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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본/20150622-28] 거장을 찾아 떠나 영혼을 만나다


 쾰른은 라인 강 유람선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다. 오랫동안 라인 강은 비옥한 토양을 위한 양분과 각종 인적 자원들을 실어 나르는 독일 내륙의 혈관 같은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철도를 비롯한 다른 교통망의 발달로 내륙 수운의 역할이 많이 축소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인 강은 계속 남아 관광 자원으로써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여름에는 쾰른에서 코블렌츠 까지 운영하는 관광 유람선이 인기인데, 이 노선을 타고 가다보면 라인 강 기슭에 남아있는 중세 시대의 성들과 아름다운 절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유명한 로렐라이의 언덕도 이 코스에 끼어있다고 한다. 하지만 코블렌츠 까지 갈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었던지라 그냥 지나칠까 했지만, 지난 크리스마스 때 가려고 했었으나 가지 못한 도시인 본을 지난다고 해서 결국 유람선에 올랐다.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라인 강의 풍경은 평화롭지만 어딘가 모르게 기묘하다. 푸르른 숲이 우거져 있는 것이 꽤 자연 친화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회색의 공업지대들이 일렬로 늘어져 있는 모습이 삭막함을 느끼게 한다. 불과 수십 년 전 까지만 해도 이 지역이 매연과 폐수로 가득 차 오염이 진동을 하던 공업지대임이 새삼 느껴진다. 라인 강 역시 예외는 아니라서 백 년 전의 템즈 강 못지않은 죽음의 강이었지만 80년대부터 지속적인 환경 자정 작업을 실시하여 지금은 그래도 괜찮은 수질로 회복하였고 동시에 내륙 수운에서 시민들의 쉼터로 훌륭하게 역할 전환을 하게 되었다. 선상위에 걸터앉아 쭈욱 이어지는 라인 강의 파노라마를 보고 있으면 근현대 독일의 역사가 남긴 흔적들이 현재라는 시간 위에 연대기처럼 녹아내린 모양이 시야에 들어온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파도처럼 들이닥친 통일과 산업화, 이로 인해 연이어서 일어난 각종 혼란과 전쟁, 패전, 그리고 깊은 상처를 극복하기까지. 쾰른을 비롯한 루르-라인 지역은 전후 복구를 위해 열심히 산업화에 몰두하여 성공적으로 재기할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환경오염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고, 경제 위기와 유가 폭등으로 인해 대량의 실업자를 양산하며 또 다른 혼란을 맞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환경을 되살리기 위해, 노동자의 권리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의논하고 대화를 하는 과정을 거쳤고 이는 지금에서야 서서히 성과를 내고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한 뒤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투쟁을 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해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본에 도착했다. 열차를 타고가면 시내 한 가운데 내려서 도시 구경을 시작하겠지만, 라인 강 하구에 내린 나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주거 단지에서 걸어 들어갔다. 본은 신도시이다. 라인 강 유역의 한적한 도시였지만 종교 전쟁 당시 신교도들의 반란에 밀려 쾰른 대주교가 본으로 망명하면서 라인 강 유역의 새로운 종교 및 정치 중심지가 되면서 성장하기 시작한 도시이다. 이후 쾰른 대주교는 다시 쾰른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이후에도 본은 쾰른 대주교의 궁전으로써 그 지휘를 유지하게 되어 번영하기 시작한다. 지금의 본 대학 건물은 이때 건립된 대주교 겸 선제후의 궁전에서 연원한다. 프로이센 령으로 통합된 이후에 대학이 신설되면서 기존의 주교 궁전이 대학 건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전후에는 초대 수상인 아데나워가 자택에서 가까운 곳에서 집무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본이 서독의 행정 수도로 발탁된다.


















