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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프로방/20150614] 시간을 거스르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매뉴얼

 파리 근교의 샹파뉴 가는 길목에 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작은 마을이 있다. 바로 프로방(Provins), 12세기의 중세 성채와 마을의 모습이 거의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는데다 중세부터 내려온 지역 특산품이 여전히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중세의 모습과 문화가 잘 보존된 마을 특성을 살려 주기적으로 계절마다 축제가 열리는데, 그 중에서도 여름에 열리는 프로방 중세 축제가 가장 유명하다. 지난 3, 트루아에서 파리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만난 여학생의 추천으로 우연히 알게 된 마을이라 언젠가 한번 가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6월에 32번째 중세 축제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굳혔다.












 프로방은 행정적으로는 일 드 프랑스에 속한 파리 근교 지역이지만, 역사적으로는 파리보다는 샹파뉴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곳이다. 파리에서 트루아로 가는 길목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이 마을은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서 두 지역을 연결시키는 중계무역으로 번성한 중세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축제 역시 마을의 전성기이자 샹파뉴의 전성기이던 13세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잔 다르크와 백년 전쟁 승리를 모티브로 해서 15세기에 맞춰진 퐁투아즈의 축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프로방의 구 시가지는 아주 잘 보전되어 있다. 12세기에 지어진 성벽과 요새, 샹파뉴 백작 티보가 봉헌한 성당, 그리고 시내의 상점가와 민가, 거리까지 모든 것이 원형에 가까운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축제에 참여하면서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상점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모두 중세의 복장을 하고 있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서양의 중세 관련 축제는 인터넷을 통해 사진으로 많이 봤지만, 확실히 유적과 역사적 스토리를 가지고 진행되는 축제는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텐트를 치고 갑옷과 무구를 정비하는 대장간, 검을 들고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기사들,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들까지. 인파에 휩쓸리면서도 그 번잡스러움이 싫지 않은 것은 고풍스러움과 아늑함이 공존하는 중세 마을의 분위기와 활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축제를 관람하러 온 방문객들 역시 다수가 중세의 복장을 입고 있다. 일종의 코스튬플레이인데 중세 복식의 사람들은 입장료가 무료인지라 이게 꽤 인기라고 한다. 프로방의 축제는 파리지앵들 역시 갖가지 코스튬을 차려입고 평소와는 다른 세계를 만끽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때가 아니면 일상 속에서 판타지와 같은 체험을 하는 일은 없으니 때로는 이런 식으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도 꽤 멋질 것이다. 파리에서 프로방으로 가는 기차가 중세 복장으로 치장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모든 것들은 12세기의 모습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만큼 무섭고 오싹한 소재들도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나병환자수용소이다. 예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병환자들은 모두 마을 외곽에 격리 수용되었는데 중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병환자들은 악마의 저주를 받은 사람으로 여겨졌고, 이에 따라 저주가 마을 전체에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을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격리되어서 각 장원의 보건위생 법령 하에 통제받게 되었다. 기독교에서는 나병을 윤리적 타락에 의한 질병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다루었고, 일부 공동체에서는 이들의 공민권을 박탈하기도 했다. 물론 부자나 귀족으로 태어나면 나병에 걸려서 나환자촌으로 들어가도 굶어 죽지는 않았다. 사회와 격리되었을 뿐 금전으로 인한 기존의 혜택은 모두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노들에게 있어서 나병이란 곧 죽음과 동의어였다. 그저 식사제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열악한 수용소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이 이들의 운명이었다. 나병 환자로 공식 선고를 받고 격리가 되는 과정은 일종의 모의 매장이었던 것이다. 프로방의 축제에서는 이 모든 것들을 그대로 재현한다. 나병 환자들이 치르는 격리 의식, 수용소에서의 생활, 그리고 시체를 운반하는 과정까지 모두. 예나 지금이나 전염병은 무서운 재앙이고, 특히나 대다수의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거대한 저주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신을 믿는다면 현세의 힘든 삶이 끝나고 천국에 가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희망과 믿음이라도 없다면 매 순간을 버틸 수가 없었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분명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은 모두 재현에 불과한 레플리카들인데, 어째 그것들이 실제의 중세 사람들인 양 생생하게 다가와서 그런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축제의 백미는 중세의 마을 축제와 직업 및 공동체별 퍼레이드를 재현한 대행진이다. 각 공동체의 상징을 나타내는 깃발과 복식을 차려입고 행진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띤다. 기사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주군 가문의 깃발을 들고 맨 먼저 행진에 나선다. 그리고 이어서 각 마을과 직업군별로 무리를 이루어 행진을 시작한다. 기사나 영주들에게 있어 중세의 행진은 축제나 기념일에 자신들의 권위와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본인의 사병대를 사열하거나, 혹은 광대를 고용하여 흥을 돋기 위해 재주를 부리도록 하였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행차하면서 과시를 하는 행렬과 달리, 행진은 유흥 그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보다 장식적인 무장이 주를 이룬다. 이들 역시 축제 날 만큼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엄격한 위계체제와 종교로 통제되던 시대에서도 축제는 억압에서 벗어나 합법적으로 일탈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어느 계급이든 축제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기사들뿐만 아니라 길드의 조합원들, 농민들, 그리고 어린 아이들까지 광대의 재주와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행진에 참여한다. 더불어 축제를 위해 마련된 각종 놀이터에는 어린 아이들과 도박꾼들로 가득 차 생기가 넘친다. 축제가 즐거운 것은 어디 중세인 뿐일까. 매일매일 쌓이는 일과 복잡한 도시생활이 주는 피로의 연속선상에 놓여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축제는 빡빡한 일상을 벗어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아름답고 고즈넉한 중세의 마을을 가득채운 중세 행렬과 이를 구경하는 현대인 관람객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장면이 어색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어디까지나 현대에 재현한 이벤트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속에서 이미 지나간 시대를 볼 수 있는 것은, 중세와 현대 사이를 관통하며 흐르는 공통적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축제를 개최하는 것은 관광수입이 주된 목적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마을의 역사를 기억하고, 마을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며 공동체 구성원들의 결속을 다지는 것도 축제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퐁투아즈 마을 사람들에게는 성녀 잔 다르크의 가호 하에 영국군을 몰아내고 완전히 프랑스로 귀속된 해가 마을의 기념적인 시간이라면, 이곳 프로방의 사람들에게는 프랑스 왕도 능가할 정도로 강력하던 샹파뉴 백작 티보와 그가 이룩한 번영의 시기가 가장 기념할만한 마을의 시간인 것이다. 이제 시대가 변하고 번성하던 마을도, 전 프랑스에 명성을 떨치던 샹파뉴의 상인들도, 십자군 원정에 참여해서 딸을 라틴 제국 황후로 옹립할 정도로 권세를 누리던 샹파뉴 백작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억하는 축제는 여전히 남아서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방문객들의 일상에 활력을 넣어주고 있고, 나아가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삶에 독특한 재미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박제가 되어버릴 수 있는 역사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응용되어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란 책장 속에 모호하게 박혀있을 때 보다, 사람의 삶 속에 스며들어 살아 있을 때 가치를 발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