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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라 로셸/20150712-13]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자들의 도시




 하룻밤을 보내자 어느 새 마지막 날이 되었다. 1박 2일 여행은 이런 점이 참 아쉽다. 하지만 시간이 짧기 때문에 한 순간이라도 아끼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돌아다니게 되는 점도 있으니 단기 여행이든 장기 여행이든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고로 천천히 라 로셸 구 시가지와 구 항구 주변을 산책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름의 라 로셸은 도착한 날이나 떠나는 날이나 모두 아름답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답게 훌륭한 풍광을 자랑하지만 부산이나 마르세유, 노르망디 같은 바닷가 특유의 거친 느낌은 없다. 그건 아마도 지금의 라 로셸이 대학생들이 많은 대학도시이자 은퇴한 부자들이 노년을 보내는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라 로셸은 우여곡절이 많은 도시이다. 이곳은 ‘삼총사’에 등장하는 왕 루이 13세와 리슐리외 추기경이 신교도 위그노들과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인 곳이다. 프랑스 서부 최대의 항구였던지라 상인들을 중심으로 신교도가 번성했었는데, 이들이 중앙 정부와 갈등을 빚게 되고 이것이 전쟁의 시발점이 된다. 특히 강력한 왕권 구축을 위해 위그노를 제압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서부 해안가를 장악하려는 루이 13세의 희망과 리슐리외의 전략은 정면으로 라로셸의 신교도들과 부딪치게 되고 이로 인해 중앙 정부와 신교도들 간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장기간의 전투 후 도시는 완전히 제압되어 왕의 치하에 놓이게 되고 라 로셸 및 샤렁트 지역의 신교도들은 대규모로 신대륙 이민을 강행한다. 프랑스에 절대 왕정이 정착하고 신교도가 설 자리가 없어지자 믿음의 자유와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해 많은 위그노들이 신대륙 행을 선택했다. 프랑스의 신대륙 개척사와 캐나다 이민을 이야기 할 때 라 로셸을 빼면 이야기가 안 된다. 프랑스 서부의 전략 요충지이자 중요한 항구도시였던 만큼 이곳을 중심으로 식민지 개척과 이민을 위한 항해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뱀파이어와 마녀, 재즈의 고향으로 알려진 미국의 뉴 올리언즈를 탄생시킨 곳도 라 로셸이다. 올리언즈가 오를레앙의 영어식 발음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세 라 로셸 역사의 흔적이자 구 항구에서 사람들을 반겨주는 두 탑, 랑테른 탑과 생 니콜라 탑에 올라가면 라 로셸의 풍광과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14세기에 지어진 탑은 본래 영국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지어진 탑이었지만 구 항구의 기능이 쇠퇴하면서부터는 도시의 랜드 마크이자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탑에는 라 로셸의 역사가 연대기 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라 로셸의 위그노 신교도들과 이민의 역사가 아주 알기 쉽게 정리되어있다. 샤렁트 마리팀 지역의 신교도 외에 파리의 선교사들도 새로운 종교적 낙원을 찾아 신대륙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이들 뿐만 아니라 노르망디, 브르타뉴 등지에서도 대규모의 인원이 캐나다 행을 택했는데 이들의 출발지 역시 라 로셸이었다. 당시의 노르망디와 브르타뉴는 프랑스의 변방이었고 가장 가난한 농촌 지역이었다. 인구의 절대다수가 자신이 태어난 곳을 벗어나지 못하던 시대에, 가난하고 글 읽는 법도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신대륙으로 가면 굶지는 않고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 청년들이 대규모로 이민을 택했다. 이들은 본토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로 희망이 없지만 신대륙에서는 그래도 다른 희망이 있을 거라 믿었다. 이들이 바로 아메리칸 드림의 원조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떠나는 것은 쉽진 않았을 것이고 기대와 함께 두려움도 그들의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 익숙한 곳, 정든 곳을 떠나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곳을 가는데 어찌 기쁘기만 할 수 있을까. 괜히 가슴이 찡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절박하게 삶을 찾아 나선 이들과 나의 처지를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 역시 꿈을 위해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있는 처지인지라 그들의 모습 위에 내 모습을 살짝 겹쳐 봤었던 것 같다. 탑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평화롭고 아름답기 이를 데 없지만,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의 눈물겨운 역사가 서려있다. 시간이 흘러 이제 그들의 눈물은 흔적만이 남아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새하얗게 부서져 해변을 물들이는 햇빛과 선선한 바람 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탑에서 내려와 천천히 산책을 했다. 생 니콜라와 랑테른 두 탑은 해안가를 따라 도보를 통해 셴느 탑까지 연결된다. 애석하게도 셴느 탑은 공사 중이어서 들어가지 못했다. 아쉽긴 했지만 천천히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돌길을 걸으면서 도시를 한 번 더 눈에 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바깥으로 나와 여름의 생기를 즐기고 시끌벅적한 활기를 가득 담은 공기가 구 항구를 채우고 있었다. 그 틈에 끼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뒤로하고 파리로 떠나야 한다는 것이 사뭇 아쉬웠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다음번에도 꼭 이곳으로 와서 바다를 즐기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기억은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덧칠해져 더 또렷해진다. Au revoir, La Roche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