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耽世 : 느끼다

[쾰른/20150622-28] 두고옴으로써 받은 선물





 쾰른에서 머물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라인 강 산책이다. 물론 대성당 구경을 꼽는 사람도 있지만, 대성당은 쾰른 체류의 매력이기 이전에 너무나도 기본적인 사항이자 도시 랜드마크 이기 때문에 제외하도록 한다. 내가 쾰른을 좋아하는 것은 대성당의 웅장함도 있지만, 그보다는 대성당의 웅장함과 전형적인 도시적 구조 속에 또 다른 생기를 넣어주는 라인 강의 산책로가 있기 때문이다. 라인 강은 쾰른이라는 도시를 탄생시킨 탯줄이며, 도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자양분을 공급한 혈관이자 힘줄이다. 쾰른을 칭할 때 '라인 강 유역의 거대한 대성당 도시' 혹은 '라인 강의 쾰른'이라는 어구를 붙이는 것은 단순한 수식만이 목적인 것이 아니다. 라인 강은 웅장한 고딕 양식의 대성당처럼, 쾰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 그 자체이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연원들을 뒤로 하더라도 나는 그냥 라인 강을 좋아한다. 콘크리트 냄새와 고딕 양식이 뒤엉켜있는 세련된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흐르는 거대한 물줄기는 보기만 해도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면서, 한편으로는 강을 향해 모여드는 사람들의 활력을 실어다주는 역할도 한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에도 라인 강의 풍경을 구경하면서 강변을 산책하는 것이 가장 큰 낙이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강과 하늘이 뿌연 회색으로 맞닿아있는 모습만 본 것이 참 아쉬웠다. 물론 비바람이 불고 싸늘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라인 강은 아름다웠고, 강변 옆으로 쭈욱 늘어진 파노라마 풍경은 큰 감동을 주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선 햇빛을 쬐면서 맑은 날씨의 라인 강을 걷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그 소원을 성취할 수 있었다.










 라인 강은 과거엔 쾰른을 성장시킨 내륙 수운의 동력이었지만,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관광객들은 선상 위에서 도시의 풍경을 만끽하며 독특한 정취를 즐기기 위해 항구에서 관광객 용 유람선을 기다리고, 쾰른 시민들은 강을 산책하거나 혹은 강변에 걸터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인지 라인 강 유역은 분위기 좋은 노천 바와 카페, 각종 레스토랑들이 몰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그로스 성 마르틴 교회 앞에는 알록달록하게 예쁜 색이 칠해진 아담한 레스토랑들이 모여 있다. 이곳은 관광객도 시민들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한데, 여름에는 노천 테라스에 앉아 강변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마시는 맥주의 맛이 최고의 진미이다.














