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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라 로셸 (+ 액스 섬)/20150712-13] 하늘색 진주와 하얀색 바다




 왜 갑자기 이곳으로 휴가를 떠나기로 결심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단순하고 충동적인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방학을 맞아 한국에 가기 전에 프랑스의 바다에 가고 싶다'고 중얼거렸고, 그렇게 충동적으로 표를 사고 짐을 꾸려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아침 기차에 올라 라 로셸로 향했다. 아직 새벽의 흔적이 가시지 않아 어두컴컴함이 도시 전체에 내려앉아 있었고, 새벽 일찍 일어난 지라 피곤했던 좌석 시트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었다.










 종점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자 부스스하게 눈을 떴다. 기차를 타면 아무리 잠이 들더라도 한 번 정도는 깨는데 전혀 깨지 않고 그대로 계속 잠을 잤다. 몽롱한 채로 잠에 젖은 눈꺼풀을 애써 들어 올리고 역에서 내리자 따스한 태양이 얼굴 위로 드리워졌다. 쨍하지만 이글거리지는 않는 맑은 태양이 여과 없이 타오르며 여름임을 과시하고 있었지만 살며시 얼굴과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는 바닷바람 덕분인지 그다지 덥지는 않았다. 태양과 바닷바람이 만들어내는 이중주가 썩 나쁘지는 않았던지라 천천히 걸었다. 선글라스가 없으면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태양빛이 강렬했지만 습도는 낮았기에 쾌적한 느낌을 주어 걷기 제격인 날씨였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겨 역에서 시내로 향하자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새하얗지만 빛을 흡수하면서 반짝이는 건물과 거리 사이에 바다가 가로질러 몸을 눕히고 있었고, 바다 위에는 요트들이 삼삼오오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요트를 품에 안고 있는 바다와 태양이 이들의 모습을 반사하면서 만들어내는 그 풍경은 생기와 찬란함이라는 두 단어를 실물로 빚어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자신의 계절임을 과시하는 태양,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요트들과 단순하지만 고풍스러운 흰 석재 건물들이 수면 위로 빛과 함께 흐드러지면서 만들어내는 장관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환호성을 질렀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난 후 점심을 먹고 선착장으로 갔다. 전부터 라 로셸 앞바다에 있는 레(Ile-de-Ré)라는 섬의 명성을 들어서 이곳에 꼭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갔을 때에는 레 섬으로 가는 배가 운항하지 않는 기간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액스 섬(Ile d'Aix)으로 가는 표가 한 장 남았다는 말을 듣고 바로 표를 사서 배에 올랐다. 학기 끝나자마자 쾰른으로 가서 라인 강 유람선을 탔지만 그래도 배를 타겠다고 한 이유는 정말 사소하다. 강은 강이고 바다는 바다인데 어찌 강을 건너는 유람선과 바다를 건너는 배가 똑같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쾰른에서 출발해 라인 강 유역의 도시들을 도는 유람선은 천천히 호흡을 하나하나 고르는 느낌으로 강물을 갈라 나가지만, 드넓은 대서양을 가로질러 바람과 마주하는 배는 작지만 더 빠르고 생기 있다. 생각 외로 바닷바람은 차가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노르망디의 냉랭한 바다나 라인 강의 우수 젖은 색깔과는 달리 태초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평온하게 태양빛을 받으며 요트를 타는 사람들과 발을 맞추고 있는 대서양의 색은 시원하고 맑지만 싱싱한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역시 프랑스 대서양의 꽃, 특히 서부 샤렁트 마리팀 지방 대서양의 진주는 보야르 요새이다. 라 로셸과 액스 섬 사이에 떠 있는 이 신비로운 요새는 한 때 프랑스 내에서 많은 인기를 끌던 티비 프로그램의 무대이자 촬영지이기도 하다. 