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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마부르크/20151001-08] 삶과 역사의 사이에 끼인 자들을 위한 곳




 프랑크푸르트에 온 김에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도시 중 하나인 마부르크를 가기로 했다. 성녀 엘리자베트의 전설이 깃든 고딕 양식의 교회와 아름다운 도시의 정취에 대한 명성을 익히 들었기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참인데 마침 프랑크푸르트에 오게 되었으니 마부르크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헤센 북부에 위치한 마부르크는 란 강을 끼고 있어서 마부르크 안 데어 란(Marburg an der Lahn)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란 강 유역의 마부르크라는 의미이다. 지금이야 마부르크와 프랑크푸르트 모두 헤센이라는 한 주 안에 속해있지만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에는 전혀 다른 국가였다. 지금의 독일 행정구역은 과거 제후국과 영방들의 영역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랜 분열의 역사와 특정 지역의 팽창주의로 인한 전체주의의 역사를 의식해 의도적으로 이를 피하기 위해 행정구역을 재편한 면도 있다. 한 주 내에서도 골짜기나 강만 건너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도 이 같은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마부르크 역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뾰족한 첨탑이 돋보이는 고딕 양식의 성 엘리자베트 교회이다. 성녀 엘리자베트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교회는 마부르크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임과 동시에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한 첫 번째 단추이다. 초기 고딕 양식의 전형적인 미학과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 이 교회는 1235년에 건축을 시작해 1283년에 완공되었다. 교회의 연원이 된 성녀 엘리자베트는 본래 헝가리의 왕녀였지만 튀링엔의 선제후 하인히리와 결혼해 튀링엔으로 이주한다. 그녀의 호칭이 ‘헝가리의 엘리자베스’ 혹은 ‘튀링엔의 엘리자베트’라는 두 개의 호칭으로 불리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최고의 혈통과 신분의 여성으로써 평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테지만 1227년, 그녀의 남편 하인리히가 페스트로 사망하면서 운명을 그녀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남편의 죽음 후 그녀는 재혼을 거부하고 이로 인해 그녀는 세 아이와 함께 튀링엔에서 쫓겨나게 된다. 쫓겨난 그녀는 마부르크로 와서 병원을 세우고 빈자와 병자들을 구제하는데 평생을 보내다가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교회 옆에는 그녀가 세운 성 엘리자베스 병원의 폐허가 남아있다. 형체는 사라진 채 쓸쓸하게 남아있는 병원 건물의 벽과 표지판만이 이곳이 병원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의 행적은 전설로 남아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비록 병원은 없어져 시간에 짓뭉개졌지만, 얼마든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고귀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미천한 자들을 위해 삶의 일부를 떼어 나눠준 그녀를 위해 봉헌된 교회는 지금까지도 독일 최고의 고딕 건축으로 꼽히며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중세에 세워진 병원의 영향 때문인지 마부르크 대학은 지금도 의대로 상당히 이름 높은 대학이다.