 라인 강가에 오롯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그로스 성 마르틴 교회 역시 쾰른을 대표하는 로만 양식의 교회 중 하나이다. 10세기에 기원해서 13세기에 지금의 형태가 완성된 이 교회는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사들의 활동에 힘입어 설립되었고, 이 때문에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원 역할도 겸했었다. 그러나 1945년, 폭격으로 인해 기존 부지의 상당수가 파괴되었고 1985년이 되어서야 겨우 기본적인 복원을 끝내고 외부인에게 개방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건물 한쪽에서는 복원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쾰른 대성당과는 달리 둥글고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첨탑과 지붕이 매력적이지만 어쩐지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만 붕 뜬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이러한 사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스 성 마르틴 교회는 꽤 아름다운 교회이다. 내부 회당의 모습을 짐작케 하는 둥근 지붕과 뾰족한 첨탑의 조화는 눈을 편안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쭉 뻗은 직선의 첨탑들과 복잡한 장식들로 이루어진 대성당이나, 우아하지만 다소 둔탁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곡선들로 이루어진 아포스텔렌 교회와는 사뭇 다른 균형의 미가 있다. 그리고 처음 보았을 때는 너무나 안 어울리던 색색의 가게와 집 건물들도 자꾸 보다보면 나름대로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는 착각을 준다. 멀리서 보면 마치 교회가 사람들과 집들을 보호하는 방파제의 역할을 하는 것 같이 보여서 미소가 지어진다. 더불어 이 교회는 쾰른 대성당과 함께 라인 강가의 풍경을 형성하는 중요한 건축이기도 하다. 쭈욱 이어지는 도시 풍경의 파노라마에서 단연 으뜸으로 돋보이는 것은 쾰른 대성당이지만, 쾰른 대성당만 전체 풍경과 어울리지 않고 동동 떠다니는 듯한 위화감이나 부자연스러움이 없는 것은 그로스 마르틴 교회의 첨탑이 시야의 균형을 매워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천년에 가까운 신앙심의 중심이던 교회는 이젠 전쟁의 상처를 입고 영광을 과거로 흘려보낸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새로운 안식을 찾는다. 예전에는 신앙심이 사람들을 보듬었지만, 지금은 강가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즐기는 소소한 시간이 사람들을 위로한다. 그런 면에서 영광을 떠나보내고 상처를 입은 이 교회의 운명은 마냥 비극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과거는 아무리 빛나도 과거로 흘려보내고 덤덤히 새 시대를 맞을 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새살이 돋는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은 호엔촐레른 다리를 건너 강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라인 강과 대성당의 풍경이다. 쾰른에서 가장 크고 단단한 다리인 호엔촐레른 다리는 강 서쪽과 동쪽을 이어주는 혈관임과 동시에 철도와 사람, 그리고 자전거까지 지나갈 수 있는 다리이다. 이럴 때는 확실히 라인 강이 센느 강 보다 훨씬 큰 강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18세기에 완성된 돌다리만으로도 충분한 센느 강과 달리 라인 강은 거대하고 굳건한 철골 구조물이 필요한 강이다. 재밌는 것은 어디를 가든 사람의 마음은 다 똑같은 지 이 호엔촐레른 다리에도 파리의 석조다리 만큼이나 수많은 자물쇠가 걸려있다. 오래도록 함께 하길 비는 연인들의 자물쇠가 이곳에도 가득 걸려있다. 이 중에 몇 커플이나 오래 해로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리에 이름을 남긴 모두가 무탈하게 잘 살길 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파리의 다리와는 달리 호엔촐레른 다리는 크고 단단한 구조물인지라 자물쇠 무게로 인해 다리가 무너질 일도, 안전을 위해 자물쇠를 철거할 일도 당분간은 없다는 것이다.












꽤 기나긴 호엔촐레른 다리를 건너면 힐튼 호텔이 보인다. 쾰른 특산 맥주인 쾰쉬 병을 끼고 이 난관 위에 걸터앉아서 바라보는 풍경이 라인 강 풍경 중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보다 더 위에 위치한 라인 파크에 걸터앉아서 보는 풍경을 최고로 치는 사람들도 있다. 드넓은 녹지 공원에 앉아서 대성당과 성 쿠니베르트 교회가 담긴 풍경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역시 이 힐튼 호텔 앞의 케네디 우퍼를 최고로 친다. 높은 곳에 굳이 올라가지 않아도 도시의 파노라마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쾰른의 가장 큰 매력이다. 쾰쉬 한 병만으로도 충만함을 선사하는 케네디 우퍼는 이 같은 쾰른의 장점과 매력이 가장 극대화되는 지점임에 틀림없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다리 위나 사람들로 인해 시끄러운 다리 반대편과 달리 케네디 우퍼는 고요하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 도시의 풍경이 녹아내린다. 대낮부터 한 밤에 이르기까지 태양의 위치가 바뀌면서 도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시야에 새겨진다. 하늘의 색깔이 변하면서 도시의 형상이 바뀌는 그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벅찬 감동이 느껴진다. 쾰른은 활기와 삭막함이 동시에 감도는 곳이지만 그렇기에 더 감동적인 도시이다. 오랜 역사가 남긴 기품 있는 주름도, 전쟁의 상처를 딛고 라인 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강인한 생명력도, 현대 도시적인 세련됨도 모두 나를 감동시키지만 라인 강의 풍경에서 그 정점이 완성된다. 내가 이 도시를 싫어할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