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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쾰른/20150622-28] 재회, 회색의 고딕 도시


쾰른은 음울한 도시였는데 나는 그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독일인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도시를 엉망으로 설계할 수도 있으며, 쾰른이 특히 그렇다는 게 위안이 되었다.”


 미국의 여행 작가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이라는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라인 강 주변은 변덕스러운 날씨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특히나 겨울의 날씨는 음울하고 하늘엔 항상 우중충한 회색이 끼어있다. 여기에 거대한 대성당의 모습은 뾰족하게 치솟은 고딕 양식의 첨탑 때문인지 이 같은 날씨의 음울한 무드에 장중함을 더해준다. 프랑스와는 사뭇 다른 풍경들, 어두운 숲들이 가득 시야를 매운 차창을 구경하다보면 금방 쾰른 중앙역에 곧 도착한다는 방송이 귀에 들려온다. 그리고 수많은 기차가 오가며 거미줄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선로를 쳐다보다가 조금만 시선을 위로 끌어올리면 이내 거대한 대성당이 시야를 채워온다. 쾰른에 도착한 것이다.





 쾰른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지난 해 겨울, 첫 방학이던 크리스마스 휴가를 쾰른에서 보내고 다시 여름 방학의 시작을 보내러 쾰른으로 왔다. 다른 곳을 갈 수도 있었지만 굳이 쾰른에 온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지난번에 쾰른에 왔을 때에는 날씨가 정말 안 좋았고 우중충하다 못해 음침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물론 대성당은 아름다웠고, 박물관들이나 교회건축들은 보기만 해도 행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곳곳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맑은 하늘과 태양의 따스함을 느끼며 걸어서 도시를 구경하고 싶었고, 또 음산한 날씨 속에서 그로테스크한 매력을 자아내는 대성당 말고 푸른 하늘 아래에서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 대성당을 보고 싶었다. 더불어 한번쯤은 우산 없이 라인 강을 산책하고 싶었기도 했던지라 선택엔 큰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쾰른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너무 물렀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엉킨 실타래마냥 복잡한 선로를 지닌 쾰른 중앙역에 들어설 때, 창문은 빗방울로 가득 차 한치 앞을 볼 수가 없었고 여전히 하늘엔 회색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그리고 대성당 역시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그로테스크하고 음침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출발할 때 파리는 날씨가 굉장히 좋았지만, 국경을 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독일에 도착해있을 땐 이미 하늘이 잔뜩 젖어 있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작은 빗방울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에 내려서 출구로 나가는 순간 !’ 하는 탄성밖에 지를 수 없었다. 기차로 불과 3시간 거리이지만 어찌나 이리 다른 날씨인지. 파리에서는 짧은 상하의만 입어도 충분했지만 쾰른에 오니 자켓을 걸쳐도 오들오들 살이 떨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서 으슬으슬한 추위가 살갗 사이로 서려오는 날씨와 잿빛으로 가득한 풍경은 지난번의 쾰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날씨에 실망했지만, 비 내리는 하늘 아래에 우뚝 서있는 쾰른 대성당의 모습도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오히려 날씨가 흐리고 어두웠기에 고딕 무드가 더욱 돋보였다. 그로테스크함과 웅장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과 칙칙한 날씨는 정말 너무나도 독일 스럽고, 라인 강 답고, 쾰른 같았다.




 때마침 월요일인지라 박물관에 갈 수도 없어서 나는 시내 구경 겸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쾰른의 중심거리인 쉴더가세는 여전히 북적북적했지만 비가 오는 평일이라서 그런지 크리스마스 때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시 쾰른 시내를 걷고 있노라니 반가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를 반겨주는 것은 맑고 환한 하늘이 아닌 비 내리는 칙칙한 날씨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휴가를 보낸 추억이 있는 곳에 다시 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뻤다. 그렇게 나는 쾰른과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