 현대식 고층 건물들도 많고, 신식 항구가 지어지면서 산업도시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오고 기존의 토착 문화가 옅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노바는 아주 특별한 곳이야. 왜냐면 우리는 유럽과 지중해를 휘젓고 다닌 사람들이거든.”









 이빨을 보이며 활짝 웃는 다니엘의 미소와 차분한 어조에서 자신감이 묻어난다. 근거 없이 자랑과 허세만 내세우는 자신감이 아니라, 깊이 역사를 이해하고 스스로의 문화에 대한 단단한 자긍심을 바탕으로 한 그런 자신감이다. 그도 그럴 것 없이 제노바가 유럽사와 세계사에 미친 발자취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제노바의 기원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은 점이 많지만, 일단 기원전 7세기 리구리아 인의 도시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역사서에 등장한다. 이후 로마의 해군 기지 겸 갈리아 식민 도시를 거쳐 11세기에는 상인 자치 조합과 지배 귀족의 단결을 통해 독립 도시로 자리 잡는다. 12-13세기에는 상인들의 지중해 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베네치아와 쌍벽을 이루는 지중해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다. 이 시기 제노바 인들의 활약상은 대단하기 이를 데 없다. 중세의 유일한 세계 제국이던 비잔티움의 심장부 콘스탄티노플에는 제노바 인들이 사는 제노바 거리가 있었고, 남프랑스, 이베리아, 시칠리아, 코르시카, 샹파뉴, 심지어 흑해 인근까지도 진출해 각 지역을 촘촘한 교역 망으로 연결한 것도 제노바 상인들이다. 제노바 공작의 궁전인 팔라초 레알레는 이러한 제노바의 과거 영광들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토리노의 팔라초 레알레는 왕의 궁전이지만 제노바의 팔라초 레알레를 누리던 주인들은 왕이 아니다. 바로 제노바를 대표하는 상인 가문이자 유럽을 주름잡던 대형 은행의 소유자이던 발비(Balbi)’ 가문의 저택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가를 상징하는 레알레(Reale, 영어로는 Royal)’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이 가문이 제노바에서 왕가에 해당하는 권력과 위세를 누렸기 때문이다. 현재 이 건물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고대부터 19세기까지의 예술품들을 아우르는 충실한 컬렉션으로 유명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정원이다.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가 힘든 제노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권력자의 저택은 크고 넓다. 더불어 전망 역시 좋다. 예나 지금이나 탁 트인 전망과 높은 곳에서 보는 풍경은 부와 권력의 상징인 것 같다.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우아한 조각과 연못의 연꽃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지중해와 항구가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풍경은 웬만한 명화보다도 훨씬 아름답다. 한참을 감탄을 하다 문득 정원 바닥을 장식하고 있는 모자이크가 상당히 눈에 띄었다. 각종 동물과 식물무늬들을 정교하게 수놓아 만든 모자이크는, 자세히 보니 조약돌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가공을 안 하고 작은 돌들의 자연적인 형태와 색깔을 조합해서 만드는 이런 모자이크는 오직 리구리아에서만 볼 수 있다. 단조로운 것 같지만 미묘하게 하나하나가 다른 조약돌들을 모아 균형감과 통일감을 이루는 모자이크를 만든다는 것이 신기했다. 정교하고 딱 떨어지게 세공된 것이 아닌, 비뚤배뚤한 자연의 돌들을 모아 만든 모자이크는 우아한 흰색 대리석 궁전과도 어울리고 푸르른 지중해의 하늘과 바다와도 잘 들어맞는다. 주어진 것을 가지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제노바 사람들의 미적 감각에 저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보통의 유럽 도시들은 도시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커다란 광장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제노바에는 광장이 없다. 왜냐하면 이탈리아를 관통하는 아펜니노 산맥이 지중해 목전까지 바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광장이 있을 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광장을 지을만한 평지가 아예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제노바의 거리는 크고 작은 경사가 진 언덕들과 구릉들로 이루어져 있고, 시가의 중심부 역시 산허리에 위치해 있다. 커다랗게 활용할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좁고 촘촘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연속으로 이어져있다. 마찬가지로 길도 좁아서 이사를 가거나 공사를 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시내에 자동차가 진입하는 것 자체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대하는 제노바 사람들의 삶에는 지중해 특유의 여유와 낙천성이 묻어난다. 제노바에서 가장 높은 언덕을 올라 시가 전체를 바라보면, 좁고 촘촘하게 이어진 건물들 때문에 숨이 막힐 법도 하지만 발코니와 옥상을 가득 매운 초록색으로 인해 오히려 싱그럽고 파릇파릇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거리도 좁고 광장도 없지만, 그만큼 창문과 발코니, 옥상에 정원을 만들어 정성스럽게 가꾼다. 멀리서보면 마치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현세에 재현된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비좁고 경사진 곳에 위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노바가 아름다운 것은,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열심히 자신의 삶의 공간을 가꾸고 애정을 쏟아 붓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가득한 싱그러운 식물들과 화사한 꽃들이 그 증거이다.

















