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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카를스루에/20150417-20150503] 젊은 도시와의 하루




  아침에 일어나보니 공기가 다소 쌀쌀했다. 햇빛은 쨍하니 시야가 환했지만 바람은 여전히 강하고 공기는 싸늘하다. 전 날 짧은 바지와 얇은 자켓 하나만 걸쳤다가 오들오들 떨었던 것을 떠올리며 트렌치 코트를 두르고 호텔을 나섰다. 파리를 떠날 때에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민소매 원피스 하나로도 충분했는데, 독일에 오니 스타킹과 코트는 필수이다. 혹자는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선이 날씨에 따라 만들어진 경계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하더라. 그 때는 그 말이 그냥 우스갯소리인줄 알았지만 정작 내가 몇 번 프랑스와 독일을 왔다갔다 해보니까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내가 처음 겨울코트를 입기 시작한 곳도 독일이었다. 당시 파리에서는 간단한 가죽 자켓과 적당한 두께의 코트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독일에 오자마자 겨울코트와 목도리를 둘렀어야 했다. 그러니 파리에서는 햇볕아래 살갗을 드러내는데 독일에선 코트가 필수라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아직 내가 여행 초보라 그런지 여행을 할 때마다 반복하게 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바로 한 도시에서 상징이 되는 건축물이나 중심가는 2번 이상을 가는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도시의 중심부는 자꾸만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설령 그것이 의미 없는 행동이고, 또 보는 것 없이 그저 상점가만 돌아다닐 지라도 여러 번 되새기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향한 곳은 역시 첫날 갔던 바덴 대공 저 궁전이었다. 호텔이 다소 외진 곳에 위치한지라 버스나 트램을 타고 중심가로 나가야만 한다. 어제 트램 정거장에서 내려서 헤맨 것이 하도 지겨웠던지, 오늘은 호텔 프론트에 붙여져 있는 버스시간표를 확인한 후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어제 내가 저렴한 가격표를 보고 감탄에 차서 피곤에 절은 몸을 이끌고 쇼핑을 강행한 쇼핑센터가 있는 오이로파플라츠(Europaplatz), 굳이 해석하자면 유럽 광장 정도 되겠다. 광장 이름에 왜 유럽이 붙였나는 사실에 의아해 할 사람들도 많겠지만, 유럽에서의 광장이름이란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냥 의미 없는 고유명사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도록 한다. 파리에도 이탈리아라는 이름이 붙은 광장이 있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어제는 그렇게 쓸쓸하고 우수에 찬 모습이었던 궁전이 오늘은 아주 맑고 상쾌한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푸르른 하늘 아래에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서있는 궁전의 모습과 푸르른 녹색의 잔디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었다. 역시 같은 풍경이라도 날씨에 따라 달라짐을 느낌과 동시에 맑은 하늘과 태양 아래에서 다시 궁전의 얼굴을 보게 된 것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일까. 궁전 입구에 도도하게 서있는 도시의 설립자, 카를 바덴-둘라흐(Baden-Durlach) 공작의 동상도 어제의 우울한 모습과 달리 당당하고 품위 있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파랗다 못해 새파란 하늘을 베일처럼 드리우고 있는 레몬색의 건물을 보고 있자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주저앉아서 계속 궁전을 보고 싶어졌고, 결국 엉덩이에 자석이 붙은 듯 분수대 앞에 한참을 앉아서 궁전과 시선을 맞췄다.










 궁전 앞 잔디밭에서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다가, 바람이 다소 쌀쌀해지자 발걸음을 옮겨 궁전 안으로 향했다. 지금은 이 궁전 전체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별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학생 할인을 받아서 3유로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들어간지라 그저 시간만 때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단지 시간만 때우기에는 너무 전시가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고대 오리엔트, 지중해, 그리스, 로마부터 시작해서 비잔티움과 중세 유럽,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바덴 지역의 역사와 세계화 시대의 세계문화를 전시해놓은 전시실까지. 다양한 주제를 전시하되 산만하지 않고 밀도 있게 전시를 해놓았다는 점이시선을 끌었다.



















