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耽世 : 느끼다

[트루아/20150313] 중세 샹파뉴의 수도,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는 소도시




 명색이 파리에 살고 있는데 여행지는 항상 독일이었고,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은 스트라스부르 외엔 가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왠지 이번 달은 프랑스 곳곳을 탐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이유로 선택된 도시가 바로 트루아(Troyes)이다. 원래부터 중세의 상인들과 상업 교역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중세 프랑스에서 이름을 날리던 상인들의 본고장인 샹파뉴에 가고 싶어 했었고, 그런 면에서 트루아는 내 호기심을 아주 적절하게 자극하는 장소였다. 물론 샹파뉴 와인과 전통요리의 본고장이자 우아한 대성당이 있는 랭스(Reims)도 가보고 싶었지만, 일단 트루아가 랭스보다 더 파리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선택이 되었다.







 트루아는 파리에서 고속열차로 약 한 시간 15분 정도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지금은 그다지 규모가 큰 도시가 아니고, 현재 샹파뉴-아르덴(Champagne-Ardenne) 지방의 주요 도시는 랭스와 샬론이지만, 그래도 오브(Aube)주의 주도로써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중세의 트루아, 특히 12-14세기의 트루아는 랭스나 샬론과는 비교가 안 되는 대도시였다. 중세 서유럽을 주름잡은 샹파뉴 상인들의 거점이 된 도시가 바로 이 곳이다. 동시에 트루아는 중세 프랑스의 상권을 장악하고,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프랑스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십자군 원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샹파뉴 백작의 거주지이자 업무 장소이기도 했다. 비록 이탈리아 상인들의 세력 확장과 발루아 왕조의 중앙집권으로 인해 그 세력을 상실하면서 쇠퇴하게 되지만, 영국과의 백년 전쟁을 이기고 프랑스가 유럽 문화의 중심으로 발돋움 할 수 있게 해준 중세적 원동력은 역시 이곳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일 샹파뉴 백작이 적극적으로 십자군 원정과 콘스탄티노플 점령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프랑스와 비잔티움의 문물 접촉은 요원했을 것이고, 프랑스의 성장을 자극할 선진 문물 유입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샹파뉴, 특히 중세 샹파뉴의 수도인 트루아가 프랑스에 가지는 의미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중세 샹파뉴의 수도답게 트루아 곳곳에는 중세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교회들과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트루아 역을 내리자마자 보이는 세계 대전 및 북아프리카 전쟁 참전자들에 대한 기념비가 보여서 나도 모르게 엄숙해진 것도 잠시, 발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점점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느낌에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돌로 이루어진 작은 거리의 틈 하나하나가 걷는 사람을 중세로 안내한다. 길을 잃는다 하여도 두렵지 않을 것만 같은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에 한 순간 매료되어 버렸다. 사실 트루아는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다. 더군다나 볼거리가 몰려있는 구시가지 중심부만 놓고 본다면, 사람에 따라선 반나절 만에 관광을 끝낼 수도 있는 도시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느긋하게 둘러보는 것을 좋아하는 지라, 기왕이면 걸어서 천천히 도시를 둘러보는 쪽을 택했다. 게다가 아무리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가 되어서 재건한 것이라고는 해도, 도시 자체가 워낙 오래된 건축물들과 거리들이 많다보니 직접 발로 찾아다니며 여유 있게 음미하는 쪽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양식의 교회들은 모두 11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지어진 것들이다. 트루아 구 시가지에만 무려 10개에 달하는 교회가 있다. 모두 카톨릭 교회인데, 중세의 정기시를 통해 부를 축적한 샹파뉴의 상인들과 이를 통해 권력을 잡고 프랑스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샹파뉴 백작의 정치력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얼핏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각기 다른 모양이 눈에 띈다. 구시가지의 상점가 중심에 자리 잡은 생 장 교회는 웅장하고 투박한 듯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눈길을 사로잡는 섬세한 조각들이 돋보이고, 시청사와 시의회가 있는 광장에 자리 잡은 생 레미 교회와 생 위르반 교회는 뾰족하게 하늘로 치솟은 첨탑이 눈에 띈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같은 호화스러움이나, 쾰른이나 스트라스부르의 대성당 같은 거대한 위용은 없지만 교회 하나하나가 모여서 오래된 중세 도시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면 도시 역시 균형의 아름다움이 중요한 하나의 유기체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작은 도시에 교회가 이렇게나 많은 것을 보면 처음에는 ‘이 도시가 그렇게 신앙심이 깊은 도시인가?’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점점 중세의 프랑스와 샹파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도시의 건축을 접하게 되자 ‘아, 확실히 이 곳이 중세 샹파뉴의 수도 였었구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평화로운 길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교회와 오래된 거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중세의 트루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저절로 생긴다. 그 때는 트루아가 중세 샹파뉴의 수도였었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활기차고 붐볐을 수도 있겠다. 농업과 상업이 동시에 발달해서 튼튼한 경제 기반을 만들어줬기 때문에 이 지역이 중세 서유럽에서는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지역이었다. 쾰른이나 스트라스부르의 대성당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신비로움과 위압감을 동시에 선사하는 대상이었다면, 풍요로운 샹파뉴의 대지 위에 자리 잡은 트루아의 우아한 교회들은 신의 축복이 지상에 현신한 재림 그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들 중에서도 역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생 피에르&생 폴 대성당이다. 트루아의 교회 건축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cathédrale’ 이라는 명칭이 붙은 건축물인 만큼, 멀리서도 눈에 띄는 거대한 높이와 섬세하고 우아한 조각 장식들의 아름다움이 단연 돋보인다. 작은 규모의 교회를 나타내는 프랑스어 단어인 ‘église’가 아닌, 노트르담 성당같이 커다란 규모의 대성당인 것이다. 특히나 가장 압권인 것은 눈처럼 새하얀 대리석의 건축물 색상이다. 쾰른의 대성당이 음울하게 그을린 자국을 드러내고, 파리의 노트르담이 시간의 흔적이 보이는 빛바램을 박제인 양 몸에 새기고 있고, 스트라스부르의 대성당이 붉은 장밋빛을 풍기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여태껏 프랑스를 둘러보면서 본 성당들 중에 가장 하얗고 빛나는 성당이었다. 마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진주를 보는 것 같았다.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대성당이 대비되면서 내 머리위로 드리워지는 순간, 중세의 환상이 현실이 돼서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 환영의 조각이 흩어지고, 옛 궁전의 터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자 역사의 흔적은 어디까지나 지난 것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샹파뉴 백작을 비롯한 권력자들의 저택이었던 궁전은 이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성당 양 옆에 자리 잡은 대규모의 자연사 박물관과 현대 미술관은 원래는 궁전이었다. 하지만 이제 궁전의 원래 주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궁전은 시민들의 박물관이자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다시 살아 숨 쉬고 있다. 조용한 돌담 거리를 지나 궁전의 문 안쪽을 드나들고 있자니 어디선가 긴 드레스 자락을 흩날리는 귀부인이 우아하게 걸어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존재들 대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활기찬 숨소리와 웃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살아 숨 쉬는 현재가 함께 하기 때문에 역사의 가치 역시 빛을 발하는 것이겠지.




















