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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뮌헨/20150417-20150503] "남기고" 여행을 끝내다




 뮌헨은 대도시이지만 녹지 공간이 상당히 잘 조성되어 있는 도시이다. 과거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였던 만큼 궁전과 왕실 정원이 잘 보존되어 남아있는데,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녹지 공간이 어마어마하게 넓기 때문이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유력 가문은 바이에른의 왕가이던 비텔스바흐 가문인데, 그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황후 씨씨가 이 가문 출신이다. 그리고 씨씨의 사촌이 바이에른의 마지막 왕이자 ‘백조의 호수’의 무대가 되는 퓌센 노이슈반슈타인 건설로 유명해진 루드비히 왕이다. 흔히 한국 사람들이 독일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는 꽤 상반된 편인데, 하나는 기계와 각종 공업으로 유명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목가적이고 동화책 같은 풍경으로 나라 전체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딱 절반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전자는 전후 라인 강의 기적을 이뤄내며 독일의 부흥을 이끈 서부의 공업지대, 쾰른과 뒤셀도르프 등지를 포함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에 해당되는 묘사이고, 후자는 비교적 폭격을 덜 당해 과거의 유산과 작은 농촌 공동체들이 잘 남아있는 남부의 농업지역인 바이에른에 들어맞는 묘사이다. 뮌헨 역시 후자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뮌헨은 사람들이 붐비고 고가의 매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쾰른이나 프랑크푸르트 같은 도시들보다 훨씬 더 여유롭고 느긋한 분위기를 풍긴다. 아마 시민들에게 개방된 뮌헨의 레지덴츠 궁전이나 영국 정원(Englischer Garten)이 주는 분위기도 한 몫 할 것이다. 파리에서 루브르 궁전을 빼 놓을 수 없듯이, 기껏 뮌헨에 왔는데 이 두 군데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천천히, 뮌헨의 옛 왕궁 궁전 레지덴츠 에서부터 영국 정원까지 걷기 시작했다. 확실히 궁전과 왕실 정원의 규모를 보면 뮌헨이 새삼 거대 왕국 바이에른의 수도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한국이나 프랑스처럼 일찍 중앙집권화가 진행되어 ‘단일 국가’의 역사가 오래된 곳에 있다 보면, 독일처럼 지방분권의 역사가 깊은 젊은 국가의 체계가 낯설 때가 상당히 많다. 게다가 뉘른베르크나 뷔르츠부르크처럼 아담하고 고즈넉한 도시들을 보다가 뮌헨을 보면 확실히 크다. 뉘른베르크의 중앙 광장을 생각하고 지하철역에 내렸다가 마리엔 광장에서 인파에 치여 혼쭐이 난 것처럼, 뮌헨은 크다. 그리고 크니까 이 정도 규모의 궁전과 왕실 정원을 가질 수 있었겠지. 당대의 프랑스만큼은 아니어도 바이에른이 상당히 큰 나라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뮌헨의 궁전과 영국 정원은 이어져 있다. 거대한 녹지가 도시의 심장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파리에도 공원이 많지만, 이 정도로 큰 공원은 도심 내에서 본 적이 없다. 이는 오랫동안 파리가 수도였어도 왕의 거처는 베르사유나 생제르맹엉레 같은 외곽의 널찍한 숲에 따로 지어져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파리는 귀족의 도시이기 이전에 혁명을 주도한 시민들과 소상공인들의 도시이고, 드니 대주교나 성녀 쥬느비에브 같은 순교자들이 만든 중세의 도시임과 더불어 전 세계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근대적인 첨단의 도시이다. 하지만 뮌헨은 다르다. 뮌헨은 오랫동안 왕의 도시였고, 궁전의 도시였고, 거대한 정원이 있는 바이에른의 수도였다. 시민들이 옹기종기 얽히고 뒤엉키면서 만들어진 파리와 달리, 과거 왕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는 도시이다. 그래서일까. 파리의 대표적인 궁전이던 팔레 루아얄이나 루브르를 볼 때면 ‘아름답지만 이제는 어디까지나 과거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뮌헨의 궁전과 정원을 걷고 있으면 어디선가 우아하게 드레스 자락을 움켜잡은 비텔스바흐 가문의 여자가 풀숲을 헤치고 나올 것 같다. 둘 다 번화한 대도시이지만, 뮌헨과 파리의 차이를 들라고 하면 난 이러한 점을 가장 큰 차이점으로 꼽고 싶다.








