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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엑상프로방스/20150701-03] 여름 밤의 환상과 마법



 환상적인 태양과의 첫날을 보내고 난 후, 시내에 있는 터미널에 가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계속 엑상프로방스에 머물 수도 있었지만 꼭 보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환한 태양빛을 받아 생장의 절정을 달하는 자연을 보면 기분이 남다르다.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싱그러운 태양과 자연을 보면 내 신체 역시 세포 속에서부터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역시 인간의 신체도 식물과 마찬가지로 태양빛을 쬐고 광합성을 하면서 활기를 얻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 물론 태양빛 알레르기가 있어서 구름이 낀 날씨가 더 맞는 사람도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삼 태양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지 느끼게 되는 곳이 바로 엑상프로방스이다. 그늘이 쾌적하고 분수가 시원한 것도 태양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니까.








 내가 보고 싶었던 건축물은 로크파부르 수로교 이다. 엑상프로방스 근처의 벙타브랑이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 로크파부르 수로교는 마르세유 까지 이어지는 운하 구간을 형성하기 위해 건설된 구조물이다. 1842년에 건설된 것인지라 그리 오래 된 건축물은 아니지만, 석조로 만든 수로교 중에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근대화 이후 급격히 인구가 들어나면서 식수와 생활용수의 수요가 급증한 마르세유에 수자원을 공급하기 위해 론 강의 지류인 듀랑스 강의 물을 마르세유까지 옮기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이를 위해서는 운하를 건축하는 것이 필수였기에 벙타브랑의 계곡에 수로교를 건립하자는 계획안이 통과되게 되는데, 이 때 엔지니어들은 계곡의 환경파괴를 최소화하고 미관을 살리기 위해 엄청난 시간 동안 수로교 디자인을 고민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로마 시대에 세워진 수로교인 퐁뒤가르에서 영감을 얻어 수로교의 최종 디자인을 확정하고 착공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나도 이 수로교가 로마 시대에 세워진 것인 줄 알았지만 이 같은 역사를 알고 나니 어쩐지 새롭게 보였다. 어쩐지 로마 시대의 수로교 치고는 너무 깔끔하고 프랑스적인 외관을 하고 있어서 고개를 갸웃 거렸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로크파부르 수로교가 계곡에 걸쳐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옛날 갈리아 식민지를 닦기 위해 사력을 다해 건축에 힘쓰던 로마인과 이를 바탕으로 성장해 황제가 된 하드리나우스가 저절로 떠오른다. 학기 끝나자마자 떠난 쾰른에서 하드리아누스를 만나고 다시 이곳에서 또 그의 환영을 본 것이다. 이쯤 되면 유럽인들에게 있어 로마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번에 몽펠리에에서 본 페이루 공원의 수로교 역시 로마 시대의 수로교에서 영감을 받아 세워진 것이고, 파리의 개선문 역시 로마의 개선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되었고, 건장한 게르만의 후예들이 만든 현대 도시 쾰른은 로마 역시 자신들의 뿌리임을 강조하며 도시 정체성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다. 로마 제국의 본 고장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가 아닌 장소에 사는 사람들 역시 로마를 자신들의 근원으로 여긴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쯤 되면 로마라는 존재는 이탈리아 반도에 한정된 로마를 넘어 서유럽의 공통적인 역사적 기억이자 그들이 공유하는 거대한 시간의 경험을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나아가 중세라는 기억 역시 종교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한 세계 안에 살았던 공동체의 기억이고, 그렇기에 그들은 로마와 중세라는 공유의 기억을 경험으로 삼아 지금의 유럽연합 공동체가 출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최근 들어 부상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이슈들 때문에 유럽연합의 꿈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역사의 기억이 그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쉽게 부서지진 않을 것 같다.











 정오의 한 가운데에 걸려있는 태양의 몸이 기울어지고 열기가 사그라지기 시작할 때 즈음 멋진 수로교에 작별을 고하고 다시 엑상프로방스로 돌아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시내로 걸어가자 내 발걸음을 따라 태양이 서서히 기울어갔다. 유럽의 여름은 해가 길어서 늦은 밤까지도 환한 백야가 이어진다지만 엑상프로방스는 아무래도 파리보다 위도가 낮아서 그런지 해가 훨씬 더 짧았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엑상프로방스는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아도 아름다운 도시이기 때문에 해가 있느냐 없느냐는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어느 쪽이든 활기차고 생생한 여름의 정취와 아늑한 풍경을 즐기는 데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태양이 내리쬐는 엑상프로방스가 만물이 생장하는 기운이 가득한 빛과 물의 도시라면, 밤의 엑상프로방스는 더위가 가시고 쾌적함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가득한 속삭임의 도시이다. 태양과 식물이 잠에 빠지는 순간 사람들은 열기가 식은 쾌적한 시간을 즐기기 위해 걸어 나와 분수나 테라스에 앉아 낮에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꽃피운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연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똑같은 소리라 할지라도 소음과 태양의 목소리가 잡음처럼 섞여서 귀에 도달하는 낮 시간과는 달리, 밤에는 만물이 잠에 빠지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조용하게 귀를 간질인다. 위풍당당하고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생 소뵈르 대성당과 시계탑도 밤이 되면 가면을 쓰고 어스름한 빛 속에서 얼굴 윤곽만 드러내는 무도회의 귀부인인양 조용하게 땅 위로 몸을 기댄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렴풋이 그들과 눈이 마주치면 어쩐지 내가 낮에 본 장소와는 전혀 다른 장소에 온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해진다. 분명 낯익은 장소이고 내가 왔던 곳인데 시공이 뒤틀려서 평행우주에 온 것 같은 착각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이다. 아마 요정왕 오베론이 사는 마법의 숲에서 묘약에 홀린 한 여름 밤의 연인들이 느끼던 기분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밤의 엑상프로방스는 자는 척 하면서 사람을 홀리고 장막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는 장난꾸러기 요정의 도시이다.










 엑상프로방스의 샹젤리제라 할 수 있는 미라보 거리의 야시장은 이 같은 정취에 낭만을 더해준다. 1년 동안 파리에 살면서 파리라는 도시를 꽤 좋아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가 낭만적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데, 처음만난 엑상프로방스에서는 단 하루 만에 낭만이라는 감성을 느꼈다. 왜 인지는 모르겠고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굳이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낭만이라는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고 또 어디서 솟아오를지 모르는 신화 속의 샘물과 같은 것인데 그것을 어찌 설명할 수 있으며, 설령 설명할 수 있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저 걷고 또 걸으면서 도시가 주는 정취 그를 즐기는 것 외에는 의미 있는 것이 없다. 적어도 엑상프로방스에서는 말이다. 그 옛날 마차가 다니던 대로인 미라보 거리는, 이제 낮에는 자동차가 다니고 밤에는 수공예품을 파는 야시장이 열린다. 과거는 역사가 되고, 기억은 환상이 되고, 시간의 풍파를 이기고 살아남은 건축물에선 역사와 환상이 교차하며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삶을 끌어안는다. 엑상프로방스는 삶이 실재와 환상 그 어디에 있던 개의치 않고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시이다. 그리고 밤 역시 예외는 아닌지라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풍경 속에서도 각자 자신의 밤을 보내는 데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이 모여 도시의 다른 층을 쌓아나간다. 밤이 무섭지 않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 여름이라는 계절 덕택인지 이 도시 특유의 마법 때문인지는 확언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삶이 즐겁다면 마법과 꿈은 우리에게서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