 궁전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볼뤼상(Hôtel de Vauluisan) 궁전이다. 15세기에 지어진 이 궁전은 샹파뉴 백작의 업무 공간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샹파뉴의 지역 토속 예술품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궁전치고는 그렇게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섬세하게 배치된 공간과 건물의 지붕 모양이 정말로 아름답다. 2차 세계대전으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관은 원래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하니 놀라웠다. 하지만 내부도 거의 수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흔한 엘리베이터도 없이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만 한다. 심지어 목재 바닥인지라 걸어 다닐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조금만 방방 뛰어도 금방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매력적이다. 걸을 때 마다 나는 삐걱거리는 바닥의 소리와 좁은 계단의 폭은 마치 내가 실제로 중세의 성을 걸어 다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그리고 좁지만 길다란 창문 너머로 뾰족한 첨탑과 궁전 바로 앞에 서있는 생 팡탈레옹 교회가 한꺼번에 보이는 그 전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게다가 이러한 외부를 둘러싼 성 내부에는 독특한 지역색이 돋보이는 샹파뉴 지방의 전통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마치 현대라는 공간속에 중세라는 시간을 잡아다 묶어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샹파뉴 지역의 미술은 파리의 화려한 미술품들에 비하면 살짝 소박해보이지만, 그들만의 독특한 색상 연출이 눈길을 끈다. 특히 갈색의 다양한 활용이 돋보이는데, 갈색의 음영을 이용해서 표현한 종교 미술과 교회 유리창 모자이크는 샹파뉴 중에서도 오로지 트루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단순한 색감만 가지고도 다양한 표현을 낼 수 있다는 것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당 외에도 눈에 띄는 건물들이 꽤 많다. 곳곳마다 널려있는, 도시를 걸어 다닐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독특한 건물이 바로 그것이다. 얼핏 보면 알자스 지역의 전통 가옥을 연상시키는 이 목조건축들은 샹파뉴의 전통 양식을 그대로 복원한 가옥들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알자스의 가옥들보다 폭이 넓고, 색깔과 문양이 다양하다. 건물의 높이들은 전체적으로 알자스 보다 낮은 편이지만 아기자기한 모습이 그림보다 더 그림 같다. 물론 목조 건축들인지라 2차 세계대전 당시 피해를 입고 재건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옛 샹파뉴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재현했다는 것은 박물관의 사진자료와 도상들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현대적인 상점가에 트루아의 시민들이 항상 마실을 나오는 살아있는 공간이지만, 그 모습과 분위기만큼은 중세의 환상 그 자체이다.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교회 건축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작은 강, 그리고 규칙적인 배열 속에 각자의 고유한 개성을 뽐내는 전통양식의 집들이 어우러지면서 한적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오래전부터 가장 여행하고 싶었던 프랑스의 지역이 바로 샹파뉴 였는데, 파리 생활 1년도 안 되어서 그 소망을 이루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물론 랭스의 대성당과 샬론의 샹파뉴 와인을 아직 경험하지 못해서 여러모로 아쉽기는 하지만, 분명히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샹파뉴를 처음 가는 사람인 나에게 있어서 트루아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샹파뉴는 와인 이름으로만 익숙하지 사실 샹파뉴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다들 관심 있어 하는 것은 샹파뉴의 와인뿐이기도 하고. 그러나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트루아의 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독특한 풍미의 치즈와 와인을 즐길 수 있던 여유의 문화가 어떻게 해서 탄생할 수 있었는지 바로 납득이 간다. 파리와 그리 멀지 않지만 독특한 문화와 지역색을 지닌 이곳이 왜 중세 프랑스의 중심이었는지, 그리고 다른 나라보다 일찍 중앙집권을 시작한 프랑스라 하여도 중세에는 여러 가지 색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트루아는 날씨가 더 좋아진다면 이틀 정도 여유를 잡고 천천히 즐기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