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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프랑크푸르트/20151217-20160103] 도시가 주는 선물




 프랑크푸르트 마지막 날, 내가 간 곳은 자연사 박물관이었다. 묵고 있던 숙소가 마침 자연사 박물관과 가까웠던 데다가 오전에 날씨가 워낙 안 좋았던지라 잠깐 전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길에 관한 한 기억력이 나쁘지 않은 지라 숙소에서 박물관까지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게다가 프랑크푸르트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었던지라 길을 다 기억하고 있던 데다가, 파리보다 도시 규모가 크지 않고 직선으로 잘 정비된 도로가 많기 때문에 길을 찾기가 훨씬 쉽다. 내가 사는 도시도 아니고 고속열차로 무려 4시간 가까이 달려야 도착하는 도시이지만 이런 식으로 기억을 하고 있으면 상당히 친근하게 느껴진다. 물론 나는 프랑크푸르트 거주민도 아닐뿐더러 프랑크푸르트에 살면서 일을 하고 세금을 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 도시에 대해서 잘 안다고 섣불리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거리를 기억하면서 보이지 않게 기억의 발자국을 새겨나가면서 친근한 것을 추가해나가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여행자는 언제나 뜨내기 외부인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인과 섞였다는 기분을 애써 느끼고 싶어 하는 역설적인 존재가 아니던가.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이런 식으로 내가 방문하는 도시와 친해지는 것도 꽤 괜찮은 여행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그 도시가 교통의 거점이라서 여행마다 방문하게 되는 도시라면 더더욱.






