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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생 제르맹 엉 레/20150307] 파리를 감싸고 있는 초록의 치맛자락

 파리에 살고 있지만 파리 근교는 잘 안 갔었다. 물론 가기야 갔었지. 일단은 샤를 드골 국제공항이 근교에 있고, 또 보증 서주시는 분이 근교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시니까 안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2011년 즈음 저소득층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폭동이 일어난 지역, 고로 치안이 최악이기로 유명한 샤를 드골 공항이 위치한 생드니 지역이 파리 근교(Banlieue parisienne)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었던지라 근교로 나갈 엄두가 안 났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의 교통카드는 항상 파리와 파리 바로 옆에 위치한 지역만 돌아다닐 수 있는 단거리로 충전이 되었고, 이사를 하고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가 근교로 나간 일은 거의 없었다. 살림살이 장만하러 이케아 한 번 갔다 온 것을 제외하곤.


 그러던 어느 날, 파리와 파리의 역사에 관한 책들을 읽다가 문득 눈에 띄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생 제르맹 엉 레(Saint-Germain-En-Laye). 파리와 파리 주변의 근교 지역으로 이루어진 프랑스의 수도권인 일-드-프랑스 지역은 파리를 중심으로 1부터 5까지의 숫자로 구역이 나누어진다. 1구역은 당연히 파리이고, 파리 바로 옆에 붙어있는 뇌이 쉬르 센이나 이브리, 생 멍데 같은 지역들이 2구역, 그 다음 구역들이 3, 4, 5, 이런 식으로 뻗어나가는 형식이다. 생 제르맹 엉 레는 급행열차 RER A노선의 맨 끝이자 5구역에 있기 때문에 파리에서는 다소 멀다. 하지만 이곳의 숲이 루이 14세의 사유지 였던 만큼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데다가, 지금은 고고학 박물관으로 쓰이는 성이 매우 아름답고 소장품도 훌륭하다는 문구를 읽는 순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여행을 많이 다니려고 노력을 했었지만 정작 파리 근교는 가본 적이 없었던 지라 오히려 느낌 자체는 새로웠다. 가깝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간다는 것, 어딘가 떠날 때마다 내 작은 가방 속에 고이 들어가곤 하는 기차표 대신 교통카드가 내 여정표가 되어준다는 것, 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한다는 것은 국경을 넘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두근거림을 가져다준다. 열차를 타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니 새삼 내가 ‘파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오래되고 낡았지만 활기찬 파리 중심가를 지나 에펠탑이 눈에 들어오고, 에펠탑의 모습 대신 개선문의 위용이 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내려서 RER로 갈아탄다. 그리고 이어지는 풍경 속에 더 이상 파리는 없고, 파리와는 사뭇 다른 라데팡스의 고층건물들과 주택가가 펼쳐지고, 다시 어느 새 숲이 보인다. 수도권이라고 해도 파리는 파리고, 프랑스는 곧 파리이지만 파리는 프랑스와는 다른 곳이다.












 RER A선의 마지막 종착지인 생 제르맹 엉 레에서 내리는 순간 나를 맞이한 것은 새파랗게 높은 하늘과 푸른 숲 이었다. 파리에서 느껴지는 바쁜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그저 전원 속에서 평온하게 오늘의 공기를 즐기는 노년의 황혼과 이제 갓 피어나는 녹색의 푸르름을 닮은 어린 아이들이 뛰어노는 광경 뿐 이다. 아직은 덜 완전하지만 파란 빛이 짙던 하늘에는 쌀쌀한 겨울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던지라 바람이 계속 얼굴을 간지럽혔다. 그러나 그에 반해 태양빛이 따스해서 전혀 쌀쌀맞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생 제르맹 엉 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블린(Yvelines) 숲의 공원은 널찍하지만 섬세하고 우아하다. 단순한 녹지대를 넘어서 공간의 배치와 구현 자체가 주는 우아함과 균형이 눈에 띈다. 과연 중세시대부터 왕과 귀족들의 사냥터로 각광 받았던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핵심인 것은 역시 ‘테라스’ 이다. 지하철 역 입구를 지나고 다시 성을 지나면 기나긴 강의 라인을 따라 쭈욱 뻗어있는 길이 보이는데 바로 이 길을 ‘테라스’라고 한다. 유명한 정원사인 앙드레 느 노트르가 설계한 이 테라스는 단순히 이블린 숲의 테라스를 넘어 ‘일 드 프랑스의 테라스’로 불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테라스에 서서 보이는 전경을 보면 왜 그런 별칭이 붙었는지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길게 쭉 뻗어있는 길 위에서 일 드 프랑스 전체의 전경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테라스에서 전 지역을 보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색의 울창한 숲은 평온한 전원 마을을 연상시키지만, 저 멀리 보이는 라데팡스의 고층 건물들은 확실히 이곳이 도시임을 다시 한 번 확인 시켜준다. 그리고 더 시선을 집중시켜 멀리까지 시야를 확장해나가면 몽파르나스 타워와 에펠탑이 보인다. 녹색의 숲이지만 시야가 탁 트여서 보고만 있어도 모든 피로가 씻겨나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였을까. 왠지 이 장면을 지금 이 순간으로만 한정 시켜 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펜을 꺼내 들어서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한창 스케치에 열중하면서 끙끙대고 있자니 옆에 앉아 있었던 할머니 두 분이 내게 말을 건다.


