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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몽펠리에/20150402] 태양과 바람, 그리고 예술

 지난주 내내 파리와 프랑스 중부, 북부 지방은 흐린 하늘을 유지했다. 서늘한 날씨도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내내 앉아서 형광등 빛만 쬐다 보니 태양이 간절해졌다. 썬크림을 일일이 챙겨 바르지 않아도 돼서 귀찮음은 줄어들었지만, 그 보다도 일단 비타민 D가 부족해서 뼈가 너무 연해지는 것 같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햇빛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강행한 여행의 목적지는 바로 남프랑스, 랑그도크 루시용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몽펠리에(Montpellier)’였다.







 몽펠리에는 남프랑스에선 큰 도시에 속하고, 랑그도크 루시용 주의 상업 및 행정 중심지 이지만 사실 파리에 비하면 아주 작은 인구 20만의 소도시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냥 그저 그런 프랑스의 지방 도시로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작지만 20대 인구가 4분의 1이나 차지하는 곳으로 유수의 연구 성과를 내는 대학이 위치한 프랑스 제 2의 교육도시이다. 세계도시인 파리의 뒤를 잇는 프랑스의 두뇌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주 예술적인 도시이다.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따스한 남프랑스의 태양과 맑은 공기 사이에 예술적인 영혼의 흐름이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여유와 안정, 그리고 예술이 온화한 날씨와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는 젊은 도시이다.


 파리에서 몽펠리에 까지는 고속열차로 약 3시간 40분이 걸린다. 당일치기를 하고 돌아오기에는 다소 무리인 거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몽펠리에를 택한 이유는, 앞서 말했다시피 단지 “햇빛이 보고 싶어서”였다. 유달리도 구름이 가득하고 칙칙했던 지난 며칠간의 파리에서 벗어나서 남프랑스의 신선한 공기와 따스한 태양빛을 쬐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언제나 스페인, 이탈리아와 함께 인기 만발이라서 기차표 구하기도 힘든 남프랑스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지금 프랑스에 살고 있어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파리이고 남프랑스와는 상당히 멀다. 게다가 당장 여름에 남프랑스를 갈 수 있을 지 없을 지도 애매모호한 상황이었던지라 결국 나는 과감하게 몽펠리에로 가는 기차를 끊었다.







 열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바뀌는 풍경들, 특히 지평선을 따라 쭈욱 뻗어있는 푸른 평원들을 보면 프랑스가 농업국가임이 새삼 실감이 난다. 샹파뉴의 중세도시 트루아를 갔을 때에도, 로아르의 꽃인 오를레앙을 갔을 때에도 느끼던 것을 기차를 타면 항상 느낀다. 그러면서 동시에 발자크의 ‘인간 희극’ 중 프랑스 중부의 농촌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외제니 그랑데’가 나온 배경에 대해 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프랑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발자크를 읽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근대 도시이자 세계 도시인 파리와 프랑스를 지탱하는 농촌 사회를 동시에 잘 보여주는 작가가 바로 발자크이니까. 여하간 여러 가지 생각을 머릿속으로 굴리면서 상념에 젖어 있는 와중에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열차가 이동하면 이동할수록 하늘이 색깔이 바뀐다는 것 이었다. 파리부터 중부까지만 해도 우중충하던 회색의 하늘이 남쪽에 이르는 순간 새파래지면서 어디 숨었냐는 듯이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고 창문을 통해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창밖의 풍경은 중부의 뾰족하고 밀집된 집들이 아닌, 단순하고 아담하지만 정갈한 멋이 있는 남프랑스 특유의 회벽색 가옥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남쪽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살에 닿는 감촉은 생각 외로 차가웠다. 아무리 내륙이라고는 해도 몽펠리에 역시 지중해라는 바다의 영향권에 자리 잡은 지라 바닷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곳곳에 흰색의 구름 반점들을 안고 있는 하늘의 피부는 새파랗기 그지없었고, 태양 빛은 강렬해서 선글라스를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온도와 서늘한 바람이 한꺼번에 온 몸을 감싸면서 온화하지만 차가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멋들어지게 석재로 채워진 도시는 파리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고풍스러웠다. 얼핏 보기엔 회색과 흰색으로만 이루어진 단조로운 도시일 것이라는 인상과는 달리, 돌길 위를 달리는 트램들이 너무나 화려한 색으로 아기자기하게 장식 되어 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단색과는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화사한 원색들과 무늬들이 남프랑스 특유의 건물들이 어우러지면서 멋진 풍경을 이루어낸다. 아기자기하고 아담한 마을에 색깔의 생기가 돌고, 고전적인 마을의 풍경과 현대적인 트램이 만나서 안정적이고 다양한 색의 미학을 자아내고 있었다.






