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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여행

[아미앵/20151125] 무거운 아름다움과 가벼운 순간 11월 마지막 주에 모든 세미나가 휴강이 되었다. 지도교수님을 비롯해 연구소 동료들이 외부 학회에 참여하게 되어서 불가피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초보를 갓 벗어난 지라 딱히 어디 학회에 참여하지도 않고 공짜로 한 주의 휴가를 얻은 것은 나쁘지 않다. 작년 이맘때는 수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동적으로 슈투트가르트로 첫 여행을 떠났었는데, 올해는 뭐가 지나갔는지 짐작도 안 될 정도로 정신없는 11월을 보내다 뜻밖의 휴가를 맞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껏 맞은 모처럼의 휴가인데 집과 도서관만 드나들기엔 어쩐지 아쉬운 듯한 기분이 들어 결국 아미앵으로 가는 기차표를 구입했다.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인지라 당일치기로 부담 없이 갔다 올 수 있는데다 그 유명한 아미앵.. 더보기
[스트라스부르/20150917] 장밋빛 베일의 성모 스트라스부르는 여러모로 내게 의미 있는 곳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이자 나의 프랑스 생활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친구인 쥐스틴이 사는 곳이고, 20대 초반 감명깊에 읽었던 소설 의 주인공인 아드소의 기억 속에 가장 또렷하게 자리 잡은 것으로 언급되는 대성당이 있는 곳이다. 소설 속에서 아드소는 스트라스부르의 대성당을 떠올리면서 느낀 감동을 생생하게 묘사하는데, 그 대목때문인지 스트라스부르라는 이름을 들으면 장밋빛 자태를 뽐내는 웅장한 대성당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처음 스트라스부르에 갔을 때, 눈보라와 비가 뒤섞여 휘몰아치는 날씨 때문에 정신없이 우산을 피던 와중에도 거대한 장미를 연상시키는 대성당의 붉은 피부와 위엄있는 자태에 넋을 잃었었다. 종교를 믿지 않는 현재인인 나의 눈에도 신비로움의 극치.. 더보기
[라 로셸/20150712-13]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자들의 도시 하룻밤을 보내자 어느 새 마지막 날이 되었다. 1박 2일 여행은 이런 점이 참 아쉽다. 하지만 시간이 짧기 때문에 한 순간이라도 아끼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돌아다니게 되는 점도 있으니 단기 여행이든 장기 여행이든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고로 천천히 라 로셸 구 시가지와 구 항구 주변을 산책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름의 라 로셸은 도착한 날이나 떠나는 날이나 모두 아름답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답게 훌륭한 풍광을 자랑하지만 부산이나 마르세유, 노르망디 같은 바닷가 특유의 거친 느낌은 없다. 그건 아마도 지금의 라 로셸이 대학생들이 많은 대학도시이자 은퇴한 부자들이 노년을 보내는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라 로셸은 우여곡절이 많은 도시이다. 이곳은 ‘삼총사’에 등장하는 .. 더보기
[라 로셸 (+ 액스 섬)/20150712-13] 하늘색 진주와 하얀색 바다 왜 갑자기 이곳으로 휴가를 떠나기로 결심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단순하고 충동적인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방학을 맞아 한국에 가기 전에 프랑스의 바다에 가고 싶다'고 중얼거렸고, 그렇게 충동적으로 표를 사고 짐을 꾸려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아침 기차에 올라 라 로셸로 향했다. 아직 새벽의 흔적이 가시지 않아 어두컴컴함이 도시 전체에 내려앉아 있었고, 새벽 일찍 일어난 지라 피곤했던 좌석 시트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었다. 종점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자 부스스하게 눈을 떴다. 기차를 타면 아무리 잠이 들더라도 한 번 정도는 깨는데 전혀 깨지 않고 그대로 계속 잠을 잤다. 몽롱한 채로 잠에 젖은 눈꺼풀을 애써 들어 올리고 역에서 내리자 따스한 태.. 더보기
[랭스/20150709] 자연의 선물과 왕들의 흔적 파리 동쪽에 위치한 샹파뉴 지방은 샴페인 와인으로 널리 알려진 지역이다. 그도 그럴 것 없이 이 지역의 특산인 탄산 와인 샹파뉴를 영어로 읽으면 샴페인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탄산이 들어간 와인만이 이 지역의 전부가 아니다. 물론 예로부터 와인과 미식으로도 유명한 곳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탄탄한 농업과 상업을 기반으로 번영하여 중세 프랑스에 전성기를 구가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중세의 샹파뉴 백작은 프랑스 왕보다도 더 강한 권력과 재력을 지니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베네치아와 협력해 십자군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이 후 프랑스가 중앙집권국가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도 이 지역의 농업과 상업은 큰 역할을 한다. 프랑스라는 나라가 생기는 데에 아주 중요한 물질적 태반을 제공한 지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더보기