“아가씨, 그림이 꽤 멋지네요. 혹시 미대생이예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미대생이 아니예요.”

“그래요? 그럼 실례지만 무슨 전공이죠? 어디 살아요?”

“파리에서 인문학 전공하고 있어요. 오늘은 기분전환 할 겸 잠깐 놀러 나온 거예요. 부인들께선 이곳 주민이신가요?”

“아뇨. 우리도 파리 사는데 놀러온 거예요. 이곳이 일 드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이랍니다.”


 아마추어도 수준도 못한 낙서이지만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덧붙여,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이 전경을 보면서 저절로 마음이 평온해지며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면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감탄은 인류 공통의 보편적 심미안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창 테라스를 걸으면서 마음을 정제시키고 나니 이번엔 인간의 예술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향한 곳이 그 유명한 생 제르맹 앙 레의 성이다. 지금은 국립고고학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성은 투박하고 딱딱한 사냥터의 느낌보다는, 얼핏 보기엔 동일한 구조의 반복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섬세한 조각과 디테일이 느껴진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기가 막힌 광채와 조명에 탄성을 자아내게 된다. 사각형 모양의 성 내부를 둘러보고 있자니 왠지 작년 가을의 끝자락에 들렸던 독일 루드비히스부르크의 성과 예전 뷔르템베르크 공작의 관저였던 슈투트가르트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립박물관이 떠올랐다. 이 두 건물은 18세기에 지어졌고, 생 제르맹 엉 레의 성은 루이 14세가 지은 것이니 필경 전자가 후자를 따라한 것이겠지. 그러나 역시 원본은 못 따라간다는 생각이 든다.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들던 뷔르템베르크의 건축과는 달리, 생 제르맹 엉 레의 궁전은 우아하게 드레스를 늘어뜨린 전형적인 프랑스의 귀부인 같다. 전 근대 시기, 전 유럽의 군주들이 프랑스 국왕의 모든 것과 궁정을 따라하지 못해서 안달이었다는 그 말이 새삼 와 닿았다. 그 때의 프랑스 군주는 단순히 한 나라의 왕을 넘어서 유럽문화의 중심축이자 태양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니 그 왕의 목이 날아간 프랑스 혁명이 얼마나 전 유럽에 큰 충격을 주었을까. 전 근대의 화려한 궁정문화를 꽃피운 동시에 왕의 목을 날리고 또 다른 근대문화를 꽃 피운 프랑스, 그리고 쉴러와 헤겔, 헤르만 헤세를 낳은 엄숙한 뷔르템베르크의 풍경이 한 순간 교차되어 지나간 것은 왜 일까. 이제 왕은 없고 공화국이 도래했고, 권력자의 품위와 여가를 나타내던 성은 시민들을 위한 박물관이 되어있다. 역사란 흘러가는 것이고, 그 흘러가는 방향을 어찌하느냐는 순전히 인간사의 물결에 달려있는 것이겠지.









 생 제르맹 엉 레는 시내 거리도 참 예쁘다. 아기자기한 골목들 사이로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예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역시 가족 단위의 거주자들이 대다수인 지역인 것 같다. 한적하고 아담하지만 올망졸망하고 귀여운 거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정말 수도권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파리가 일 드 프랑스에 속해있기는 해도, 파리와 파리가 아닌 지역이 왜 다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프랑스는 곧 파리이지만, 파리는 프랑스가 아니다. 왕의 목을 날리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연 혁명의 도시는 1789년 이후 줄곧 세계의 심장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의 굽이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도시는 자유의 공기를 만들어내는 혁명의 진화를 위해 여전히 몸부림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평온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보통 가족들의 삶이 그들의 꽃을 피워 나간다. 생 제르맹 엉 레의 아름다운 거리와 이블린 숲의 치맛자락은, 때때로는 도시의 물이 짙게 들은 깍쟁이의 투정을 받아줄 만큼 넓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