 여타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제노바에도 교회와 예배당들이 많다. 중세 들어 본격적으로 번성한 도시인지라 중세의 흔적이 도시에 많이 남아있다. 허나 그 이전에도 여러 사회적 변동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있었기 때문에 도시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 전쟁 통에 완전히 폐허가 된 후 복구되지 않은 예배당도 있는가 하면, 무솔리니 시절의 건축계획으로 인해서 해체된 후 다른 곳에서 재조합되어 본래의 위치를 벗어난 건축물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노바에는 교회가 많다. 산허리에 시가지가 위치한데다 평지가 거의 없어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대신 작지만 아름다운 조형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제노바의 도시 구획을 확정하고, 복잡하게 얽힌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워낙 활용 공간이 좁은 구조 및 지리적 특성상 파리나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이나 쾰른 대성당같이 웅장한 건물은 없다. 하지만 규모가 꼭 아름다움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프랑스와 독일의 웅장한 성당이 주는 장엄한 고딕의 미학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노바의 교회 건축은 규모를 능가하는 섬세한 미술의 힘을 보여준다. 웅장하게 불뚝 솟은 고딕양식의 첨탑이 아니더라도, 건물 그 자체에 감겨져 있는 조형과 색채의 미로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인 건축물은 단연 제노바 최고의 교회인 산 로렌조(San Lorenzo) 성당이다. 검은색과 흰색의 대리석이 번갈아가며 줄무늬를 만드는 교회 건축은 유럽에 와서도 이 때 처음 보았다. 새하얀 대리석으로만 이루어진 여타의 성당들과 달리, 이 지역에서 나는 색색의 대리석을 활용해서 흑과 백의 두 가지 빛깔이 교차하는 독특한 건축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오래된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감각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세련미가 풍긴다. 심지어 흑백의 줄무늬는 잘못하면 굉장히 촌스럽고 어색할 수 있는 조합인데, 이를 돌의 재질 및 건축 양식과 적절하게 조화시켜서 화려한 색감과 아름다운 조형적 구조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발비 가의 궁전에서 본 리구리아 특유의 자갈 모자이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제노바 인들의 미적 감각은 정말 탁월하다. 물론 이탈리아인들의 미적 감각이 뛰어남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제노바의 건축과 예술에는 현대적인 도시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밀라노 브랜드들이 보여주는 감각이나 세련되고 귀족적인 토리노와 피에몬테가 풍기는 아름다움과는 다른 생동감이 있다. 새로운 문물 수용에 익숙한 바다 사람들 특유의 개방성과 활기, 해양을 통해 들어온 여러 문화의 융합, 그리고 이 지역에서만 나는 재료들의 개성이 조화되어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성당 벽면을 자세히 보면 팔 모양이 그려져 있는데 예전에는 성인 남자의 팔 길이가 길이를 재는 단위였기 때문에 건축과 측량에 참고하기 위해 성당 벽면에 이를 새겨놓았다고 한다. 원래 목적이야 실용적인 것이 우선이었겠지만 지금 보면 위트가 넘친다.
















 제노바 인들의 미감은 산 로렌조 대성당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도시 군데군데에 자리 잡은 예배당들과 교회들은 11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에 걸쳐 자리 잡고 있다. 건축뿐만 아니라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 그리고 각종 성인들의 조각 역시 이러한 종교 건축의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다. 제노바를 돌아다니다보면 건물마다 이러한 인물 조각상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이 조각들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다. 물론 건물을 꾸며주고 아름답게 해주는 장식적인 용도도 있었겠지만, 예수나 성인들의 형상을 일상의 공간에 재현함으로써 신앙심을 다지고 그들로부터의 수호를 기원하던 제단이기도 했다. 항상 변덕스러운 바다와 삶을 함께 해야 했던 그들에게 있어 신앙과 수호는 필수였을 것이다.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엄숙함이 느껴지는 중세의 건축부터 공작새의 날개만큼 화려한 바로크 양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물들이 좁고 오래된 길목과 퍼즐처럼 짜이면서 제노바라는 도시를 완성시킨 것을 보면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이 경이로움을 표현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나의 어휘와 인간의 언어를 탓하게 될 뿐이다. 시장에 위치한 교회 역시 인상적이었다. 독일의 뉘른베르크 중앙시장광장에 위치한 성모교회가 있기는 하지만, 광장도 아니고 완전히 "시장" 한복판에 교회를 건립한 것은 제노바의 교회가 유일하다. 상업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상인들의 도시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생업과 정신문화가 종교와 결합하여 형상화된 것이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이 도시를 만든 사람들의 역사와 현재진행형인 삶,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바다이다. 청바지를 뜻하는 영어의 블루 진(Blue Jean)제노바의 푸른색이 어원인 것처럼, 제노바 사람들은 바다를 사랑하고 그에 따라 바다의 색깔인 파란색을 가장 좋아한다. 농경지가 부족한 지리적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나가야만 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지만, 이를 잘 개척하여 비잔티움과 십자군을 좌지우지하고 나아가 전 유럽의 경제권을 쥔 심장으로 성장하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부스가 제노바 출신인 것도, 제노바에서 가장 많은 보물을 지닌 예배당을 건립한 가문이자 모나코 왕가를 만든 그리말디 가문이 사실은 제노바의 해적 출신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바다, 지중해는 곧 제노바이고 제노바는 지중해인 것이다. 비옥한 농토도, 풍성한 과실도 없지만 바다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한 사람들의 역사가 아름다운 도시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어지럽고, 정신없고, 뜨거운 태양빛에 익어버릴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다시 가고 싶은 것은 도시가 자아내는 활기찬 소리와 감각적이고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겹쳐져 내게 드리워졌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