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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쾰른/141219-141229] Mein erste Weinachten in Europa, 유럽에서 맞는 첫 크리스마스 휴가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별 것 없었다. 그냥 ‘연휴니까’ 부랴부랴 티켓을 예매하고 떠난 것이다.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그냥 공휴일에 지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유럽은 지금은 종교의 힘이 많이 약해졌다고는 해도 가장 기본적인 전통 명절이 크리스마스이니 가장 큰 연휴가 이 시기일 수밖에 없다.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파리는 유럽에선 상당히 큰 도시이고, 많은 상점이 있고, 휴일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도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연휴에 파리에 있기가 싫었다. 연휴 때에는 일상을 완전히 벗어나 유리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잠깐 한 사이 내 손에는 쾰른으로 가는 왕복 열차표가 들어와 있었다.

 

 2014년 12월은 내게 참 여러모로 의미 있는 한 달이다. 생에 처음으로 해외에 나와서 혼자 생활을 하면서 보내는 첫 생일과 첫 휴가가 동시에 있던 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냥 즐거울 수도 없었던 것이, 12월이라는 달의 성격 상 바쁘고 정신없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한 순간도 정신을 차릴 틈이 없었다. 그저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일들을 일일이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24시간이 모자라는 그런 나날의 연속이었다.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생일날 신나게 놀고 크리스마스 연휴에 공부 및 준비를 한 후 새 학기에 발표를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생일날 발표 준비를 하고 생일 다음 날 발표를 끝내고 연휴에 놀러가는 것 이었다. 생일이 12월 중순인지라 한창 바쁘고 힘들던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연휴까지 책을 붙들고 있기가 너무 싫었던 지라 주저 없이 전자를 택했고 덕분에 나는 연휴 이전에 모든 것을 끝내고 떠날 수 있었다.

 

 아침 8시에 파리 북역(Gare du Nord)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무거운 눈꺼풀과 캐리어를 짊어지고 발길을 옮겼다. 살짝 늦잠을 자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어둠이 내려앉은 겨울 아침의 하늘을 보면서 조용히 꼼지락거렸다.

 

"너도 파리에 살아?"

 

 옆 자리에 앉은 예쁜 프랑스 언니의 물음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근깨마저 매력적인 금발의 아리따운 아가씨였는데 나이는 대강 나보다 한살이나 두 살 정도 위인 것 같았다. 긴장하느라 피곤이 쌓인 나와 마찬가지로, 이 아가씨 역시 새벽까지 일을 하다 기차를 탄 지라 피로도가 최고조에 달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편안히 잠을 잘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우리 옆 좌석에 앉은 독일인 남녀가 시끄럽게 떠들어댄지라 도무지 귀를 닫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충 '프랑스인들은 이렇고 저렇고, 파리에서 운전하는 건 미친 짓이야 어쩌고저쩌고...파리는 이래서 저래서...기타 등등' 같은 종류의 잡담이었던 것 같은데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웠던 것만은 기억한다.

 

"너도 휴가 가는 거야?"

"응....아무래도 연휴에 혼자 파리에 있기 싫어...."

 

 내 말에 그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연휴의 파리는 관광객이 많긴 하지만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모두 집에 있고, 도시는 텅 비어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중심가 몇 군데만 문이 열릴 뿐 그 외의 다른 곳들은 다 닫히기 때문에 딱히 할 수 있는 일들이 없다. 그래서 유학생들에게는 이 시기가 가장 외롭고 힘들고, 더불어 긴장까지 풀려서 많이들 병난다고들 선생님들이 많이 말씀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타지라고 해도 아파서 늘어져 있기도 싫어서 여행을 택했다. 공부는 하기 싫었지만 뭐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진짜 늘어지고 우울한 날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기차 안에서 긴장이 이완되어서 나도 모르게 이 모든 것을 처음 보는 프랑스 아가씨에게 말해버렸고,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혼자서 쓸쓸하게 파리에 남아 있다가 우울하고 아프느니 차라리 어디에라도 가는 것이 낫다고. 잠깐 그렇게 떠들다보니 시끄러운 옆 자리의 독일인 남녀가 아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점으로 열차가 조용해지자 나와 그녀 모두 동시에 코트를 이불 삼아 잠에 빠져버렸다.

