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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쾰른/141219-141229] Nach dem 3 Jahren, 3년만에 친구를 만나다

 11월에 슈투트가르트 갔었을 때에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창이었는데 이는 최근에 내가 쾰른을 갔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슈투트가르트와 루드비히스부르크에 있을 때에는 크리스마스 마켓 개장 초기인지라 다소 이른 감이 짙은 들뜸이 가득했지만, 쾰른을 갔을 때에는 크리스마스 마켓 막바지인지라 사람도 훨씬 더 많고 붐볐다. 물론 쾰른이라는 도시 자체가 슈투트가르트보다 훨씬 크고(인구가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그에 따라 크리스마스 마켓의 규모 역시 훨씬 크기 때문에 더 활기차고 인파가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말이다.






 

 크리스마스 마켓, 독일어로는 ‘Weihnachtsmarkt'인데 이를 영어로 직역하면 크리스마스 마켓이 된다. 마켓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각종 물품과 특산물, 수공예품 및 먹을 것들을 파는 전통 시장이지만, 동시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한 해가 가는 것을 정리하고 담소를 나누고 신나게 먹고 마시는 잔치판이기도 하다. 보통 크리스마스 한 달 전에 개장해서 이브 전날 폐장하는데, 내가 갔던 때는 크리스마스 직전의 마지막 주말이자 마지막 개장 기간인지라 정말로 붐비고 떠들썩했다.

 

 

 

 





 쾰른이 워낙 큰 도시이다 보니 도시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고 있었는데, 나의 경우 숙소 근처에 ‘노이어마크트(Neumarkt: 영어로 번역하면 New Market)’와 ‘루돌프플라츠(Rudolfplatz: 루돌프 광장이라는 뜻)’라는 큰 광장이 두 개나 있어서 이 두 군데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모두 구경할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각 크리스마스 마켓마다 각기 다른 컵 디자인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인데, 개인적으로는 노이어마크트의 크리스마스 마켓인 ‘마크트 데어 엥겔(Markt der Engel: 천사의 크리스마스 마켓)’의 컵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포동포동하게 귀여운 아기천사의 모습, 그리고 컵 안쪽에 그려진 고딕 양식의 쾰른 대성당 마크가 상당히 위트 있어서 보기만 해도 미소가 나온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단연 돋보이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역시 쾰른 대성당 근처의 크리스마스 마켓(Weihnachtsmarkt am Kölner Dom) 이다. 쾰른 대성당은 독일어로는 ‘돔(Dom)’이라고 불리는데, 독일어에서 돔은 쾰른이나 아헨, 나움부르크 등지의 중세 성당들처럼 거대한 규모의 카톨릭 대성당을 일컫는 말이다. 쾰른을 일컫는 또 다른 명칭이 ‘라인 강의 대성당 도시(Domstadt am Rhein)’인데 이는 그만큼 거대한 대성당이 쾰른의 상징이자 랜드 마크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쾰른 대성당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쾰른 내의 크리스마스 마켓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대성당은 쾰른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대표하는 건물이면서 동시에 쾰른 그 자체인 상징인 것이다. 그러니 크리스마스 마켓 역시 대성당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핵심이 되는 것일 터 이고.

 

 내가 도착한 시점부터 크리스마스 까지 쾰른은 그다지 날씨가 좋지 않았다. 겨울 독일의 날씨가 음습하고 비바람이 몰아친다는 악명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머리칼과 코트 자락이 빗방울과 엉켜 미친 듯이 펄럭이는 것을 직접 느끼자 실감이 났다. 파리에서 유학을 하셨던 선생님들은 겨울의 파리 날씨는 해가 없고 우울해지기 딱 좋다고 끌탕을 했었는데, 겨울의 독일에 비하면 겨울의 파리는 날씨가 꽤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열흘 가량을 머물기 때문에 충분히 시간이 있었지만 굳이 날씨도 안 좋은 때에 온 것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한스(Hans)와 프레드(Fred), 두 녀석이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 처음 만났고, 그 때 한창 친하게 지내다가 둘은 독일로 돌아간 후 나는 계속 한국에 있었고 그 이후로 못 만나다가 처음 만났으니 대강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얼굴을 못 본 친구들을 만난 것이다.

 

“우와...믿기지 않아! 도대체 몇 년 만이야? 2년? 아니, 3년?”

“3년...이 조금 넘었을 걸? 네가 쾰른에 왔다니 믿기지 않는군.”

“너만 믿기지 않는게 아니라 나도 안 믿긴다.”

“그러게, 근데 넌 어째 하나도 안 늙냐? 아시아인은 다 그런건가? 삭은 아시안도 많더만은.”

 

새파란 눈동자에 예전과 다름없는 짓궂음이 보이자 그냥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처해 있는 상황은 예전과 사뭇 다르고, 서울이 쾰른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친구를 본다는 것은 꽤 즐겁고 유쾌한 일이다. 그것도 낯선 타지 땅에서 옛 친구를 본다는 것은 참 반가우면서도 신기한 일이다. 만났을 때부터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있으므로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러기에 평생 못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 역시 한편으로는 하고 있어서인지 더더욱 만날 기대를 하지 못한다. 아무리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지구촌이라 일컬어지는 세상일지라도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을 직접 만나러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둘이 돌아간 대신 내가 파리에 왔고, 그리고 다시 나는 휴가를 위해 잠시 파리를 벗어나 쾰른으로 왔다. 예상도 기대도 하지 않은 재회이기에 더 반가운 것이다. 설령 파리가 서울보다 훨씬 더 쾰른에서 가깝다고 해도, 어쨌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즐거운 일이다.

 

 그렇게 신나게 긴장을 풀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마시다가 정말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쾰른의 특산 맥주인 쾰쉬(Kölsch)는 충분히 맛있었고 또 먹고 싶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생각이 나니까. 하지만 와인과 맥주를 한꺼번에 목구멍에 털어 넣는 것은 무모한 짓 이었다. 그렇게 나의 여행은 반가움과 추한 꼬라지를 보이는 젊은 패기라고 쓰고 미친 짓이라고 읽는 사건 사고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