 프랑크푸르트 자연사 박물관은 내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학창시절에 수학, 과학 과목은 썩 잘하지 못했고 지금도 과학이랑은 거리가 먼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연사 박물관을 좋아한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는 존재인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지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장소에서 조용히 조망하는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색의 보물이다. 지구의 일생을 24시간으로 압축하면 인간이 나타난 시간은 고작 23시 57분이라고 한다. 헌데 그 24시간 중 몇 초에 해당하는 시간동안 일어난 일을 연구하는 것도 버거운 존재인 나 자신인데, 내가 공부하는 시간의 배를 뛰어넘는 지구라는 별의 일생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움 그 자체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자연사 박물관을 좋아한다. 존재했지만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고, 상상에만 그치는 것들을 눈앞의 실재로 이끌어낸다. 가히 살아있는 시간의 역사를 담고 있는 보물이라 칭해도 과찬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젠켄베르크 프랑크푸르트 자연사 박물관은 유럽에서 손꼽는 자연사 박물관 중 하나이다.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의사이자 생리학자였던 젠켄베르크가 전 생애에 걸쳐서 모은 생물 표본들을 프랑크푸르트 시에 기증한 것이 시초가 되어 그의 이름을 딴 연구 재단과 박물관이 설립되었고 현재에 까지 이르고 있다. 어마어마한 양의 화석뿐만 아니라 각종 동식물의 표본들도 상당히 많은데 보관 상태가 굉장히 좋은데다가 동작 하나하나가 역동적이라서 금방이라도 유리창을 뚫고 살아 움직일 것만 같다. 박제를 상당히 무서워하는 편인 나조차도 보고 있노라면 지구상에 이렇게 다양한 생물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오로지 인간만을 보며 그 틈에 부대낀 채 일상을 보내지만, 실상 지구라는 공간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물체들이 공존하는 유기적 공간이다. 생물다양성 없이 인간으로만 가득 찬 서울과 파리라는 대도시에서만 살아왔던 내게는 꽤나 신선한 충격을 주고, 동시에 지구에 산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며 다른 생명체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는 경건함을 주는 공간이다. 물론 이러한 경건함을 느끼는 공간 역시 대도시인 프랑크푸르트 한 가운데라는 것도 오묘한 아이러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즈음 방문한 자연사 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공중 위에 매달린 백마 박제였다. 분명히 전에 방문했을 때는 본 기억이 없는 박제였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증이 일었다. 처음에는 그냥 흔한 말 박제인가 생각했는데 어딘가 모르게 위화감이 느껴져서 계단에 올라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위화감의 정체는 말의 등짝 위에 달린 날개였다. 당연히 진짜 날개는 아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서 박제위에 얹은 날개가 맞다. 하지만 날개달린 천마의 순수하고 신비로운 이미지와는 달리 이 오브제는 다소 기괴하고 쓸쓸해 보이는데, 그것은 날개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 버려진 폐기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꿈의 존재이자 몽환의 사자인 천마의 날개가 부드러운 깃털이 아닌 흉물스러운 폐기물이라니. 말 그대로 동심을 산산조각 내는 데에 이보다 더한 오브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작금의 지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오브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도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의미 없이 죽어간다. 그리고 환경은 점점 파괴되고 각종 폐기물들이 축적되면서 인간의 삶을 위협한다. 멸종의 속도가 가속화되고 생물다양성이 점점 사라지면서 인간을 제외한 생물들이 상상속의 존재로만 남는 순간의 무서움이 전해진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무서움을 표현하는 장치가 너무 동화적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천마를 지나쳐 2층 전시실로 들어가자 백마 오브제만큼이나 그로테스크한 각종 작품들이 이어져있다. 다소 음산한 인상을 주는 난해한 작품들이지만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다. 젠켄베르크 자연사 박물관의 겨울 특별전시는 뷔르츠부르크 출신의 아티스트 미아 플로렌티네 바이스의 작품들로 이루어졌는데, 각종 폐기물들을 이용해 만든 오브제가 풍기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시선을 끈다. 전시실 앞에 바로 세워져 있는 사진 속의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눈에 띄는데 작가 본인이 직접 모델로 나서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무기질적인 플라스틱 오브제들과 여성성을 상징하는 자궁 모양의 조형물, 그리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까지. 전혀 연관성도 생명력도 없어 보이는 존재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작품들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문명은 편의를 가져다주었고, 또 수많은 것에서 인간을 보호하고 해방시켰지만 한편으로는 사색의 기회를 일정 부분 박탈하기도 했다. 무작정 자연을 찬양하고 과학의 성과를 경시하는 생태주의는 썩 좋아하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문명이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기 위해 문명의 어두운 부분을 직시할 필요도 있다. 혹여 그 그림자를 직시하는 것이 어둡다면 누군가의 창작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 것이고.






 







 자연사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인 구 오페라 하우스와 으리으리한 명품 거리가 즐비한 괴테 거리에도 어둠이 내려앉아 크리스마스 장식물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은 깜찍하기 이를 데 없다. 천천히 산책을 하다가 성가대의 합창 공연을 하는 시간에 맞춰 프랑크푸르트 성 바르톨로메오스 성당으로 들어갔다. 30년 전쟁 이후 자유도시 프랑크푸르트는 개신교 도시로 남게되지만 한 때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뽑는 선거를 실시한 장소였던 성 바르톨로메우스 성당은 운 좋게도 카톨릭 교회로써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 덕분에 이곳은 지금도 프랑크푸르트 유일의 카톨릭 성당으로써 위상을 점하고 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크리스마스 이전의 한 달 동안 매 주일마다 장식을 하고 기도를 올리는 문화가 있는데 이를 독일에서는 아드벤트(Advent)라고 부른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마지막 주말 저녁, 성당에 울려 퍼지는 성가대의 음악을 들으며 나도 살짝 촛대 위에 촛불을 하나 올렸다. 테러로 인해 음울했던 그 해의 파리와 달리 프랑크푸르트는 매우 차분했지만 폭력과 전쟁이 없이 평화로운 세계를 기원하는 마음은 똑같았다. 어쩌면 차분하고 들뜨지 않은 분위기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것은 큰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내가 살던 터전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가 가장 크던 시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