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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쾰른/20150622-28] 두 번째 작별 인사와 배웅




 마지막 날,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쾰른에서 가장 큰 미술관 중 하나인 리하르츠-발라프 미술관이었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에 쾰른을 방문했을 때 미처 방문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발라프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름이 길어서 편의상 발라프 박물관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리하르츠-발라프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이름인 것이, 그도 그럴 것 없이 이 미술관을 있게 한 사람들이 바로 리하르츠와 발라프이기 때문이다. 기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이던 두 사람이 자신들의 수집품들을 쾰른 시에 기증하면서 이 미술관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번 방문했던 쾰른의 현대 미술관인 루드비히 미술관도 기증가의 이름을 따서 미술관 이름을 붙였는데 사례인데 발라프-리하르츠 박물관도 같은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리하르츠-발라프 미술관에는 중세의 미술품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로마-게르만 박물관이 쾰른의 탄생과 고대사를 상징하고 루드비히 미술관이 현대를 의미한다면 발라프 미술관은 이 둘을 잇는 중세 시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두 박물관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훨씬 어둡고 묵직하다.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종교미술들이 상당히 많고, 종교미술의 특성상 절제와 금욕을 주요 모토로 삼는 각종 소재들이 캔버스에 그려진 지라 관객 입장에서는 다소 답답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특히 쾰른은 로마의 기독교 탄압에 저항한 순교자들이 많았던지라 이들의 삶을 그려낸 그림들이 많은데, 엄숙하고 숭고하단 느낌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꽉 끼는 듯한 답답함을 유발하는 의구심들도 피어오른다. 도대체 종교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버렸고, 또 지금도 그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신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목숨도 쉽게 던질 정도의 가치가 있는 존재라서 순교를 한 것일까, 아니면 신이라는 존재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다는 그 자체가 더 중요했던 걸까. 모르겠다. 섣불리 답을 내기엔 너무도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아마 평생을 가도 답을 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지금의 내가 종교와 신에 헌신하여 순교한 사람들을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인간이라는 것만 깨달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에 모든 것을 바친 과거의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없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듯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삶의 방식과 삶을 이끌어가는 가치관은 다 다른 법이니까.










 그래도 이번엔 운이 좋았다. 발라프 미술관에서 열린 특별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발라프 미술관은 중세 미술품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그 이후의 르네상스 미술품이나 플랑드르 미술품도 상당히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밑에서부터 차례로 올라가면서 중세, 르네상스 시대 순으로 전시되어있고, 마지막 층에는 각종 근대 회화 작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갔을 때엔 마침 발라프 미술관의 근대 미술품 중 걸작인 프랑스 회화 작품들을 모아서 전시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의 주제는 ‘센느 강’. 노르망디에서 발원하여 파리를 관통하고, 파리 근교의 일 드 프랑스 지역 전체를 감싸며 휘감아 흐르는 센느 강은 일 드 프랑스 지역의 농토를 만든 젖줄임과 동시에 파리로 몰려든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준 강이다. 첨단 문물이 가득한 화려한 근대도시 파리뿐만 아니라, 센느 강과 비옥한 농토, 아름답게 우거진 숲과 고전적 건축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마을들을 끼고 있는 파리 근교의 일 드 프랑스 지역 역시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다. 고흐가 잠시 머물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 이방인인 알프레드 시슬레가 평생을 보낸 중세 마을인 모레 쉬르 로앙, 그리고 모네를 사로잡은 지베르니 역시 파리 근교 지역이다. 라인 강 한가운데에서 센느 강과 파리를 보게 되리라곤 예상을 못했지만 굉장히 반가웠다. 이런 순간이 반가운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내가 파리에 많이 익숙해지고 정을 붙인 것 같긴 하다. 아름답고 활기차지만 내 고장은 아닌 곳에서 그 센느 강이란 단어와 회화 작품들을 보는 순간 타지에서 고향을 발견한 것 같은 기쁨을 느끼는 것을 보니 말이다. 회화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고흐나 고갱처럼 널리 알려진 유명 화가들의 유명 작품은 없어도 한적한 근교 마을의 평화로움을 온화한 색채와 빛깔로 나타낸 회화작품들인지라 보고 있기만 해도 편해진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똑같이 강을 끼고 있음에도 어쩜 이렇게 파리와 쾰른이 다른가라는 엉뚱한 생각을 잠깐 해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라인 강과 센느 강이 다른 것처럼 파리와 쾰른이 다른 것 일 터이니. 이것에 대한 해답은 다음에 다시 왔을 때 조금이라도 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사족으로, 센느 강을 바라보고 난 후 뒤를 돌아보자 거대한 박물관의 창문에 비친 아름다운 풍경을 본 것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아직은 공사 중인 구 시청사와 활기찬 시내의 풍경을 위에서 내려다 볼때의 미묘한 희열 때문에 다음에 이곳에 또 오게 될 것 같다.












 발라프 미술관 관람을 끝내고 내가 간 곳은 지난번에도 두 번이나 방문했던 로마-게르만 박물관이다. 쾰른 중앙역과 대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독일 내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역사박물관 이며, 동시에 쾰른이라는 도시의 기원과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쾰른은 게르만에 의해 잉태되고 로마에 의해 탄생된 도시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로마와 게르만은 쾰른을 이야기하는데 어느 하나도 빠질 수 없는 키워드이다. 로마도 게르만도 모두 쾰른이고, 쾰른은 로마와 게르만의 도시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박물관은 내가 여태까지 다녀본 박물관들 중 손에 꼽는 박물관이다. 소장품들도 훌륭한데다가 박물관의 분위기도 너무 좋다. 조용하고 신비롭지만, 너무 무겁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라서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다. 쾰른과 인연이 깊은 네로와 아그리피나의 두상과 마주하든, 거대한 디오니소스 목욕탕의 모자이크를 내려다보든, 아니면 일반 시민들이 쓰던 물품을 보든, 각 소장품이 지니고 있는 작은 스토리들이 박물관 전체의 공기에 느긋하게 녹아있다. 확실히 중세보다는 로마인들이 훨씬 더 실용적이고 인간 중심적이고 실질적인 사람들이었음을 이런 곳에서 깨닫게 된다. 최초로 쾰른을 건설한 사람들은 신에 대한 믿음보다는 실재적인 필요성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던 사람들이다.








 박물관 관람을 끝내고도 기차 출발까지 잠깐 시간이 남아서 천천히 대성당과 라인 강 주변을 걸었다. 떠나는 날 유독 맑았던 하늘과 빛나는 태양은 도시를 더욱 아름답게 비춰주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마치 태양과 강이 환하게 웃으면서 다음에 또 놀러오라고 속삭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대성당과 기찻길을 향해 포효하며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 울부짖는 것 같이 보인 청동의 동상도 이 날 만큼은 환하게 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따스한 날씨와 활기차게 웃으며 라인 강 양변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환상을 본 것 같지만, 아무렴 어떠랴. 기분이 좋고 뿌듯하면 그걸로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곧 다시 오겠다는 작은 작별 인사를 보내며 쾰른을 떠났다. 저녁 열차였지만 여전히 높이 걸려있는 태양 때문에 크리스마스 때와는 전혀 다른 곳에 온 기분이 들었다. 조만간 다시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