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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뷔르츠부르크/20150417-20150503] 두 번 방문한 도시, 두 번의 선물

 뉘른베르크에 있을 동안 주변 도시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어서 탐색하던 중, 전부터 가장 가보고 싶었던 뷔르츠부르크에 갔다. 이 때 나는 뷔르츠부르크를 두 번 갔다. 본래는 한번은 뷔르츠부르크를, 한번은 로텐부르크나 뒹켈스뷜 같은 다른 작은 도시들에 가려고 했지만, 뷔르츠부르크에 상당한 아쉬움이 남았기에 결국 두 번 갔다. 처음 뷔르츠부르크에 갔을 때에는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에서는 구름이 다소 끼겠지만 비는 안 내린다고 해서 안심하고 왔는데, 막상 뷔르츠부르크에 도착했을 때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결국 시내 구경은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주교좌의 교회만 보고 중단해야 했고, 알테 마인 교 근처 비를 피하러 들어간 건물의 처마 밑에 앉아서 마리엔 요새를 바라보는 것으로 그 날 하루 전부를 보냈다. 사실은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 궁전을 보고, 마리엔 요새 위에 올라가서 전경을 즐기는 것이 뷔르츠부르크에 온 목적이었는데 시간 여유가 없던 데다가 비까지 내려서 결국 둘 다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 오는 날의 뷔르츠부르크는 내 뇌리에 결코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싸늘하고 으슬으슬했지만 회색 하늘 아래 젖어있는 도시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갑자기 쏟아진 비에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듯, 사람들 전부 와인 잔을 하나씩 들고 비를 피해 처마 밑에 모여 앉았다. 마인 강 위에 얹어진 다리인 알테 마인 교는 뷔르츠부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다리 위에는 여러 카톨릭 성인들과 주교들의 모습을 묘사한 조각들이 얹어져 있고, 마인 강의 전경과 건너편에 우뚝 자리 잡은 요새의 모습이 보인다. 프라하의 카를 교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직 프라하를 가보지 않은 지라 뭐라고 비교를 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고풍스러운 돌다리의 전경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유럽에 와서 정말 옛 정취가 그대로 느껴지는 우아한 석조 다리를 본 것은 뷔르츠부르크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센느 강에도 돌다리가 여럿 있지만, 파리는 뷔르츠부르크와는 달리 현대적인 대도시이다. 파리의 다리들도 아름답지만, 대부분은 관광객과 통행객으로 북적거리고, 다리 위에는 고풍스러운 조각상들 대신 커플들의 자물쇠들만이 요란하게 걸려있다. 이 같은 모습들도 정겹지만 아무래도 이런 것만 보다가 뷔르츠부르크의 고즈넉한 다리와 비현실적으로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면 고요하고 안정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뷔르츠부르크 사람들은 이 다리에 모여서 와인을 한 잔씩 들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상당히 즐긴다. 다리에 모여서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사람들 중에는 물론 관광객도 섞여있지만 현지인들도 상당히 많다. 특히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것은 다리 입구에 있는 ‘마인 바인(Mein Wein)’이라는 와인 가게에서 와인을 한 잔씩 사들고 다리의 풍경과 와인을 함께 음미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마인 강을 끼고 있는 바이에른 북부의 프랑켄 지역 역시 와인으로 유명한데, 특히 강하고 텁텁한 향이 나는 화이트 와인으로 명성이 높다. 독특한 모양의 가게 간판은 이 지역에서만 나는 와인을 담는 병 모양인데, 이 병 역시 오직 프랑켄 와인에만 한정된다고 한다. 프랑스 와인에 비해 다소 단맛이 약하고 떫은맛이 나서 아시아인들 입맛에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편이다. 하지만 내 입맛에는 그럭저럭 잘 맞는다. 약간 떫기는 하지만 혀 안쪽으로 감겨 붙으면서 마시면 마실수록 강한 향을 내는 특유의 풍미가 꽤나 신선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예전에 파리의 내 아파트에 묵었던 독일인 친구 티모가 이 지역 와인을 선물로 준 적이 있어서 미리 먹어본 지라 더더욱 좋아한다. 그때의 기억이 나에게 좋은 기억이었고, 따라서 그 와인의 맛과 향이 주는 인상은 그 당시의 추억이 주는 기쁨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한 것만으로도 와인은 그만한 맛과 가치가 있다. 회색 하늘의 물주머니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내렸지만, 와인과 함께 오래된 도시의 비오는 풍경을 즐기는 것도 충분히 운치 있었다.














