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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루앙/20150327] 음산하지만 아름다운 마력이 있는 도시, 노르망디의 잿빛 보석

 

 

 

 우연인지 필연인지, 오를레앙을 다녀오고 나서 바로 루앙을 다녀오게 되었다. 잔 다르크가 승리를 거두고 성녀로 추앙받게 된 전환점을 만든 곳이 오를레앙이라면, 루앙은 잔 다르크가 부르고뉴 파의 음모로 인해 감금당하다 화형당한 곳이다. 그래서일까. 순수하고 우아한 처녀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오를레앙과는 달리 루앙은 다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도시라는 첫 인상을 주었다. 게다가 지난 금요일은 날씨도 흐릿해서 더더욱 음침하게 다가왔다. 하늘로 치솟은 거대한 첨탑을 자랑하는 루앙의 대성당은 우울한 우수를 주는 독일의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고딕의 웅장함이 느껴지지만 어딘가 모르게 으스스함이 감돈다. 마치 내 머리 꼭대기를 내려다보며 음산한 미소를 짓는 중세의 수사가 떠올랐다.

 

 

 

 

 

 

 

 

 

 

 

 

 

 

 

 

 

 

 

 

 


 루앙은 오랫동안 노르망디의 수도였고, 지금도 노르망디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다. 프랑스 북부의 해안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노르망디 지방은 바스-노르망디(Basse-Normandie)와 오뜨-노르망디(Haute-Normandie)로 나뉘는데, 루앙은 오뜨 노르망디에 속해있다. 바스는 낮음을 의미하고 오뜨는 높음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저지대와 고지대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노르망디 하면 흔히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먼저 떠올린다. 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노르망디 해안에 기습 상륙하여 독일군의 보급로를 끊고,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를 해방하고 승기를 잡는 결정적 전환점이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었으니 이를 먼저 연상하는 것도 무리를 아닐 것이다. 지금도 이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고, 파리의 서점에서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르포 서적과 도상 자료들이 숱하게 팔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전에, 노르망디가 프랑스 역사에 갖는 의미가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프랑스와 영국의 역사에 갖는 의미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북방의 차가운 바다를 누비던 노르만 바이킹의 왕이었던 기욤(영어로는 윌리엄)은 프랑스 왕에게 북부 지방 노르망디를 공국으로 하사받아 노르망디 공작(노르만 공)이 된다. 그리고 그가 다시 잉글랜드의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잉글랜드의 왕 하랄드가 전사하자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한다. 노르망디 공은 프랑스 내에서는 프랑스 왕의 치하에 있는 가신이지만, 프랑스 밖에서는 잉글랜드의 왕이었던 것이다. 노르망디 공가가 잉글랜드의 왕가가 됨으로써 궁정에서는 노르망디 프랑스어가 공용어가 되고, 프랑스의 문화가 잉글랜드에 들어와 흡수된다. 이로인해 프랑스와 영국의 역사 발전이 샴쌍둥이처럼 진행되게 되며, 나아가 훗날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왕위계승문제를 놓고 싸우는 백년 전쟁을 일으키는 씨앗이자 양국의 분쟁지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그 날, 유난히 거리에서 영국 영어가 많이 들렸다.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영국과 가까웠기 때문인지 영국에서 단체로들 많이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오는 모양이다. 1063년에 건설을 시작해서 몇 백 년 동안 재건과 증축을 반복한 성당은 여러 가지 양식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로마네스크식의 원래 건물 위에 초기, 중기, 후기의 고딕 양식이 중첩되어 지어진 성당은 우아한 풍미가 느껴지는 프랑스의 여느 성당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웅장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뾰족하고, 음산하지만, 위엄이 있다는 느낌. 말로는 차마 표현을 할 수 없는 그런 아우라이다. 성당의 첨탑은 151m로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 높이의 첨탑이다. 섬세하고 정교한 세공이 돋보이지만 금방이라도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위엄이 느껴진다. 아름답지만 마냥 아름답지 않고, 음산한 힘이 느껴지는 것도 아마 첨탑의 높이와 날카로움 때문일 것이다.


 루앙은 역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중세의 건축물들과 만나게 되는 곳이다. 로마네스크 및 각종 고딕 양식의 겉옷을 뽐내는 교회들과 건축물들, 그리고 불뚝 솟은 탑들까지 가세해서 고풍스러운 미를 더해준다. 유난히도 회색빛이 짙던 노르망디의 하늘을 금방이라도 찢어서 그 내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것만 같았던 고딕 양식의 첨탑들이 교회 곳곳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지금의 내 눈에도 신비로워 보이는데, 아마 그 옛날 중세 사람들의 눈에는 더할 나위 없이 신성한 신의 자태이자 천상을 향한 욕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지배층의 삶은 항상 호화롭고 권력을 지닌 자는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건축물에 욕망을 투영하지만,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녹록치 않은 일반 민중들의 삶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사람들이나 지금의 사람들이나 분명 미래는 지금보다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실낱같은 희망에 마음을 맡긴다. 과학이 발전하지 않고 종교가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던 중세에는 더했을 것이다. 높은 첨탑과 화려한 건축물이 한 층 한 층 올라가면서 착취는 더더욱 강도를 높여갔을 테지만, 그래도 현세를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천국에 가리라는 강한 믿음을 지녔을 것이다.