 마부르크의 역사는 꽤나 굴곡진 편이다. 1235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에 의해 성녀로 시성된 엘리자베트의 영향 때문인지 한 때 성지 순례 장소로써 명성을 날렸다. 십자군 기사단이 원정길에 머무른 교회였고, 지금도 성당 안쪽에는 기사단과 헤센 선제후들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마부르크 역시 종교 개혁의 광풍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오랫동안 카톨릭 계 선제후들과 합스부르크 왕가, 그리고 교황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선제후 필리프는 성녀 엘리자베스의 유골을 다른 지역으로 보냈고, 이로 인해 오랜 성지 순례지로서의 도시의 역사는 끝을 맺고 신교 제후국 헤센의 도시로써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 구교에서 신교로 넘어가면서 재탄생된 도시의 역사를 논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마부르크 필립스 대학이다.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역사와 규모의 종합대학이 존재하는 덕분에 마부르크 역시 뮌스터나 하이델베르크에 뒤지지 않는 대학도시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마부르크 필립스 대학의 필립은 위에서 언급한 헤센 선제후의 이름에서 따왔다. 적극적으로 루터와 신교를 지지한 영주 필립에 의해 세워진 대학답게 현존하는 독일 대학 중 가장 오래된 신교 대학이다. 전통적으로 의대가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만 신학과 심리학 분야도 상당히 유명하다. 그림 동화로 잘 알려진 그림 형제가 이곳에서 수학했고, 신학자 루터 역시 이곳에 머물러 공부를 한 적이 있다. 대학은 엘리자베트 교회와 함께 마부르크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결정해주는 상징이기도 하며, 동시에 신교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아 현재까지 이어지는 도시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대학도시라 그런지 날씨 궂음에도 불구하고 맥주병을 들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헤센 선제후 필립의 선택은 지극히 정치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젊은이들을 지속적으로 도시에 불러들여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운 도시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과 미래 만큼이나 알 수 없는 존재가 역사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헤센과 바덴-뷔르템베르크는 독일에서 가장 언덕과 구릉이 많은 지역이다. 마부르크 역시 구릉과 언덕이 상당히 많은 도시로 구시가지가 꽤 높은 언덕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걸어서 보려면 적지 않은 각오가 필요하다. 대개 도시의 시내가 문자 그대로 안쪽 도시를 뜻하는 ‘이넌슈타트(Innenstadt)’임에 반해 마부르크의 시내엔 위쪽 도시를 의미하는 ‘오버슈타트(Oberstadt)’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지리 및 환경으로 인한 것이다. 성 엘리자베트 교회와 병원의 폐허를 끼고 돌아 계단을 오르고 언덕을 올라야 마부르크의 구시가지가 나온다. 13세기에 형성되어 종교 개혁을 거치고 지금의 모습에 이른 구시가지는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종교로 인한 광풍이 지나간 과거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롭고 고즈넉하다.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지나가는 대학생들로부터 도시의 역사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비가 오든, 피비린내 나는 종교 전쟁의 역사든,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를 얼마나 보람차고 찬란하게 살아가느냐 이다. 치열했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평온을 맞은 도시와 현재의 도시에 활기를 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역사 그 자체보다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법이다. 역사를 배우고 연구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현실의 삶에 숨을 불어넣기 위함에 지나지 않는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역대 마부르크 선제후들이 살았던 궁전이 자리 잡고 있다. 가파르게 경사진 길과 계단을 올라 도시의 머리 꼭대기에 다다르면 생각 외로 성이 꽤 큼을 느끼게 된다. 프랑스에서 봤던 성들이나 궁전과 비교하면 마부르크의 성의 규모는 그렇게까지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도시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꼭대기에 위치해서인지 밑에서 올려다보면 어쩐지 위압적인 느낌이 든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 성채에 나오는 성이 연상된다. 현재는 성채의 일부는 대학 기숙사로, 그리고 궁전 건물은 헤센 주립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호기심에 이끌려 안에 들어가 전시를 구경하기로 했다. 헤센 주립 박물관인 만큼 헤센과 마부르크의 역사에 대한 전시물들이 주를 이룬다. 본래 성지 순례지 겸 요새로 시작해 번영한 도시의 전경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지금이야 독일이 첨단 기술로 이름이 높은 공업국가 이지만 한편으로는 중세적 영방 체계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는 말을 이런 곳에서 실감하게 된다. 헤센 시의 역사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죽음과 관련된 자그마한 세라믹 미니어처 조각상들이다. 앙상한 해골로 형상화된 죽음은 씨익 웃으며 사람들의 숨통을 죄고 있고 죽음과 피부를 접촉하고 있는 인간들의 표정에선 공포와 절망감이 드러난다. 주목할 점은 죽음이 육신을 옥죄는 존재들의 성별과 나이, 신분, 직업이 다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죽음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점을 그 옛날 사람들이 현대인들보다도 더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돈으로 기술을 사고 과학의 힘을 빌려서 수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된 지금과 달리, 흑사병이든 전쟁이든 그저 죽음 앞에선 모두가 스러져야 했던 시대였으니까. 

















 죽음의 도자기 조각을 보고 다소 우울해진 마음에 발걸음을 돌려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계단을 내려와 성 밖으로 나왔다. 아직 죽음을 마주하기엔 다소 이른 나이이기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죽음과 관련된 것을 보고 생각하다보면 급속도로 기분이 급강하된다. 나이가 들고 더 성숙하면 더 의연하고 진지해질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허나 마부르크는 아주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도시였다. 특히 갓 비가 그쳐 젖은 채로 몸을 말리고 있는 도시의 전경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마부르크 성은 도시에서 가장 높은 장소이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전 도시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성 전면에서는 루터 교회와 구 시가지의 전경이 훤히 보이고, 성 후면에서는 성 엘리자베트 교회와 숲의 전경이 보인다. 성을 둘러싸고 있는 언덕배기의 성곽을 따라 촉촉하게 젖어있는 도시의 모습을 보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가라앉으며 지금 내가 건강하게 두 다리로 대지를 딛고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십자군과 페스트, 그리고 종교 전쟁의 광풍 속에서 결국 도시가 살아남아 찬란하게 생동감을 빛내는 대학을 남겼듯, 나의 삶 역시 소소한 소용돌이를 거쳐 무언가를 남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마부르크는 젊음을 가진 자이든 혹은 이미 젊음을 보낸 자이든 한번 쯤 걸어볼만한 곳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