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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카셀/20151217-20160103] 회색의 겨울동화

 프랑크푸르트에서 여행의 첫 관문을 지난 내가 향한 곳은 카셀이다. 5년마다 열리는 세계적인 미술 행사인 카셀 도큐멘타로 유명한 도시인 카셀은 헤센과 북부 독일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자 그림 형제의 고향이다. 전통적인 상업과 금융의 도시인 프랑크푸르트, 주도인 비스바덴에 이어 헤센 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그림 형제의 고향이라는 것 때문에 동화 속에 나오는 풍경들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환상은 미리 버리는 것이 좋다. 드레스덴이나 쾰른 폭격에 비해 규모가 작아서 덜 알려졌지만 카셀 역시 2차 세계대전 말미에 엄청나게 파괴된 도시 중 하나이다. 서독 최대 도시인 쾰른, 공학 연구소가 있는 다름슈타트, 그리고 주요 군수 공장이 있던 카셀은 연합군의 주요 타겟이 되어 무차별 폭격을 당했다. 게다가 지금의 카셀 역시 북부 헤센 최대의 공업도시인지라 동화 같은 풍경을 기대하는 것은 그다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카셀에 갔다. 이유야 어쨌건 지식이 탄생한 도시를 방문하는 것은 꽤나 내 구미에 당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카셀에 도착하던 날은 유난히 운수가 별로였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한숨 푹 자려고 눈을 붙였을 때, 갑자기 기센에서 열차가 정지하더니 승객들은 모두 내리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일단 내린 후 기센 역 내의 정보센터로 가서 안내원에게 묻자 기센과 마부르크 사이의 선로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사고가 있어서 잠시 열차 운행을 중단한다는 말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결국 기센 역에서 약 2시간을 기다린 후에 다시 카셀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열차로 인한 문제를 만난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다. 물론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서 해결해가는 것이 여행의 묘미이기는 하지만 사고라고 하는 것은 내가 직접적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피로가 쌓이기에는 충분한 상황이다.










 예상대로 카셀은 우중충한 회색의 도시였다. 게다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던지라 도시가 한층 더 우중충해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선 밤풍경은 동화속의 그것 못지않게 아기자기하고 귀여웠다. 그림형제가 태어난 도시답게 크리스마스마켓에 "메르헨"이라는 문구를 붙이고 동화속의 주인공들을 형상화한 일러스트들로 크리스마스 마켓을 장식한 모습은 꽤나 깜찍했다. 북해에서부터 흘러들어오는 베저 강의 지류인 풀다 강을 끼고 형성된 도시의 역사는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카셀이라는 도시의 이름이 기록에 나타난 것은 10세기 초반이고,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활약하게 된 것은 30년 전쟁 이후 헤센 공국의 주요 도시이자 칼뱅교도의 근거지가 되면서부터이다. 30년 전쟁에 신교 측 지원군으로 참전한 이후 헤센 공국은 신교로 자리 잡게 되고, 17세기에는 낭트 칙령 폐지로 추방된 프랑스 위그노 신교도들의 주요 피난처가 된다. 헤센 공국은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이 도시를 적극적으로 육성했고 지금도 카셀은 북부 헤센의 중심지로써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치열한 종교 전쟁의 끝에서 새로운 사상을 안고 태어난 사람들이 만든 도시는 또 다른 전쟁으로 인해 철저히 파괴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겨울의 음산한 날씨와 숲 때문인지 칙칙하고 어둡다가도 한편으로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이 주는 오묘한 아기자기함이 공존한다. 종교로 인해 원래 살아온 곳을 버리고 이곳으로 왔던 사람들도, 사방으로 둘러싸인 숲을 보면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기록한 사람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심정이었으리라 생각해본다.