 비교적 2차 세계대전에서의 피해가 적어서 그런지 12세기의 요새들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실제로 몽펠리에라는 도시의 연원은 로마 시대의 갈리아 주둔지로 올라가고, 이후 로마의 속주인 갈리아 나르보넨시스의 일부로써 발전을 유지하다가, 12세기에는 십자군 주둔 해상 요새로 탈바꿈한다. 몽펠리에에서 가장 큰 성당인 생 피에르 성당 역시 이 시기에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파리의 노트르담이나 오를레앙, 루앙 등지에서 보이는 화려한 성당들과는 달리 장식도 적고 단조롭다. 그러나 초라하거나 촌스럽기는커녕 오히려 그 단조로움에서 특유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삐죽삐죽 솟았다는 인상은 주는 첨탑 장식들은 일정한 규칙의 캐논(Canon)하에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고, 미니멀리즘을 연상시키는 단순미는 오히려 화려함보다 더 남프랑스의 태양과 푸른 하늘에 잘 어울린다.
















 화장품 브랜드 명으로도 유명한 옥시탕(L'Occitan)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오크(Oc)’지방 특유의 양식을 의미하는 명사이자 형용사이다. 역사적으로 프랑스는 북부의 오일과 남부의 오크라는 두 원형을 지니는데, 몽펠리에가 속한 랑그도크(Langue d'oc; Languedoc, 본래 ‘오크’ 언어를 의미함)가 바로 이 오크 지방이다. 예부터 독특한 지방색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과연 거리를 지나다 보니 중세 오크 지방의 역사와 문화, 언어를 연구하는 연구소가 보였다. 그만큼 이 지역이 독특한 지역임과 동시에, 작지만 대학이 3개나 존재하는 몽펠리에가 교육과 학문의 도시임을 증명하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도시 곳곳에는 오크 양식으로 이루어진 교회들이 흩어져 있다. 화려하거나 장식적인 미학은 없지만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진 미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교회 예배당들은 남프랑스의 풍경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중세적인 느낌이 나지만 오를레앙, 트루아, 루앙에서 본 웅장하고 뾰족한 첨탑들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낮은 건물들과 단순한 형태가 오히려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울리면서 눈의 신경을 안정시켜준다. 쨍하게 새파란 남프랑스의 하늘과 강렬한 태양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소박한 미니멀리즘이 더 어울린다. 멋도 모르게 높이 첨탑을 쌓아올리다가는 이카루스가 추락하듯이 태양에 녹아버릴 것이다. 겉보기에는 별거 없어보여도 실제로 그 안에서 공기를 느끼다 보면 바람과 햇볕과 한데 어우러지는 건축의 미학을 깨닫게 된다. 건축사나 오크 지방에 대해 아는 바는 없어도, 적어도 이것이 오크 지방의 전통이 지닌 아름다움이 아닐까 하는 추측은 가능하다.










 하지만 역시 몽펠리에 관광 최고의 핵심은 몽펠리에 개선문 맞은편에 자리 잡은 공원이다. 꽤 큰 규모의 공원은 정면으로 보이는 서양식 정자를 중심으로 정사각형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서양식 정자는 도시에 수로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공원에서는 낮지만 친근하고 아기자기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몽펠리에의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자신들만의 지평선을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을의 풍광에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난관에 기대어 공기와 햇살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세상 모든 것이 부질없어진다. 단지 현재의 햇살을 즐기는 것만이 내 인생의 의미라고 느껴진다.









