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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밤베르크/20150417-20150503] 운하의 도시, 그리고 신과 인간의 도시



 밤베르크의 아름다움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들었다. 작은 도시이지만 운하와 고전적인 건축물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가히 '북방의 베니스'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고. 허나 너무 지나친 기대는 오히려 실망감을 안겨주는 데다가, 비는 안와도 날씨가 맑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듣자 기대는 장대비 속의 촛불 모양 쏙 꺼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별 기대 없이, 제발 처음 뷔르츠부르크에 갔을 때 같은 날씨만은 아니길 기도하며 밤베르크행 기차에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기차역에서 내린 내가 마주 친 하늘은 금방이라도 무겁게 떨어질 것 같은 구름을 잔뜩 머금은 회색 하늘이었다. 그저 비만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속으로 빌며 터벅터벅 구시가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의 도시답게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강이 들어서 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 밑의 공기 중에는 습기가 잔뜩 끼어있었다. 하지만 시가지 안으로 들어가자 언제 구름이 꼈냐는 듯 하늘이 환해졌다. 살짝 쌀쌀하게 바람이 부는 날씨였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고, 무거운 구름이 가벼워지면서 햇빛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 역시 태양이 등장함에 따라 저절로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밤베르크는 작은 도시이다. 물론 뉘른베르크나 뷔르츠부르크도 아주 큰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 도시들은 프랑켄 주에서는 큰 도시들에 속한다. 레그니츠 강의 하구에 위치한 이 도시가 처음으로 언급되는 시기는 902년경이다. 남부 독일의 유력한 제후 중 하나이던 팔랑켄 백작 바벤베르크 가문의 고성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벤베르크 왕가는 그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무대가 되는 멜크(Melk) 수도원을 소유한 가문이기도 한데,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 전역에 영향력을 미치면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강력한 가문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도 선출된 가문이며, 나아가 현재의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의 시원을 만든 가문이다. 따라서 바벤베르크의 세력 하에 있던 밤베르크 역시 이 가문에 의해서 탄생한 도시인 것이다.


 밤베르크의 도시 틀이 제대로 갖춰지기 시작한 시기는 11세기이다. 하인리히 황제의 명에 따라 주교령이 되고, 도시의 가장 높은 언덕에 요새와 대성당이 지어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도시의 형태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의 대성당은 불에 타서 전소된 것을 13세기에 재건한 형태이다. 초대 밤베르크 주교가 임명된 후 13세기 중엽부터는 주교가 도시의 정치까지 관할하는 제후도 겸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대부분의 프랑켄 지역 도시들이 신교로 개종을 하는 종교전쟁의 난리 한 가운데에서도 카톨릭을 고수한다. 이후 1802년까지 밤베르크는 주교가 지배하는 도시로 남아 있다가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라 밤베르크는 바이에른 왕국에 귀속된다. 뷔르츠부르크만큼이나 주교 지배의 전통이 강한 도시이다. 하지만 위엄과 웅장함이 느껴지는 뷔르츠부르크와는 달리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강하다. 일단 인구나 면적이 뷔르츠부르크보다 훨씬 좁기도 하고, 도시의 구조 자체가 언덕이 많아 건물의 크기가 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구시가지로 들어오는 순간 광장의 크기가 거리의 폭이 뉘른베르크나 뷔르츠부르크보다 작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이다. 낮은 곳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순간, 띠처럼 겹겹이 둘러싼 요새 같은 도시의 모양을 가늠할 수 있다. 꼭대기에 도도하게 자리 잡은 대성당의 모습도 시야에 들어온다. 멀리서 본 밤베르크 대성당의 모습은 성당보다는 요새에 더 가까워 보인다. 결계들을 여러 겹 친 채 도시를 보호하는 마법의 봉인을 품고 있는, 마치 천공의 성 라퓨타 같은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궁금증이 생겼다. 원래 금기나 봉인이라는 것은 접근하기 어려운 것을 수록 인간을 유혹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고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걸음을 옮겨 밤베르크 대성당을 향해 경쾌하게 뜀박질을 시작했다.









