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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베르트하임 암 마인/20151001-08] 백설공주와 종교전쟁

 아샤펜부르크에서 1박을 지새운 후 반나절 정도를 더 궁전 근처에서 노닐다가 기차에 올랐다. 목적지인 베르트하임 암 마인으로 가기 위한 기차는 베스트프랑켄 반, 말 그대로 프랑켄 지역 서부를 순환하는 지역 열차이다. 느리게 가는 기차는 아샤펜부르크를 출발해 프랑켄 숲 서쪽을 순회한다. 지평선이 보이는 평야만이 계속 이어지는 프랑스의 풍경이나 굴곡이 예술적인 산맥이 가득한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의 풍경과는 달리 독일의 풍경은 숲으로 가득 차 있다. 거대한 산맥이 굽이치지는 않지만 독일인들처럼 키가 큰 침엽수들이 차창 밖을 가득 메운다. 독일은 제조업과 공업으로 유명한 나라이지만 정작 독일을 여행하다보면 공업 지대보다는 울창하고 어두운 숲들을 더 많이 보게 된다. 로마군들이 게르만족과 싸우다가 홀랑 사라져버린 토이어부르거 숲이나 계모를 피해 숲으로 들어간 백설 공주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님을 실감한다. 실제로 프랑켄 숲은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 이야기나 늑대에게 잡아먹힐 뻔 한 빨간 모자 이야기의 무대이다. 독일의 숲은 아름답지만 현대인인 나의 눈에도 꽤 으스스한데 전기도 없던 옛날에는 조금만 어두워져도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문화나 언어가 달라도 공포는 꽤 많은 공통점과 보편성을 가진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졸다가를 반복하다 일어나니 차창 밖으로 숲과 성이 보였다. 느즈막한 오후가 되서야 베르트하임에 도착한 것이다.









 게스트하우스를 찾느라 지쳐서 곯아떨어진 첫날밤을 보낸 후 일어나 천천히 마을을 산책하기로 했다. 베르트하임은 아주 작은 마을이다. 덕분에 버스도 오후 5시면 끊기는데 하필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걸어가기엔 역에서 꽤 먼 곳에 숙소를 잡았고, 심지어 버스가 끊긴 시간에 도착하는 바람에 숙소를 찾느라 진탕 고생을 해야만 했다. 허나 그런 것도 다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엄한 곳에 숙소를 잡은 과거의 나 자신에 대한 원망과 사방을 둘러보아도 숲과 주택가밖에 없는 풍경을 보면서 느끼는 경악이 겹쳐져서 심정이 참 복잡했지만, 이런 모험은 조금이라도 젊고 체력이 좋을 때 하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고생하면서 마을로 들어온 보람을 느끼게 한다. 특히 언덕 위에 있는 숙소에서 읍내로 내려오면서 보이는 전경은 정말로 아름답다. 평화롭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과 지극히 소박한 개신교 교회, 그리고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성을 한 눈에 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마인 강 유역에 있는 베르트하임이라는 의미에서 베르트하임 암 마인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은 마인 강과 타우버 강을 동시에 끼고 있다. 이 두 강을 경계로 바이에른과 바덴-뷔르템베르크가 나뉘는데 베르트하임은 바덴-뷔르템베르크에 속한다. 하지만 바이에른과 워낙 가까이 붙어있는데다가 역사적으로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받았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의 정체성과 지역의식 역시 아샤펜부르크 만큼이나 독특하다. 행정적으로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속하지만 카를스루헤가 중심인 바덴이나 슈투트가르트 중심의 뷔르템베르크와는 전혀 다른 의식을 지니고 있는 개신교 공동체이다. 과거에는 강이나 골짜기 하나만 건너도 전혀 다른 국가였다. 성곽 위에 올라가면 마인 강과 타우버 강의 풍경이 한 눈에 보이는데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의 눈에는 모두 다 그저 같은 작은 마을들로 보이지만 각 마을들마다 뚜렷한 특색이 있고 아직도 서로를 라이벌로 인식하는 지역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베르트하임 역시 30년 전쟁 동안 가장 치열하게 종교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을 것이다. 베르트하임의 상징이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은 한 때는 분명 영화로운 권력의 상징이었겠지만 지금은 그냥 쓸쓸한 폐허로만 남아있다. 종교전쟁 이후 마을이 개신교 공동체가 된 이후 영주들은 축출되고 그 이후로 버려졌다고 하니 꽤 오랜 시간동안 관리하는 사람 없이 방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언제 있었냐는 듯 성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너무나도 평화롭고 아름답다. 역사는 변하고 자연은 도도하게 그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역사는 흘러갈 지 언정 흔적을 남긴다. 내가 베르트하임에 들린 그 날은 가을을 기념하는 옥토버페스트 맥주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었는데, 행정적으로는 바덴-뷔르템베르크에 속하고 공식적인 마을의 종교는 개신교임에도 불구하고 바이에른의 영향을 받은 축제가 한창인 것을 보고 꽤 놀랐었다. 더불어 같이 맥주를 마시던 사람들의 독특한 정체성 인식과 공동체 인식을 보고도 놀랐었고. 이제 베르트하임이라는 마을은 어엿한 국가 체제를 갖춘 독일이라는 나라의 일부이고 종교 전쟁과 분열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다.















 허나 이렇게나 작은 마을이지만 여러 우여곡절이 참 많다. 잘 보존된 구 시가지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은 장난감 나라 같아서 걸어 다니는 묘미가 있다. 전통 양식이지만 깔끔하게 꾸며진 집들과 평화로운 운하의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나는 도시생활에 지나치게 익숙한 사람인지라 시골에서 생활하는 것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지만, 가끔씩 자연으로 들어와서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을 음미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돌바닥의 작은 네모 조각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곳에 살았던 유대인 가족이 나치 시절 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맞았다는 것을 기록해 둔 표식인데, 보아하니 어린 아들을 둔 일가족 전원이 수용소에서 최후를 맞았다. 숲속 깊은 곳에 위치한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이지만 종교 전쟁과 홀로코스트를 피할 순 없었던 것이다.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것 같은 곳도 결국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하며 슬슬 숲이 지겨워질 때 까지 나는 이곳에 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