 하지만 지금 뮌헨의 공원은 시민들의 쉼터가 되어있다. 날씨가 흐렸는데도 가족들과 함께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나온 뮌헨 시민들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정원을 따라 흐르는 시냇가에서 급류를 타고 서핑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하천이나 다름없는 센느 강보다도 훨씬 작고 좁은 냇가이지만, 전날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나 있던 지라 물가의 규모에 비해 큰 급류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작은 냇가도 뮌헨 시민들에게는 스포츠의 장인 모양이다. 파리지앵들은 절대 센느 강에서 수영을 하지 않지만, 뮌헨 시민들은 이곳에서 서핑을 한다. 좁은 시냇가에서, 진지하게 장비까지 갖추고 서핑을 하는 사람들과 그 모습을 보며 박수를 아끼지 않는 구경꾼들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왕의 도시이지만 이제 왕은 없다. 그리고 왕이 살던 공간은 시민들의 공간이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바이에른이 가진 목가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
















 영국정원은 정말로 넓다. 초록색의 평원이 온화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은 다소 장식적인 느낌이 강한 파리의 뤽상부르 공원이나 튈르리 정원보다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뤽상부르나 튈르리에 비해서 색깔 있는 꽃들은 적지만, 오로지 녹지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오히려 더 편안한 느낌을 주는 면도 있다. 단순하지만 마음을 안정시키고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 그리고 정원 곳곳에는 물이 흐르고 있어 이곳이 도심의 한 가운데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녹색의 길 위를 걷고 있다가 뭍으로 나와 뒤뚱거리며 일광욕을 하는 오리들과 마주치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 돌아가야만 하는 도시의 일상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녹색 정원에 폭 안겨 그대로 녹아들고 싶어진다. 정원의 중국식 정자 앞에서 음악 감상을 하면서 노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의 풍경도, 풀숲 너머로 보이는 뮌헨의 풍경도 모두 비현실로 느껴진다. 정자에 앉아 뮌헨의 건물 실루엣들이 살짝이 엿보이는 녹색의 풍경을 음미하고 있노라면 전설적인 켈트의 기사 오시안이 요정 여왕의 손에 이끌려 영원히 늙지 않는 요정의 나라에 발을 디뎠을 때 느꼈던 황홀함이나, 혹은 달빛 아래에서 산책을 하다 우연히 한 노인의 손에 이끌려 신선이 사는 무릉도원에 다다른 선비의 심정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한참을 넋을 놓고 있다가 영국정원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지도를 보니 정원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커서 기함을 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브르도 넓다고 생각했지만, 뮌헨의 영국정원은 그보다 훨씬 큰 것 같다. 한참을 영국 정원을 헤매다가 겨우 길을 찾아 나오니 뮌헨의 대학거리이자 젊은이들의 공간인 슈바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슈바빙은 마리엔 광장 다음가는 뮌헨의 번화가이자 뮌헨 대학이 자리 잡은 곳으로 서울로 치면 대학로 정도 되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 지 상점가와 극장이 쭈욱 늘어서 있고,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토마스 만, 릴케, 칸딘스키 등의 예술가들도 이곳의 활기를 좋아해 자주 슈바빙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도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과거의 흔적이다. 특히 레오폴드 거리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거대한 극장 건물과 틸리 장군의 동상이 눈에 띈다. 극장은 과거 왕실 궁전의 일부였고, 틸리 장군은 종교 전쟁 당시 악명과 명성을 동시에 떨치던 구교의 명장이었다. 북부 바이에른 지역인 프랑켄과 튀링엔 지역의 도시들이 신교로 돌아서면서 이 틸리 장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것을 생각하니 새삼 내가 ‘전통적인 왕의 도시’에 와있음을 다시 실감하게 된다. 우연히 비를 피해 들어간 성 미카엘 교회에서 본 아름다운 장식 역시, 이러한 감상을 더욱 아름답게 포장해준다. 천사가 날다니는 것 같은 우아한 형상의 천장과 화려한 교회 건축은 카톨릭의 전유물이기에. 허나 이러한 것들은 내가 역사를 전공하기에 느끼는 단편적인 감상에 불과할 뿐임을 잘 알고 있다. 오늘날 이곳은 수많은 인파가 자아내는 활기로 넘치는 번화가이자 젊음과 예술의 거리일 뿐이고, 뮌헨은 여전히 독일 카톨릭의 중심지이자 바이에른의 수도이지만 더 이상 왕은 없다. 그저 이방인에 불과한 내가 무엇을 알 수 있으랴. 나는 단지 도시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고, 역사를 만들어 온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도시를 더 제대로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할 뿐이다. 그렇게 나는 뮌헨과 작별인사를 하고, 나의 첫 장기여행과 이별의 포옹을 나눴다. 님펜부르크도, 피나코텍도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과 부족함이 남는 여행이었지만, 영국정원이 주는 녹색의 편안함과 아쉬운 만큼 나중에 다시 뮌헨을 제대로 둘러볼 것이라는 기대어린 다짐을 남긴 채 기차에 올랐고 16박 17일에 걸친 봄방학 여행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