 

 

 

 

 

 

 

 

 



  루앙의 진가는 시계탑 위의 전망대에 올라가는 순간 드러난다. 성당으로 향하는 골목의 입구에 자리 잡은 이 우아한 시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탑이다. 15분마다 시계탑의 종이 울리는데, 이 시계탑의 종소리와 대성당의 종소리는 회색의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마법의 물감과도 같다. 더 놀라운 것은 만들어진 지 600년이 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건재하다는 점이다. 종루는 고딕 양식이고, 시계와 아케이드는 르네상스 양식인데 여기에 18세기의 분수와 구조물까지 얹어져 시계탑은 가히 루앙 건축사의 지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깥에서 봐도 시계 자체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주변이 사람들로 붐비는 쇼핑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시계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시계탑과 루앙의 진가는 시계탑의 테라스 전망대이다. 좁디좁은 계단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아서 위태롭고, 왠지 발자국 하나하나를 조심하면서 움직여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을 준다. 게다가 테라스는 좁아서 자칫 잘못하면 금방이라도 땅바닥으로 직하할 것 같은 공포감을 준다. 허나 그럼에도 시계탑의 테라스 위에서 본 루앙의 전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처음에는 왜 모네가 이런 회색의 우중충한 도시와 음산한 대성당을 좋아했나 싶은 생각을 했지만, 시계탑 위에 올라가서 정면으로 마주 본 루앙의 대성당은 거장을 매료시키고도 남는 강력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언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하고 ‘매력’이라는 단어도 부족하다. 말 그대로 ‘마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적절할 것이다. 시계탑 위에서 마주친 대성당의 얼굴, 그리고 여기 저기 곳곳에 흩어져 조용히 회색의 도시를 자신의 색깔로 채우고 있는 중세의 건축물들이 뿜어내는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간지럽혔으나 나쁘지는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확 뜨자 방금 전까지 눈에 보이던 동일한 풍경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나를 압도했다. 그리고 아차 하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르아브르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결국 열차를 놓쳐서 한 시간이 붕 뜨게 되었다. 다시 시내로 돌아가서 관광을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모자라고, 그렇다고 우두커니 앉아만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무엇을 할까 생각을 하다가 문득 역 근처에서 혼자 불뚝 솟아오른 중세식의 탑을 본 것이 생각이 났다. 얼른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자 탑의 이름과 간단한 유래가 나왔는데, 탑의 이름은 '잔 다르크'였고 그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탑에 잔 다르크가 화형당하기 직전까지 죄수로써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역에서 탑까지는 대략 5분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았던지라 시간은 넉넉했다.


 

 

 

 

 

 

 

 

 

 


 잔 다르크의 탑은 멀리서 보면 그냥 ‘어, 눈에 띄는 탑이 있네?’ 정도의 인상밖에 주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준다. 일단 멀리서 보는 것 보다 가까이서 보는 실물이 훨씬 더 거대하게 느껴지고, 또 어지간한 유럽의 중세 건축물들과는 달리 주거지역에 혼자 떡하니 놓인 채로 붕 떠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건축물에 대한 안내 책자를 받아 읽자 의문이 풀렸다. 원래는 루앙의 요새이자 성채이던 곳의 일부로써 지어졌지만, 나중에 프랑수아 1세 때 첨탑만 남기고 모든 성벽과 건물들을 헐어버렸기 때문에 잔 다르크의 탑만 덜렁 남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위화감이 느껴졌던 것일까.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위화감 보다는 으스스함이 먼저 감돌았다. 어둡고 침침하고, 거의 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여기 계속 갇혀있다가는 정말로 실성 직전의 정신병에 걸렸겠고 그로 인해 잔 다르크가 마녀라는 누명이 더 짙어진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간혹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있기는 하지만 들어오는 빛의 양이라고는 손톱 한줌도 되지 않는다. 차라리 아예 어두우면 모든 것을 포기하겠는데, 이렇게 한 줄기라도 빛이 들어오니 오히려 이것이라도 마저 붙잡고 애원하고 싶어지는 희망고문을 유도하는 설계가 아닐까 싶었다. 오를레앙을 다녀 왔어서 그런지 더더욱 마음이 씁쓸해진다. 비극적인 최후는 모든 영웅들이 지녀야 하는 숙명인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착잡하게 어두운 탑을 내려왔다. 주거지 한 가운데에 솟아있는 탑은 혼자만의 이 세계를 만들고 있고, 왠지 지금도 잔 다르크의 영혼이 그곳을 떠돌 것만 같았다. 허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과거는 역사가 되고, 영웅은 기억의 작용 속에 박제가 되며, 다시 인간의 삶은 하나씩 하나씩 모여서 또 다른 미래를 역사로 만든다. 어쩐지 탑 주변에 떠도는 망령이 나를 붙잡을 것 같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르아브르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