 그래도 어쩐지 계속 아쉬움이 남았다. 아마 알테 마인 교 너머로 보이는 마리엔 요새와 그 유명한 레지덴츠 궁전을 방문하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결국 이틀 후, 나는 다시 뷔르츠부르크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맑은 날씨의 도시가 주는 또 다른 풍경에 넋을 빼앗겨 레지덴츠 궁전은 가지 못했다. 하지만 덕분에 도시를 자세히 둘러보고, 도시의 역사를 알려주는 건축물들을 천천히 관람할 수 있었던 점은 좋았다. 자유로운 상공업 계층 시민들의 도시인 뉘른베르크와는 달리 뷔르츠부르크는 주교가 직접 다스리는 주교좌였다. 즉, 황제도 시장도 아닌 카톨릭 주교가 직접 도시를 통치한 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분위기 역시 뉘른베르크와 다를 수밖에 없다. 레겐스부르크의 경우는 구시가지는 시민들이 주도권을 쥐고, 교외와 인근 지역은 교회가 권력을 가짐으로써 일종의 힘의 균형이 유지되어 온 도시지만 뷔르츠부르크는 전적으로 주교가 도시의 모든 권한을 행사한 도시이다. 자연히 주교가 거주하는 궁전과 미사를 보는 예배당이 도시의 중심부를 형성한다. 특히 후기 고딕 양식이 인상적인 예배당은 지금도 시내 중심부를 가리키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다. 전성기의 고딕 양식에 비하면 상당히 축소되고 간략하게 변한 양식이지만, 그래도 이 도시에서는 주교 궁전 다음으로 큰 건물이자 만남의 장소이다. 주교의 시대는 갔지만 여전히 종교가 가진 힘은 강하고, 구시대가 남긴 흔적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시내를 둘러본 후 알테 마인 교를 지나쳐 마리엔베르크 요새를 향해 올라갔다.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 주교의 궁전으로 쓰인 이 요새는 수도사들이 거주하는 수도원의 역할도 했고, 16세기에 농민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는 수도사들과 주교가 농민 반란군에 저항하는 성채였었다. 지금이야 뷔르츠부르크에도 고층 빌딩들이 여럿 있다고는 하나 당시에 이곳은 뷔르츠부르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건축물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종교가 지닌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을 터이니, 그야말로 권위와 착취 두 가지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었으리라. 언덕에 위치한 지라 올라가는 것이 꽤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런 이야기가 무색할 정도로 굉장히 가뿐하게 올라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산책과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 새 마리엔베르크 요새에 도착해있었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물론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여러 역사적 이야기를 지닌 요새 내부의 모습도 궁금하긴 했지만, 왠지 성벽에 기대어 도시의 전경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탁 트인 시야 속에 펼쳐진 풍경, 마인 강을 안고 있는 도시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대로 눈을 감은 채 풍경 속에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눈을 뜨는 데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그 옛날 요새에 살던 수도사들도, 분명히 이 풍경을 보면서 감탄을 하고 여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수도사들도 사람인데 지루하기만 한 수도원 생활을 노동과 학업으로만 보냈을 리가 없고, 또 높은 곳에서 보는 전경이 주는 아름다움을 몰랐을 리가 없다. 내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와 어휘들로 감히 표현을 시도하는 것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마리엔베르크에서 본 뷔르츠부르크는 아름다웠다. 그 옛날 농노들은 감히 이곳에 올라오지도 못했겠지만, 지금은 시민들이던 관광객이던 자유롭게 이곳을 오가며 풍경을 즐긴다. 그 옛날 수도사들에게 이곳은 유일한 삶의 터전이자 지루한 일상의 공간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이 풍경을 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리라. 여전히 언덕에선 그 때처럼 포도가 재배되고 있고 뷔르츠부르크는 대표적인 와인 산지이다. 시대도 변하고, 사람들의 삶도 변하고, 그에 따라 요새 역시 변해왔다. 변하지 않은 것은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도도하게 흐르는 마인 강 뿐이겠지.













 그렇게 한참을 풍경에 홀려 있다가 해가 조금 낮아지기 시작하자 천천히 언덕을 걸어 내려왔다. 알테 마인 교에서 다시 요새를 올려다보니, 새삼 저 높은 곳 까지 올라갔다 온 스스로가 대견해져서 화이트 와인을 한 잔 사들고 석조 다리 난간 위에 몸을 기대었다. 높은 곳에서 본 풍경과 낮은 곳에서 본 풍경, 비 오는 날의 풍경과 맑은 날의 풍경, 같은 장소라도 언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 사람이든 도시든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와인을 홀짝이고 있자니 옆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년의 남녀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뷔르츠부르크도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비성수기에 아시아인이 혼자 다니는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더불어 아시아인 관광객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중국인들은 모두 떼를 지어 다니지 결코 혼자 다니는 법이 없다. 나는 의식하고 있지 않아도 이 사람들에겐 내가 충분히 튀는 존재인 것이다. 술기운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금발의 아주머니 한 분이 어떻게 여행을 시작했고 어디 어디를 여행했냐는 말에 대답했다. 그러나 내 대답에 그녀가 돌려준 말은 상당히 뜻밖이었다.


“아, 네. 바덴-뷔르템베르크랑 바이에른이에요. 카를스루에로 들어왔다가 바덴바덴과 슈투트가르트로 갔었고, 지금은 뉘른베르크에 머물면서 바이에른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어요.”

“아니예요. 당신은 지금 바이에른이 아니라 프랑켄에 있는 겁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파리에서 바덴으로 들어와 여행을 시작했고, 뷔르템베르크를 지나서 지금 프랑켄에 있는 겁니다. 그리고 곧 바이에른의 수도에서 여행을 끝내고 파리로 돌아가겠죠.”





 그 말에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독일이라는 나라가 탄생한지도 이제 200년이 다 되어가고, 잠시 갈라졌다가 서독과 동독이 합쳐지면서 주가 재편성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지도 30년을 향해간다. 그렇지만 역시 과거의 흔적을 지우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바덴-뷔르템베르크이지만 원래 바덴과 뷔르템베르크는 다른 나라였고, 독일 남부는 바이에른 외에도 프랑켄, 슈바벤, 알고이 등의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찍이 중앙집권화 된 프랑스와는 달리 수세기동안 작은 영방국으로 나뉘어져 있던 나라인데 고작 한 두 세기동안 이루어진 일이 그 축적된 세월들을 한 번에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다. 뷔르츠부르크 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주교의 동상에 ‘사랑하는 프랑켄 사람들’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나, 각 지역마다 사투리가 달라서 못 알아듣는 해프닝에 관한 농담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나 다 그런 이유가 있어서이다. 그래도 삶은 아름답고, 여행은 아름답다. 도시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고, 도시 외부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로 여행을 간다. 어느 쪽이든 다 삶의 일부이고, 비록 슬프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현재를 살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흐린 날의 뷔르츠부르크와 맑은 날의 뷔르츠부르크, 전부 내 가슴에 안긴 선물이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