원래 이 요새는 루이 14세 때 샤렁트 마리팀 지방의 대표적인 무기고이던 로슈포르 항을 지키기 위한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중상주의 정책을 강화하면서 적극적인 해외 팽창과 식민지 확보에 발길을 떼기 시작한 상태였고, 이에 따라 바다와 접하고 신대륙으로 가는 항로의 입구인 샤렁트 마리팀 지방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대두되던 시기였다. 즉, 보야르 요새의 시작은 곧 프랑스 해외 팽창 역사의 시발점인 것이다. 이는 나폴레옹 시대에 와서 더욱 확장되었고, 특히 영국과의 전쟁을 진행하면서 해군 병력 및 해양 기지를 강화하는 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보야르 요새는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에 들어가게 된다. 요새가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시대 역시 나폴레옹 통치 시기이다. 지금의 샤렁트 마리팀은 요트를 타거나 일광욕을 하면서 자연의 은총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지만 정작 이곳의 역사는 치열한 전투와 긴장으로 가득 차 있다. 어디를 가든 아름다운 풍광 뒤에는 아름답지만은 않은 역사가 깃들어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바다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 새 액스 섬에 도착했다. 액스 섬은 작은 섬이다. 언제부터 이 섬에 사람이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확실한 것은 1067년 클뤼니 수도회 출신의 수도사가 처음 이 섬에 들어와 정착한 외부인이라는 것이다. 액스 섬에서 최초의 교회인 생 마르탱 교회가 이를 증명하는 증거이다. 그래도 이 섬에서는 가장 큰 교회이지만 섬 자체가 워낙 작다보니 교회의 규모도 작은 동네 예배당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섬임에도 불구하고 섬의 역사는 꽤나 우여곡절이 많다. 중세 시대에는 북방에서 내려온 노르만 족의 침입을 겪었고, 백년 전쟁부터 나폴레옹에 이르는 시기에 걸쳐서는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에 중요한 역할을 한 전략적 요충지였고, 세계 대전 당시에는 가장 치열하게 해상 공방전이 벌어진 곳이다. 그야말로 전쟁과 군대의 역사가 곧 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생 마르탱 교회 외에 섬에 남아있는 흔적들은 전부 나폴레옹과 세계대전이 남긴 유산들이다. 섬을 둘러싸고 있는 요새도, 항구에서 가장 먼저 사람들을 맞이하는 대포들도. 모두. 허나 지금의 액스 섬은 너무나도 평화롭고 고즈넉해서 해안가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노라면 과거의 고단한 역사는 그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착각이 든다. 그저 모든 걱정을 해안선을 따라 흐르는 바닷물 속에 흘려버리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녹아들고 싶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아마 그 치열한 시대에 이 섬에서 살던 사람들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기에 시대를 견뎌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 나절을 액스 섬에서 보내고 다시 라 로셸로 돌아왔다. 마침 이 때가 라 로셸의 여름 음악축제가 열리는 시기였던지라 밤에도 음악과 환호성으로 가득 차 도시 전체에 활기가 가득 흘러넘치고 있었다. 오히려 낮보다 밤이 훨씬 더 시끌벅적하고 생생하다. 태양은 일찍이 자신의 근무를 마치자마자 퇴근해버렸지만 쾌적한 여름밤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휴양객들의 열망은 밤이 되어도 식지 않는 모양이다. 덕분에 태양이 없어도 도시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고 나 역시 이에 휩쓸려 밤 산책을 나서고야 말았다. 밤이지만 전혀 캄캄하지 않고 은은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이 도시의 공기를 채우는 광경은 비루한 인간의 언어로는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다. 인간의 힘이 더해져 완성된 아름다움이지만 정작 인간은 그 아름다움을 언어나 사진 같은 도구로 표현할 수 없다. 이 얼마나 역설적이고 비극적인 현상인가! 하지만 그렇기에 도시의 야경이 자아내는 오묘한 빛과 어둠의 미학과 적절하게 시원한 공기를 만들어주는 음악의 감촉은 더 또렷하게 뜨내기 여행객의 뇌리에 각인된다. 라 로셸은 낮도 밤도 모두 아름다운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