 독일어로 베르크(Berg)는 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명에 베르크가 들어갔다 하면 일단 산이나 언덕이 많은 지형임을 의미한다. 밤베르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미 뉘른베르크를 매우 수월하게 돌아 다녔던 데다 요 몇 달간 파리, 쾰른 등의 평지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갑자기 등장한 언덕들의 향연이 매우 당황스러웠다. 물론 밤베르크 대성당이 도시의 맨 꼭대기에 위치해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에이, 설마 한국의 언덕이랑 비교해봤자 별 거 아니겠지’라는 마음으로 올라간 것이 실수였다. 좁은 폭의 길들은 생각보다 더 좁았고, 골목은 복잡하게 꺾이고 꼬여 있었다. 전쟁으로 다 파괴되고 난 후 재건되어 재정비 된 독일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폭격의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밤베르크는 과거의 도시 구조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당연히 중세의 도시인만큼 길도 더 비좁고 복잡하다. 도시 크기가 작으니까 만만하다는 것은 역시 오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베르크 대성당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게다가 올라오면서 마주친 골목들조차도 너무 아름다워서 몇 번을 길을 잃고도 헤실헤실 웃으며 풍경에 넋을 놓았는지 모른다. 거미줄마냥 얽히고설킨 골목들 하나하나, 정교하게 빈틈없이 짜여있는 돌길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채 입을 다물고 낯선 이방인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는 둥근 곡선과 뾰족한 첨탑이 하나의 건축물에 공존하는 독특한 양식을 지닌 대성당 역시 마찬가지라서 막상 대성당을 실제로 보았을 때에는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의 과도기 양식이네, 주교가 누구네 하는 그런 역사적인 지식 따위는 하나도 머리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시선을 강탈당한 채 천천히 대성당 주변과 광장, 그리고 대성당 옆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자리 잡고 있는 궁전과 구 시청사를 돌아보았을 뿐이다. 가파른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건축물은 이 경사에 어떻게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지었을까 싶을 정도로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꼿꼿했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신나게 구를 것 같이 위로 올라간 각도를 자랑하는 언덕과 달리 건물들은 아주 꼿꼿하게 허리를 편 모습이 유난히도 또렷이 대비된다. 더 신기한 것은 이 가파른 언덕을 타고 다니는 차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거의 평지인 파리의 차도도 좁다고 느껴지는 내게 있어선 꽤나 신기하고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동시에 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현실임을 깨닫게 해주는 광경이기도 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풍경 뿐 아니라 공기까지 더 비현실적인 색채를 띤다. 우아한 조각들 속 성인들의 모습은 진중하고 경건하기 짝이 없다. 중세, 오로지 신의 시간 속에서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만이 현세의 삶이 지닌 가치였던 시대에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신성한 성당은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 그 자체였으리라. 어쩐지 무거워서 숨소리도 내쉬면 안 될 것 같았던 신의 공간인 성당은 꽤 아름다웠다. 조각들조차도 그대로 살아서 여전히 기도하고 있는 것 같았던 그 광경은 성당 밖에서 본 밤베르크의 전경과 전혀 딴판이었다. 허나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성당 안의 조각들은, 그 당시의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천상과도 같은 아름다운 도시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이 꼭대기에서 한 층이라도 더 천국에 다가가기 위해 기도하다가 그대로 조각상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천국을 갈망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은 신앙심과 희망을 가지고 현실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세계이다. 색색으로 예쁘게 칠해진 집들이 마냥 장난감이나 박제처럼 무기질로 보이지 않고 생기가 감도는 것도 결국 지상에서 최선을 다해 그들의 삶을 사는 사람들 덕분이다. 북방의 베니스라는 별명만큼 밤베르크 곳곳에선 운하를 볼 수 있다. 언덕과 숲으로 에워싸인 이 작은 도시가 내륙의 여러 도시들을 잇는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것도 다 이 운하 덕분이었다. 특히 밤베르크 구시가지 남동쪽에는 ‘작은 베네치아(klein Venedig)’라고 불리는 구역이 있는데, 이는 이 구역의 운하와 풍광이 베네치아만큼이나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들이 붙인 별명과 애칭이 정식 이름이 된 것이다. 밤베르크는 유난히도 아래에서 본 풍경과 위에서 본 풍경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도시였다. 신의 눈으로 위에서 본 도시와 인간의 눈으로 아래에서 본 도시가 자아내는 선명한 대조가 한 도시 내에 공존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베르크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움은 인간의 삶이 자아내는 축적물이 지닌 아름다움이었다. 삶이 없다면 신앙도 없고 신도 신의 눈으로 본 천상의 전경도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