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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뮌헨/20150417-20150503] 가장 촌스럽지만 가장 아름다웠던 것

 유난히도 아쉬움이 남는 도시, 뮌헨. 뮌헨은 정말로 큰 아쉬움이 가득 남은 도시이다. 물론 다른 도시나 지역에서도 아쉬움은 여전하다. 카를스루에, 바덴바덴, 슈투트가르트, 뉘른베르크, 밤베르크, 뷔르츠부르크...이미 갔다 온 도시들도 못 본 곳이 너무 많아서 아쉽고, 울름, 아우크스부르크, 로텐부르크, 바이로이트 등 못 간 도시들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하지만 뮌헨에 대한 아쉬움은 누군가를 붙잡고 길게 하소연을 하고 싶을 정도로 크다. 뮌헨은 내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였다. 도착한 첫날은 너무 피곤해서 파김치가 되어 뻗어버렸고, 둘째 날은 노동절이었고, 나머지 이틀은 계속 날씨가 좋지 않았다. 볼 게 많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이 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없는 뮌헨에 대한 경험이나마 이렇게 끄적이는 것은, 그 때 잠시나마 내가 느꼈던 인상들을 기억하고 나중에 꼭 다시 뮌헨에 갈 것을 기약하기 위해서이다.


 뮌헨의 첫인상은 ‘웅장하고 멋진 도시’ 였다. 그리고 지금도 뮌헨은 내게 그런 도시이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웅장하고, 남성적인 느낌이 드는 그런 도시. 물론 슈투트가르트도 상당히 남성적인 도시이지만 슈투트가르트와 뮌헨이 주는 ‘남성적’인 느낌은 전혀 다른 것이다. 전자가 양복을 입고 자동차 회사에 출근하는 가장의 모습이라면, 후자는 잘 차려입은 왕을 연상시킨다. 아마 뮌헨이 독일 남부의 왕국 중에서도 가장 크고 강한 왕국이던 바이에른의 수도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인구도 규모도 슈투트가르트의 3배에 가깝고, 함부르, 베를린과 함께 독일에서 인구가 100만이 넘는 3대 도시에 속하는 대도시이다. 자연히 두 도시가 주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더불어 현재는 같은 바이에른 주에 속한다 하더라도, 신교와 구교가 뒤섞이고 각 도시 단위로 다른 영방 체계를 유지하던 프랑켄 지역과 달리 바이에른은 비텔스바흐 한 가문이 오랫동안 단일한 지배체제를 유지해 왔다. 큰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이니 그만한 위엄과 흔적이 남아있고,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독일 남부 최대의 도시로 위상을 지킬 수 있었다.











 뮌헨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구 시청사이다. 화려한 조각과 장식물이 눈에 띄는 이 건물은 뮌헨의 중심가인 마리엔 광장에 자리 잡고 있는데, 카메라 렌즈에 절반도 담기 힘들 정도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내가 뮌헨에 처음 도착했을 때 본 건물이 이 구 시청사인데, 아마 그래서 내가 뮌헨을 ‘웅장하고 남성적인’ 도시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루드비히스부르크의 뷔르템베르크 궁전을 보았을 때도, 슈투트가르트의 신궁전을 보았을 때도, 카를스루에의 바덴 공작 궁전을 보았을 때도 웅장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는데 뮌헨의 시청사는 정말 거대하고 웅장했다. 그리고 이 첫인상이 아주 틀리진 않았다. 원래 이 건물은 궁전 겸 왕실 연회장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14세기에 전체적인 형태가 완성되어서 문헌에 처음 등장하지만, 네오 고딕양식을 갖춘 지금의 형태가 완성된 것은 여러 차례의 재건을 거친 결과이다. 시 행정기관은 1874년에 지어진 신 시청사로 옮겨갔고, 지금 이 건물은 뮌헨 시의회로 사용되고 있다. 시장의 집무실 역시 이 건물 안에 있다.