 지금의 본이라는 도시는 과거 주교좌의 모습보다는 전후의 행정 도시이자 새로 계획한 신도시로써의 성격이 훨씬 더 강하다. 라인 강 유역 최대의 카톨릭 중심지였던 종교 도시로써의 모습은 시내 입구에서 뾰족한 첨탑을 뽐내며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뮌스터 대성당의 모습에만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그 외에는 네모반듯한 레고 블록처럼 질서정연하게 구획이 늘어서 있고, 깔끔하게 정비된 전형적인 독일의 도시일 뿐이다. 어찌 보면 큰 매력은 없이 그저 현대적이고 깨끗할 뿐인 보통의 독일 도시 일 수도 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은 꽤 매력적이다. 얼핏 보기에는 보통의 독일 현대 도시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건물 하나하나에 독특한 느낌의 파스텔 색감이 입혀져 있다. 세련되었지만 온통 검푸른 회색 천지인 파리나 전형적인 회색 도시인 쾰른을 보다가 본을 보면 포근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든다. 그 이유를 언어로 논리정연하게 풀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색깔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본은 신도시인 만큼 깔끔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나고, 가족단위로 외출을 나온 사람이나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거리에 많이 보인다. 그러나 그런 본에서도 젊음의 활기와 고풍스러운 옛 흔적이 동시에 흐르는 곳이 있다. 바로 과거 주교이자 선제후이던 프리드리히-빌헬름 대학 궁전 건물과 그 부근이다. 주황색으로 아기자기하게 칠해진 건물은 모양 자체는 단조롭지만 색채 덕분에 멀리서도 확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부근과 대학 건물 뒤편의 공원에는 피크닉을 나온 학생들로 가득하다. 녹색과 노란색, 그리고 주황색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 공간의 빈 곳은 활기와 웃음소리가 대신 그 자리를 메운다. 종교적인 계기로 시작했다가 대학과 문화로 부흥한 도시인 이곳이 왜 행정 수도로 간택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분명히 초대 독일 수상 아데나워도 ‘살기 좋고 한적한’ 곳에서 집무를 보고 싶었을 것이다. 쾰른도 활기차고 생기 있는 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음울함이 도시의 구석을 차지하는 것이 눈에 띤다. 지금도 그을린 대성당을 보며 가슴 한 구석이 씁쓸해지는데 전후인 그 때에는 얼마나 더 우울했을까. 아데나워가 자신의 고향이자 라인란트의 가장 큰 도시인 쾰른을 뒤로하고 본으로 온 데에는 심정적 이유가 가장 크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거나 그도 사람이고, 전쟁은 누구에게나 상처를 남기는 재앙이다. 쾰른이 전쟁의 포탄을 정면으로 맞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몸부림 친 생존의 도시라면, 본은 조용히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며 손을 내민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본에 온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베토벤 때문이다. 베토벤이 태어나고 성장한 도시인만큼 본의 상징은 ‘베토벤’으로 통한다. 배를 타는 시간을 엄수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잠깐의 무리를 해서 베토벤의 생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내의 외진 골목에 위치한 그의 생가는 자세히 문패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베토벤의 생가라는 것을 알지도 못할 정도로 조그마한 자리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나 역시 하마터면 지나칠 뻔 했는데, 혹시나 싶어서 길을 되돌아와 문패를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쉽게도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베토벤의 음악만으로도 충분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좁은 계단과 목재의 바닥, 그리고 빽빽하게 종이를 채우고 있는 악보만 보고 있어도 그저 좋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의 음악을 들으며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인류에게 가장 강렬한 감동을 주는 고뇌와 희망을 동시에 선사한 위대한 예술가를 간접적으로나마 만났다는 그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다.









 허나 이뿐만이 아니다. 시내의 심장부에 위치한 가장 큰 광장에는 그의 이름이 붙어있고, 섬세하게 잘 만들어진 그의 동상이 서있다. 고집스럽게 꾹 입을 다물고 있는 입술은 그의 성격을 아주 잘 나타낸다. 살짝 주름이 진 미간은 고뇌에 가득 찬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굳은 의지와 강렬한 신념이 느껴진다. 그를 에워 싼 광장 주변은 놀러 나온 사람들의 하하 호호 떠드는 소리와 각종 소음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의 아우라는 여전하다. 마치 베토벤 동상 주변에만 엄숙함과 숙연함이 감돌면서 주변의 모든 소리로부터 유리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베토벤은 한 때 나폴레옹의 열렬한 지지자였지만 그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 스스로 대관식을 치르자 그에게 헌정하려고 했던 교향곡을 찢어버리고 만다. 원래 그는 나폴레옹이라는 혁명 정신의 수호자를 위해 그의 이름을 제목으로 붙인 교향곡을 만들고 있었으나 나폴레옹의 대관식 이후 크게 실망하고 교향곡을 손에서 놓아버린다. 나중에 교향곡이 완성되기는 했지만 이 교향곡에는 나폴레옹의 이름 대신 ‘영웅’이라는 제목이 붙는다. 혁명의 수호자로 시작했으나 권력욕에 물들어 스스로 왕관을 씌운 자를 조소하는 의미에서 베토벤이 붙인 제목이다. 한 마디로 반어법이라 할 수 있겠다. 베토벤의 도시인지라 본은 통일 독일을 만드는 촉매제인 나폴레옹과 인연이 상당히 깊은 도시이다. 더불어 전후의 독일이라는 새로운 독일을 만들어낸 행정 수도이기도 하다. 본은 두 번에 걸쳐 독일이란 나라를 태어나게 한 도시인 것이다. 첫 번째는 권력에 의해 멸망의 길을 자초한 영웅에 반발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게 하였고, 두 번째는 전쟁의 상흔으로 인해 엉망이 된 존재들을 보듬으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양분을 만들어주었다. 베토벤이라는 거장의 예술과 역사의 흔적이 스치는 지점에 서 있으니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음악에서 음울하지만 자유와 이상을 향한 강렬한 의지가 느껴지는 것은 그가 이 도시가 소용돌이 속에서 ‘시작’을 만들어 내리란 것을 통찰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일 뿐이었을까? 아무도 모른다. 역사에 있어서 짐작과 가정이란 그저 거추장스러운 것일 뿐이니까. 변하지 않는 것은 단지 도도히 흐르는 라인 강과 도시 전체를 감싸 안고 감동을 선사하는 베토벤의 음악 뿐 이다. 고즈넉한 도시인 본은 그렇게 내게 생각할 거리만을 남겨주었고, 나는 다시 라인 강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시간 내내 머리를 굴려봤지만 결국 답은 얻을 수 없었다. 아마 조금 더 커져서 다시 본에 왔을 때는 답에 근접할 수 있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