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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슈투트가르트/141127-141130] 아주 사소했던 계기, Wilkommen Sie!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각종 행정 처리로 질릴 대로 질려있을 때, 크리스마스 마켓 개장 기간 한정으로 파리에서 독일의 몇몇 도시로 가는 열차표를 할인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그 때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냥 뭐에 홀린 듯 SNCF(프랑스 국영 철도청 겸 여행사) 에이전시로 들어가서 표를 사버렸다.

 

“슈투트가르트로 가는 크리스마스 마켓 표, 왕복으로 한 장 주세요.”

 

 그렇게 해서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혼자 떠나는 여행’을 실현하였고, 그 첫 행선지는 독일 슈투트가르트가 되었다.

 

 

 지금은 무신론자나 불교도도 꽤 있다고는 하지만 유럽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에 바탕을 둔 문명이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것이 단순한 휴일에 불과한 한국과는 달리 1년 중 가장 큰 명절이자 연휴이다. 하지만 같은 유럽대륙이라고 해서 크리스마스가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다. 아직 파리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파리 같은 경우는 상점과 백화점의 진열대에서 풍기는 크리스마스의 느낌 외에 다른 것들은 그냥 보통의 대도시 같은 반면, 독일은 각 지역별로 크리스마스 한 달 전 부터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어 모여서 술도 마시고 잡담도 하는 축제의 분위기가 형성이 된다. 구교 지역인 바이에른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상당히 유명하다고 하던데, 사실 신교 지역인 바덴-뷔르템베르크나 헤센 역시 크리스마스 마켓을 크게 여는 편이다.

 

 특별 할인가가 제시된 티켓에 해당되는 도시들은 프랑크푸르트(Frankfurt), 카를스루헤(Karlsruhe), 그리고 슈투트가르트(Stuttgart)였다. 사실은 프랑크푸르트를 상당히 가고 싶었지만 슈투트가르트에 친구가 살아서 슈투트가르트로 가는 티켓을 샀던 것 같다. 애석하게도 그 친구가 바빠서 친구는 못 만났지만, 어쨌거나 생애 첫 독일 여행이라서 그런지 꽤나 즐겁게 돌아다니다 왔다.

 

 사실 출발할 때는 그렇게 기대에 부풀어있지 않았다. 일단 나는 독일이라고 하면 베를린을 제일 먼저 가보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베를린과는 여러모로 정 반대인 슈투트가르트를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슈투트가르트에 사는 친구는 보지도 못하고, 여행을 준비하는 주에는 각종 수업준비와 생활 문제 처리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상태에서 그다지 들떠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더불어 독일로 가는 열차가 출발하는 파리 동역(Gare de l'Est)과 북역(Gare du Nord)에 대해 안 좋은 추억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사족이긴 하지만 이 두 역 부근은 파리의 온갖 양아치들과 노숙자들 집합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건 짐도 대충 10분 만에 싸고 가볍게 짊어진 채 기차에 몸을 실을 때만 해도 나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정말로 내가 여행을 떠난다고 실감을 했을 때는, 열차가 출발하면서 넓디넓은 농지를 지나 스트라스부르로 향할 때 이다.

 

 파리에서 슈투트가르트까지는 대략 3시간 40분 정도가 걸린다. 카를스루헤나 슈투트가르트를 비롯한 바뎀-뷔르템베르크 지역, 그리고 뮌헨으로 대표되는 바이에른으로 떠나는 열차는 항상 파리 동역에서 출발한다. 독일 남부에 위치한 이 두 주는 농업과 각종 첨단산업이 기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독일에선 가장 부유하고 보수적인 지역이다. 베를린과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울하고 음울한 회색의 이미지이지만 다양성과 자유라는 매력이 공존하는 베를린과는 달리, 이 두 지역은 부유하고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중산층 부르주아 지역이다. 알프레드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 매료되어서 베를린을 가고 싶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첫 독일 여행은 그와는 정 반대인 지역으로 낙점되었다. 바닥 인생 중의 밑바닥 인생인 비버코프가 만신창이가 되어서 구르던 베를린의 알렉산더 광장이 아니라,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인 한스와 헤르만 하일르너가 그렇게 갑갑해하고 벗어나고 싶었던 슈바르츠발트 지역의 중심인 슈투트가르트로.

 

 유럽, 특히 프랑스와 독일 서부 및 남부는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비행기보단 기차 여행을 더 선호한다. 더불어 기차가 비행기보다 더 수속 절차도 간단하고 편하기도 하고. 국경을 대고 있는 이웃국가라 그런지 독일과 프랑스를 오가는 열차는 프랑스 철도청인 SNCF와 독일 철도청인 Deutsch Bahn이 공동으로 운영한다. 안내방송 역시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3개 국어로 진행된다. 독일과 프랑스를 오가는 고속열차 표에는 TGV-ICE라고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TGV는 프랑스 고속열차이고 ICE는 독일 고속열차이다.

 

 창밖의 풍경이 바뀌고 알자스의 거대한 농지가 펼쳐지는 것을 본 순간, 역시 프랑스는 농업 국가이고 그렇기 때문에 발자크의 소설에 나오는 농촌의 풍경이나 맛있는 유제품들의 생산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앞으로의 생활과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생각을 하자 머리가 아파지면서 잠에 골아 떨어졌고, 그러고 나서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카를스루헤를 지나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내리는 것을 보고 나도 아무 생각 없이 가방을 들쳐 매고 슈투트가르트 중앙역(Stuttgart Hauptbahnhof)을 나와 지도를 보면서 헤메다가 숙소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슈투트가르트 외곽 지하철인 S-Bahn을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승강장 플랫폼에서 나오는 언어가 달라지고,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키가 훌쩍 커진 것을 인식한 순간에서야 나는 내가 독일에 왔음을 실감했다.


 숙소가 슈투트가르트 중심지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이동을 해야만 했다. 내가 묵은 곳은 슈투트가르트 외곽의 포르쉐 광장 쪽에 있었는데 숙소에서 포르쉐 박물관까지 딱 5분 거리였고 바로 옆에 포르쉐 본사가 있다. 처음에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해서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할 지 몰라 밤에 혼자 패닉에 빠져 있었는데 다행히 앱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여행 첫날은 밤에 도착한 지라 살짝 피곤하기도 하고, 또 숙소가 외곽인지라 어떻게 동선을 짤까 궁리하다가 그냥 호텔 침대에 누워서 자버렸다. 호텔은 도로 쪽에 위치해 있어서 마치 크리미널 마인드 같은 범죄 드라마에 나오는 배경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그런 으스스한 외관과는 달리 아주 조용하고 깨끗했다. 외곽 지역인데 위험하지 않고, 외곽 열차 노선이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것이 파리와는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생각보다는 역시 피곤이 앞섰다. 슈투트가르트의 시내구조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동선을 짜자니 머리가 아팠고, 결국 나는 가이드북에서 가고 싶은 곳 몇 군데만 추려낸 채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독일인들의 평균 사이즈에 맞춰진 침대는 파리의 내 방 침대보다 훨씬 컸고, 덕분에 편안하게 뒹굴면서 잠을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