공원 뒤에는 기나긴 다리가 세워져 있는데, 로마시대에 건설된 수로를 그 이후까지도 수로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으로 보면 실감이 안 나지만, 실제로 보면 정말 길다. 허나 더 놀라운 것은 이 긴 수로가 뻗어나가는 공간 하나하나에 현재 사람들의 생활공간이 형성되어있다. 과거의 유산을 박제로만 박아두는 것이 아니라, 유산을 보존하면서도 그 유산 위에 현재의 숨결을 불어넣는 재치가 엿보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거와 역사라는 존재가 단지 책이나 박물관 안에만 고정된 먼 존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면서 현재의 삶과 미래에 까지 연결되는 유기적인 생명체라는 인식이 공간적으로 구현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이에 따라 역사의 오점도 수없이 반복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잊지 않고 유산을 이어받아 현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몽펠리에의 수로교와 지금 몽펠리에 사람들의 삶이 같은 시공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몽펠리에는 도시 곳곳에 지중해 특유의 느긋한 여유가 풍기면서 예술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저절로 흥이 나게 하는 예술의 기운이 흐른다. 이 도시가 예술의 도시라는 것은 몽펠리에에서 가장 큰 중심거리의 광장 이름이 ‘희곡’을 뜻하는 ‘코메디’라는 데서부터 드러난다. 파리의 큰 광장에 혁명의 도화선인 바스티유나 종전 기념 날짜의 이름이 붙었지만 몽펠리에의 광장에는 희곡이 이름으로 붙어있다. 그리고 광장에는 꽤 큰 규모의 극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하나만으로도 몽펠리에가 예술의 도시라는 것은 명백하다. 보통 유럽의 도시들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의 이름, 혹은 ‘중심’이라는 보통 명사나 ‘시장’같은 광장의 기능을 가장 큰 광장의 이름으로 부여하지 예술을 광장 이름이라는 고유명사로 부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이 도시가 예술에 헌사하는 의미가 큰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몽펠리에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예술가들이 거주하고 있고, 거리 곳곳에서 공연이 벌어진다.














 공연뿐만이 아니라 미술 역시 몽펠리에라는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작은 골목마다 위트 있는 벽화와 간판 디자인들이 행인을 환영하고, 상당수의 예배당들은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현대 미술 전시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옛날 우편부들이 다니던 길을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위트 있는 간판과 환영 문구를 덧붙인 것이나, 기독교 성인들의 모자이크가 남아있는 전통적인 예배당에 현대 미술을 전시하여 종교적 공간을 예술적 공간으로 탄생시킨 것이나, 기존의 유산을 잘 활용하면서도 미술을 통해 현재라는 시간을 잘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이지만 현대적이고, 나아가 이 두 형용사를 ‘예술’이라는 범주 안에 한 번에 담아낸 올바른 사례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도시 곳곳에는 녹지와 공원이 웅크리고 있다가 그 팔을 벌려 사람들을 환영한다. 젊은이들은 하하 호호 몰려다니며 순간을 만끽하고, 잔디에 드러누워서 바람과 햇살을 섭취한다. 정체되어 있는 박제 마을이 아니라 젊음과 자유로운 예술혼이 담긴 살아있는 도시인 것이다. 나 역시 연못 앞에서 햇살과 바람을 만끽하고 있다가 자유로운 영혼들이 건네는 맥주를 마시며 대화에 끼게 되었다. 세월의 풍파를 견뎠지만 여전히 방랑벽을 간직한 노년의 히피 예술가,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찾고 사랑을 하며 현재를 만끽하는 젊은 영혼들, 그리고 이제 겨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까만 머리의 이방인.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우리는 햇살, 바람, 잔디와 맥주라는 이름 하에서 하나가 되었다. 서늘하지만 따스한 하늘이 우리를 감싸 안았고, 그 순간 세계가 열렸다. 그렇게 해서 열린 세계는 언제까지나 반짝이면서 우리를 축복해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