[엑상프로방스/20150701-03] 한 여름밤의 꿈이 남긴 잔상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환상적인 이틀은 금방 지나가고 어느 새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떠나기 싫어서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조차 들지 않았지만, 체크아웃 시간이 곧 다가옴을 알리는 프론트의 전화를 받고 애써 일어나 짐을 챙겼다. 어쨌거나 여행이 아름다운 것은 일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니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다. 차곡차곡 짐을 개어 넣다 문득 내가 무언가를 잊어버린 것 같아서 잠시 앉아 골몰히 생각하니 그 유명한 프로방스의 시장에 가보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시간을 보니 오후가 멀지 않은 지라 조금만 지체하면 시장이 파할 것 같아서 서둘러 짐정리를 마친 후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기껏 이곳까지 와서 시장을 보지 못한다면 후회할 것 같았기에 정신없이 뛰어갔다. 다행히 시장은 내가 .. 더보기
[엑상프로방스/20150701-03] 여름 밤의 환상과 마법 환상적인 태양과의 첫날을 보내고 난 후, 시내에 있는 터미널에 가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계속 엑상프로방스에 머물 수도 있었지만 꼭 보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환한 태양빛을 받아 생장의 절정을 달하는 자연을 보면 기분이 남다르다.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싱그러운 태양과 자연을 보면 내 신체 역시 세포 속에서부터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역시 인간의 신체도 식물과 마찬가지로 태양빛을 쬐고 광합성을 하면서 활기를 얻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 물론 태양빛 알레르기가 있어서 구름이 낀 날씨가 더 맞는 사람도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삼 태양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지 느끼게 되는 .. 더보기
[엑상프로방스/20150701-03] 무엇이 행복이란 감각을 만드는가 파리는 프랑스이고, 프랑스는 곧 파리이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라서 굳이 한 번 더 쓰기도 지겨운 문구이다. 서프랑크 왕국과 카페 왕조 성립 이후, 유럽에서 줄곧 하나의 국가를 유지해온 유일무이한 중앙집권국가인 만큼 그 수도인 파리가 가지는 위상과 영향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가장 프랑스인들이 꼽는 프랑스적인 지역은 파리가 아니라 프로방스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흔히들 생각하는 '낭만적이고 예쁜 풍경'이라는 편견만 가지고 보자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파리는 어디까지나 거대한 도시 파리이지만, 프로방스는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답고 햇빛이 빛나는 보석 같은 장소이다. 한 마디라, 파리는 그냥 파리일 뿐이지만 프로방스는 프랑스의 보석이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을 가장 프랑스적인 지역이라.. 더보기
[프로방/20150614] 시간을 거스르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매뉴얼 파리 근교의 샹파뉴 가는 길목에 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작은 마을이 있다. 바로 프로방(Provins), 12세기의 중세 성채와 마을의 모습이 거의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는데다 중세부터 내려온 지역 특산품이 여전히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중세의 모습과 문화가 잘 보존된 마을 특성을 살려 주기적으로 계절마다 축제가 열리는데, 그 중에서도 여름에 열리는 프로방 중세 축제가 가장 유명하다. 지난 3월, 트루아에서 파리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만난 여학생의 추천으로 우연히 알게 된 마을이라 언젠가 한번 가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6월에 32번째 중세 축제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굳혔다. 프로방은 행정적으로는 일 드 프랑스.. 더보기
[도빌-트루빌/20150529-20150530] 다 잊어버리고 싶었던 날 (2) 다음 날, 언제 그렇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냐는 듯 날씨는 아주 쾌청했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으며 태양은 환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치 어제의 비바람은 없었던 일이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아쉽게 꼭 떠나는 날만 날씨가 좋냐는 생각이 들어 서운할 만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래도 떠나기 전에 맑은 하늘의 도빌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역시 같은 장소라도 날씨에 따라 인상이 확 바뀐다. 첫날의 도빌이 비바람을 쏟아내며 회색과 청색이 뒤섞인 우울한 우수를 자아내는 도시였다면, 떠나는 날의 도빌은 태양과 바다를 끼고 빛나는 새하얀 보석 같은 휴양지였다. 첫날에는 그렇게 우중충하게 각이 져 보이던 도빌 시내의 건물들 역시 태양빛을 받으니까 평화로운 동화마을처럼 보였다. 날씨라고 하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