재미있는 것은,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자신들의 지역을 지칭할 때 뷔르템베르크라고 하는데 이곳 카를스루에에서는 바덴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이는 슈투트가르트가 속한 과거 뷔르템베르크 공국과, 카를스루에와 만하임이 속한 바덴 공국이 예전에는 다른 국가였기 때문인데, 어째서인지 지금은 바덴-뷔르템베르크로 통합이 되어있다. 이 점이 문득 궁금해져서 박물관에서 일하시는 분께 물어보자 흔쾌히 대답해 주셨다. 프로이센으로 통일되기 이전의 바덴과 뷔르템베르크는 전혀 다른 국가였고, 심지어 종교전쟁의 결과로 바덴은 카톨릭, 뷔르템베르크는 개신교 루터파로 돌아서면서 아예 다른 역사적 길을 걷게 된다. 이 때문인지 서독과 동독이 통합되기 전 까지도 바덴과 뷔르템베르크는 나뉘어져 있었는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 독일이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행정 구역을 정리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때 프로이센이나 나치를 비롯한 전체주의 세력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의 영방국 구조를 모두 갈아엎는 방식으로 주를 편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프로이센과 작센은 기존의 영토에서 다른 지역들로 분리되어 각기 다른 이름이 붙고, 전혀 다른 국가 체계를 지니던 바덴과 뷔르템베르크가 묶여 현재의 체계가 완성된 것이다. 듣고 나니 꽤 흥미로웠다. 다소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던 지난해의 슈투트가르트와 달리, 이곳은 단조로운 직선 건물이 주요이기는 해도 도시의 분위기와 박물관의 유물 자체에서는 부드러운 프랑스의 영향이 강하게 묻어났기 때문이다. 가까운 만큼 교류도 많았고, 왕실이나 상류층 간의 통혼도 잦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전 시대를 통틀어서 유물을 전시한 만큼 나치 치하의 바덴 지역과 세계 대전에 대한 전시 역시 빠지지 않았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쾰른에 갔을 때에도 전쟁과 폭력을 경고하는 전시물이 강한 인상을 주었는데, 이번에 들린 바덴 박물관에서도 역시 이 부분이 가장 눈에 띠었다. 나치수용소에서 나온 희생자들의 유품과 죄수복, 그리고 전쟁 당시 군인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된 사람들의 명단까지. 실종자 명단에는 척 봐도 상당히 어려보이는 소년과 청년들의 모습이 많았다. 사진을 보는 순간 어쩐지 가슴 한 구석이 시린 것 같아서 그만 덮어버렸다. 전 인류 역사상 가장 폭력적이고 유혈이 난무하던 시기인 20세기가 남긴 후유증은 지구 도처에 존재한다. 다만 그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하고, 후세에 이를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는 전적으로 각 주체의 노력에 달려있다.










 박물관의 마지막 부분 역시 상당히 인상 깊었다. 독일로 이주한 이슬람교도 가족들의 삶과 이슬람교도 여성들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낸 전시였는데, 마침 요즈음 이슬람권 문제가 심각한 데다 독일에서 반 이슬람 시위인 페기다(PEGIDA)가 세를 확장하는 추세인지라 더더욱 선명하게 와 닿았다. 고국을 떠나 살아가면서도 히잡을 벗지 못하는 여성들, 그리고 서로 다른 믿음과 삶이 엉키면서 만들어내는 갈등의 양상들....분명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신을 만든 것 일 텐데, 외려 그 신을 통해 혼란만 가중되고 있는 인류의 역사를 보면 씁쓸한 입맛만 다시게 된다.











 문화란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 중 가장 아름다운 것만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보다 더 어리고 순진했을 때에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문화를 내세우면서 문화를 파괴하는 자들이 극성을 부리는 시대에는 도대체 뭐가 문화이고 문명인지 중심을 잡기가 힘들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부끄러운 발언이지만, 정말로 현실이 그렇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길을 찾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겠지. 상념에 젖어서 나오는 길을 노란 색의 장중한 궁전과 알 수 없는 표정의 대공 동상이 배웅해주었다. 직선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첫인상은 딱딱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상당히 젊고 지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처음보는 이방인에게도,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삶의 여정은 가치가 있다는 상냥한 말을 흘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