 시청사 앞에는 뮌헨의 중심가인 마리엔 광장이 펼쳐져 있다. 마리엔 광장은 말 그대로 성모 마리아의 광장을 의미하는데, 슈투트가르트나 카를스루에, 뉘른베르크의 중심가 광장이 궁전과 시장의 이름을 따거나 혹은 그냥 ‘중앙 광장’인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만큼 뮌헨이 카톨릭의 전통이 강한 도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뮌헨이 대도시라는 것을 새삼 실감한 곳도 이 장소인데, 왜냐하면 처음 이곳에 발을 딛었을 때 사람에 치여서 정신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파리에 있다가 카를스루에, 슈투트가르트, 뉘른베르크, 뷔르츠부르크 등 비교적 작은 도시로 가니까 한적하고 조용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런 곳에만 2주 넘게 있다가 뮌헨으로 오니 너무 크고 복잡해서 당황했었다. 그리고 그 때서야 뮌헨이 독일의 제 3도시라는 것을 상기하고는 정신을 추스렸다. 하지만 복잡하고 큰 대도시인 만큼 나름의 매력도 있다. 독일에서 남부의 바덴-뷔르템베르크와 바이에른 두 주는 잘 사는 지역인 만큼 부르주아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반면 세련되고 냉정한 베를린이나 함부르크와 달리 촌스럽다는 인상도 있어서 놀림거리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내가 돌아다닌 남부의 도시들은 평화롭고 한적했고, 그만큼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의 도시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지만 세련된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돈이 있고 넉넉하더라도 수수한 것들에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내 눈에 가장 세련된 독일의 도시는 쾰른이었다. 하지만 뮌헨은 쾰른처럼 정제된 세련미는 없어도, 그래도 남부 지역에서는 가장 유행에 민감하고 세련된 소비를 하는 도시 같다. 좋게 말하면 수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촌스러웠던 독일인들의 차림새와는 달리 뮌헨 시민들은 상당히 유행에 신경 쓰는 것 같다. 역시 어디를 가나 대도시는 소비와 유행이 지배한다. 그렇다고 해서 꼭 그것을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다. 소비를 해야 경제가 돌아가고 도시에 활력이 생긴다. 한 나라의 수도였던 뮌헨이 그 수도의 지위를 잃은 후에도 여전히 그 규모를 간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유행과 소비를 통해 젊은이들을 도시로 끌어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멋지게 차려입고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마리엔 광장에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겠지.














 독일의 대표적인 카톨릭 도시인만큼 뮌헨에도 성모교회가 있다. 성모의 이름을 딴 광장이 있는데 당연히 교회도 있다. 역시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이 교회는 뮌헨 최대의 교회로 대칭되는 두 개의 쌍둥이 원형 기둥으로 이루어진 돔 양식이다. 16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고, 그 규모와 상징에 힘입어 구 시청사의 첨탑과 함께 뮌헨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둥그런 돔 지붕 위에 파란색이 입혀져 있는 것이 꽤 인상적이었는데 여기에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지금이야 여자 아기용품은 붉은색, 남자 아기용품은 파란색으로 생산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근대에 들어와서 형성된 색깔 개념이고, 본래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서양에선 붉은색은 장군의 망토에 쓰이는 색이자 남성성을 상징하는 색이었고, 핑크색은 ‘작은 빨간색’으로 간주되는 대표적인 남성의 색이었다. 이와 반대로 이 시기에는 오히려 파란색이 여성을 의미하는 색이었다. 특히 중세의 파란색은 아름다운 매춘부를 상징함과 동시에 성스러운 여성을 상징하는 색이었고, 이에 따라 뮌헨의 성모교회 역시 파란색 돔을 가지게 된 것이다. 성당 안에는 여러 가지 종교 조각품들이 장식되어있다. 다른 지역의 교회들과 특히 더 대비되는 점은, 성당 안에 예배를 보는 사람의 수가 많다는 점이다. 타 지역에서는 거의 세를 펴지 못하는 카톨릭 정당인 기독교 사회당이 유난히 뮌헨에서는 강세를 보이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뮌헨의 성모 교회는 내가 방문한 교회들 중 가장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흐르는 교회였다. 종교가 없는 나조차도 뮌헨의 성모 교회에서는 잠시 의자에 앉아 기도를 살짝 올렸다. 정말로 성모와 신이 존재한다면, 어째서 지상에 고통, 번뇌, 우울, 폭력 같은 것이 버젓이 활개를 치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