 동화 속 같은 풍경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동화 같았던 카셀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하루를 보낸 후 내가 향한 곳은 카셀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빌헬름스회허 공원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빌헬름스회허 공원은 헤센의 영주였던 카를의 주도하에 지어졌다. 1689년부터 착공을 시작한 이 공원은 공원 아래에 위치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성과 공원 꼭대기의 헤라클레스 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성은 지금은 헤센 주립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헤센 주의 주립 박물관은 주의 행정수도인 비스바덴, 다름슈타트, 그리고 카셀 이렇게 총 세 군데에 있는데 나는 크리스마스 여행 때 카셀과 다름슈타트에 있는 두 곳의 박물관을 들릴 수 있었다. 19세기에 헤센을 통치한 루드비히 대공이 예술 애호가였던 덕에 헤센 주립 박물관에는 꽤 많은 컬렉션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름슈타트의 주립 박물관이 아르누보와 유겐트 스틸에 집중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면, 카셀의 빌헬름스회허 성에는 루벤스를 위시한 16세기 플랑드르와 네덜란드의 회화 작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아쉽게도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웅장하고 장중한 거장들의 작품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더불어 3개의 박물관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방대한 컬렉션을 모을 수 있었던 과거 헤센 공가의 영광을 떠올리다 보면 시간 앞에선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도 든다. 러시아의 황후를 배출할 정도로 걸출한 가문이었지만 권력도 부도 영광도 결국 시간 앞에선 먼지일 뿐 인 것.












 공원 자체가 언덕위에 세워진데다가 꽤 가파르기 때문에 헤라클라스 상까지 가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201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계 최대 규모의 이 헤라클레스 동상은 17세기 말 빌헬름스회허 공원 건설이 계획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착공에 들어가 약 30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완공되었다. 헤센 자체가 평지보다는 언덕과 숲이 많긴 하지만 빌헬름스회허는 공원보다는 공중정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가팔랐고, 헤라클레스 상은 너무 높고 멀었다. 게다가 우중충한 날씨에 꼭대기까지 가는 길에는 인적도 없이 온통 숲과 호수밖에 없었다. 여름이었다면 분명 싱그럽기 그지없었을 테지만 비 내리는 겨울에는 그저 을씨년스럽고 음산하다. 답답한 회색으로 꽉 찬 공기 속에 들어찬 키 큰 나무들을 보고 있노라면 백설공주나 빨간 모자가 왜 그렇게 숲을 무서워했고 왜 그런 음울한 동화들이 독일에 유난히 많았는지에 대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공원 꼭대기에서 본 풍경은 경이롭게 아름답다. 회색의 안개가 끼어있는 푸른 숲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의 모습은 동화속의 삽화 같았다. 날씨는 음울했지만 오히려 그 음산한 안개가 숲과 어우러지면서 오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위풍당당한 헤라클레스 청동상도 회색의 공기에 물들어 그저 고독한 실루엣 하나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풀다 강을 끼고 오목조목 모여 있는 마을들의 모습은 목가적이고 평화로우면서도 그 속에 거대한 비밀을 숨기고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 자연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무서운 존재였고,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겪는 일상적 공포와 풀리지 않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동화를 만들어냈다. 이제는 과학의 시대이기 때문에 더 이상 괴기스러운 동화는 필요 없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풀다 강과 숲을 끼고 살고 있다.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하자 나는 발걸음을 돌려 공원을 내려왔다. 겨울의 유럽, 특히 독일은 해가 빨리 떨어지는데다가 중소도시는 해가 지면 정말로 불빛이 전혀 없기 때문에 서둘러 돌아가는 것이 좋다. 특히나 숲은 해가 떨어지면 말 그대로 새카맣기 때문에 더욱 무섭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내려가고 있는데, 숲 속에 작은 성이 시야에 들어와서 슬쩍 다가가 보았다. 겨울에는 일주일에 한번만 문을 열고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폐관일 이었기 때문에 아쉽게도 안으로 들어갈 순 없었다. 그저 18세기에 헤센의 빌헬름 백작이 신고딕 양식으로 지은 뢰벤스부르크 성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성 부근의 정원을 구경하면서 뾰족한 성의 실루엣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백설공주를 쫓아낸 못된 왕비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음산한 성이 생각났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언덕을 내려왔을 땐 완전히 해가 떨어져 있었다. 비록 그림형제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림 형제를 태어나게 한 풍경과 한 때의 영광을 곱게 접어 공중 정원에 얹어 놓은 헤센 공국의 흔적을 만났다. 다음번에 카셀에 올 때는 좀 더 밝고 맑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별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