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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풀다/20151217-20160103] 가장 우아하면서 가장 인간다운 얼굴 카셀의 공중정원에서 시간을 보낸 후 다음 날 내가 향한 곳은 풀다 였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시의 이름은 북부 헤센을 휘감는 풀다 강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카셀이나 마부르크 같은 도시들에 비해 인구나 규모 면에서 뒤지는 감이 있지만 북부 헤센에서는 가장 유서 깊은 도시이다. 744년, 성 보니파키우스의 제자 슈투르미우스에 의해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건립되면서 본격적으로 도시의 역사가 시작된다. 풀다 수도원은 단순히 종교인들의 공동 생활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풀다 지역의 종교 공동체라는 의미를 넘어, 중부 독일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수운 교통의 요지에 사람이 모여들게 한 원동력이었다. 더불어 신성로마제국 황제 임명권을 가지는 마인츠 대주교를 5명이나 배출한 정치적 중심지였으.. 더보기
[카셀/20151217-20160103] 회색의 겨울동화 프랑크푸르트에서 여행의 첫 관문을 지난 내가 향한 곳은 카셀이다. 5년마다 열리는 세계적인 미술 행사인 카셀 도큐멘타로 유명한 도시인 카셀은 헤센과 북부 독일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자 그림 형제의 고향이다. 전통적인 상업과 금융의 도시인 프랑크푸르트, 주도인 비스바덴에 이어 헤센 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그림 형제의 고향이라는 것 때문에 동화 속에 나오는 풍경들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환상은 미리 버리는 것이 좋다. 드레스덴이나 쾰른 폭격에 비해 규모가 작아서 덜 알려졌지만 카셀 역시 2차 세계대전 말미에 엄청나게 파괴된 도시 중 하나이다. 서독 최대 도시인 쾰른, 공학 연구소가 있는 다름슈타트, 그리고 주요 군수 공장이 있던 카셀은 연합군의 주요 타겟이 되어 무차별 폭격을 당했다. .. 더보기
[프랑크푸르트/20151217-20160103] 도시가 주는 선물 프랑크푸르트 마지막 날, 내가 간 곳은 자연사 박물관이었다. 묵고 있던 숙소가 마침 자연사 박물관과 가까웠던 데다가 오전에 날씨가 워낙 안 좋았던지라 잠깐 전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길에 관한 한 기억력이 나쁘지 않은 지라 숙소에서 박물관까지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게다가 프랑크푸르트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었던지라 길을 다 기억하고 있던 데다가, 파리보다 도시 규모가 크지 않고 직선으로 잘 정비된 도로가 많기 때문에 길을 찾기가 훨씬 쉽다. 내가 사는 도시도 아니고 고속열차로 무려 4시간 가까이 달려야 도착하는 도시이지만 이런 식으로 기억을 하고 있으면 상당히 친근하게 느껴진다. 물론 나는 프랑크푸르트 거주민도 아닐뿐더러 프랑크푸르트에 살면서 일을 하고 세금을 내는.. 더보기
[다름슈타트/20151217-20160103] 존경하던 사람을 좇아 찾아간 곳 프랑크푸르트에서 하룻밤 머물고 난 다음날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다름슈타트로 향했다. 전부터 줄곧 가고 싶었지만 번번이 놓치다 드디어 기회를 잡아 다름슈타트로 갔다. 역사, 특히 서양사를 전공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다름슈타트는 꽤나 익숙한 이름이다. 한때 헤센 공국의 중심지 역할을 한 도시였으며 동시에 러시아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비 알렉산드라가 바로 이곳 출신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름슈타트 전역을 장식하고 있는 유겐트슈틸 양식의 장식 미술들과 건축들도 유명하지만 그런 미술사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다 다름슈타트를 지배하던 헤센 공가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그리 크지는 않지만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로 향하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다름슈타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멀.. 더보기
[프랑크푸르트/20151217-20160103] 이상한 나라의 겨울 두 달이 조금 넘는 간격을 두고 나는 프랑크푸르트와 재회했다. 지난번에는 여행의 종착점이었던 프랑크푸르트지만, 이번에는 여행을 시작하는 곳으로서 프랑크푸르트와 재회했다. 그러니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나를 반겨준 프랑크푸르트는 나의 세 번째 프랑크푸르트인 것이다. 사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내에선 가장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안 나고, 오히려 크리스마스에도 차분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라고 평해지는 도시이다. 아무래도 회사들이 많고 특히 금융이 주력인 도시니까 그럴 법도 하다. 게다가 크리스마스와 각종 종교 행사를 중요시하는 카톨릭과 달리 소박하고 조용하게 연말연시를 보내는 것을 중시하는 신교가 우세인 지역이라서 더욱 그런 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프랑크푸르트를 크리스마스 여행의 첫 관문으로 택한 건, .. 더보기
[아미앵/20151125] 무거운 아름다움과 가벼운 순간 11월 마지막 주에 모든 세미나가 휴강이 되었다. 지도교수님을 비롯해 연구소 동료들이 외부 학회에 참여하게 되어서 불가피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초보를 갓 벗어난 지라 딱히 어디 학회에 참여하지도 않고 공짜로 한 주의 휴가를 얻은 것은 나쁘지 않다. 작년 이맘때는 수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동적으로 슈투트가르트로 첫 여행을 떠났었는데, 올해는 뭐가 지나갔는지 짐작도 안 될 정도로 정신없는 11월을 보내다 뜻밖의 휴가를 맞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껏 맞은 모처럼의 휴가인데 집과 도서관만 드나들기엔 어쩐지 아쉬운 듯한 기분이 들어 결국 아미앵으로 가는 기차표를 구입했다.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인지라 당일치기로 부담 없이 갔다 올 수 있는데다 그 유명한 아미앵.. 더보기
[프랑크푸르트/20151001-08] 안녕, 이상한 나라! 프랑크푸르트를 떠나는 날, 내가 제일 먼저 간 곳은 젠켄베르크 자연사 박물관이다.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와 컬렉션을 자랑하는 자연사 박물관이지만 지난번에 들리지 못해서 아쉬웠던 지라 이번에는 꼭 이곳에 들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라 망설임 없이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젠켄베르크는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의사이자 생물학자로 의사로서나 학자로서나 흠잡을 데 없는 커리어를 자랑하던 걸출한 인재였다. 죽기 전 그는 그가 모은 동식물 표본을 모두 프랑크푸르트 시에 기증했고, 이게 바로 프랑크푸르트 시의 또 다른 상징이자 자랑거리인 자연사 박물관의 시초이다. 파리와 뉴욕에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자연사 박물관이 있지만 규모나 소장품의 질 면에선 젠켄베르크 자연사 박물관 역시 뒤지지 않는다. 독일을 대표하는 자연사 .. 더보기
[마부르크/20151001-08] 삶과 역사의 사이에 끼인 자들을 위한 곳 프랑크푸르트에 온 김에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도시 중 하나인 마부르크를 가기로 했다. 성녀 엘리자베트의 전설이 깃든 고딕 양식의 교회와 아름다운 도시의 정취에 대한 명성을 익히 들었기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참인데 마침 프랑크푸르트에 오게 되었으니 마부르크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헤센 북부에 위치한 마부르크는 란 강을 끼고 있어서 마부르크 안 데어 란(Marburg an der Lahn)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란 강 유역의 마부르크라는 의미이다. 지금이야 마부르크와 프랑크푸르트 모두 헤센이라는 한 주 안에 속해있지만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에는 전혀 다른 국가였다. 지금의 독일 행정구역은 과거 제후국과 영방들의 영역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랜 분열의 역사와 특정 지역의 팽창.. 더보기
[프랑크푸르트/20151001-08] 미술관에서의 재회 한 3일 가량을 숲 속 깊은 곳에 있다 보니 슬슬 지겨워지면서 숲이 으스스해지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론 바다든 호수든 숲이든 자연을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연을 구경하고 즐기는 대상으로써 좋아하는 것에 한정된 것이지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선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절대 아니다. 이유야 어쨌건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콘크리트의 아이들 중 하나이고 지금은 세계의 심장이라 불리는 파리에 살고 있다. 아무리 내가 파리 생활이 힘들고 모국어를 벗어나 학업을 하는 것에 피로를 느낀다 하여도 어쨌든 나는 도시의 자식이다. 아마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정말로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지 않는 한 내가 시골 생활을 할 일은 없음을 3일 동안 베르트하임에 있으면서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본래 고층 .. 더보기
[베르트하임 암 마인/20151001-08] 백설공주와 종교전쟁 아샤펜부르크에서 1박을 지새운 후 반나절 정도를 더 궁전 근처에서 노닐다가 기차에 올랐다. 목적지인 베르트하임 암 마인으로 가기 위한 기차는 베스트프랑켄 반, 말 그대로 프랑켄 지역 서부를 순환하는 지역 열차이다. 느리게 가는 기차는 아샤펜부르크를 출발해 프랑켄 숲 서쪽을 순회한다. 지평선이 보이는 평야만이 계속 이어지는 프랑스의 풍경이나 굴곡이 예술적인 산맥이 가득한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의 풍경과는 달리 독일의 풍경은 숲으로 가득 차 있다. 거대한 산맥이 굽이치지는 않지만 독일인들처럼 키가 큰 침엽수들이 차창 밖을 가득 메운다. 독일은 제조업과 공업으로 유명한 나라이지만 정작 독일을 여행하다보면 공업 지대보다는 울창하고 어두운 숲들을 더 많이 보게 된다. 로마군들이 게르만족과 싸우다가 홀랑 사라져버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