 

 원래는 프랑크푸르트나 슈투트가르트, 혹은 뮌헨 같은 남부 독일을 여행하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슈투트가르트를 11월에 갔다 오고 크리스마스에 쾰른에 가게 되었다. 베를린이나 브레멘, 함부르크 같은 지역은 너무 멀고, 뮌헨 역시 아주 가깝지는 않은데 쾰른은 파리에서 3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슈투트가르트나 프랑크푸르트보다도 가깝다. 더불어 출발역과 노선 역시 다르다. 슈투트가르트, 프랑크푸르트, 뮌헨 등지로 가려면 파리 동역에서 출발해서 스트라스부르와 카를스루헤를 거쳐 간다. 하지만 쾰른은 북역에서 출발해서 벨기에와 아헨을 거쳐야 갈 수 있다.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역시 사뭇 다르다. 내가 살고 있는 파리라는 도시가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세계 도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 있기만 하면 나의 세계는 우물 안 개구리의 그것만큼이나 좁다는 것을, 기차를 타면 새삼 느끼게 된다. 처음으로 모국을 벗어나 파리에 왔을 때 같은 감정을 느꼈고, 다시 매번 기차를 탈 때 마다 느끼고 있다.

 

 

 

 

 

 

 한참을 잠에 빠져 있다가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안내방송이 귓가를 비집고 들어오자 눈을 떴다. 파리는 그래도 날씨가 나쁘지 않았는데, 눈꺼풀을 열자마자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가득 습기를 머금은 회색이었다. 슈투트가르트 갔을 때도 독일 국경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고 하늘이 어두컴컴해졌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옆자리에 앉았던 예쁜 언니와 작별 인사를 한 후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유난히 무거워서 낮게 내려앉은 것 같은 회색의 하늘에는 우중충한 구름이 껴 있었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잿빛의 공기가 묵직하게 도시 전반을 가득 매우고 있는 것 같았다. 슈투트가르트에 내렸을 때와는 비교도 안 돼는 크기의 거대한 통로를 지나 역으로 나오는 순간, 단번에 거대한 대성당의 모습에 압도당해버렸다. 한 겨울에 내리는 빗속에 보이는 음산한 도시의 정취에 한껏 더 그로테스크함을 더해주는 웅장한 성당의 모습, 인구밀집지역인 라인란트의 최대도시답게 사람들이 활기차게 거리를 오가는 모습, 연휴를 맞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부산하게 역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시선을 들자 바로 보이는 단어가 'Sortie(출구)'아 아니라 'Ausgang(출구)'이라는 것을 깨닫자 내가 독일에 있음을 실감했다. 노트르담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지닌 고딕양식의 성당과 음울한 풍경이 시각을 자극하고, 귀에는 묵직하고 둔탁한 억양과 발음을 지닌 언어들이 내려앉았다. 독일이다.

 

 

 

 

 쾰른은 나의 첫 독일 여행이 아니다. 11월에 프로모션 할인가로 기차표를 끊어 슈투트가르트를 갔다 왔으니까, 두 번째 여행인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여행처럼 느껴진 것은 슈투트가르트와 쾰른이 그만큼 달랐기 때문이다. 말이 같은 독일이지 전혀 다른 나라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 만큼, 둘은 너무나 다르다. 첨단 산업과 자동차의 도시이지만 작고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슈투트가르트와는 달리, 쾰른은 독일의 4번째 도시답게 더 크고 복잡하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라인 강의 습기를 가득 머금은 대서양의 추위가 내려앉아 음습했지만, 그와 대비되는 생동감 있는 거리와 사람의 모습이 대비 되면서 묘한 느낌을 주었다. 독일의 겨울 날씨에 대해서는 워낙 악명이 높아서 큰 기대를 안했고, 역에 내리자마자 당면한 공기의 온도 역시 상상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런 나쁜 날씨에 비해서 도시는 너무나도 활기차고 생생했다. 대성당은 생각보다도 훨씬 거대하고 압도적이었고, 한편으로는 그 뾰죡한 첨탑이 회색의 하늘을 금방이라도 젖히고 하늘로 올라가는 문을 열어 제낄 것만 같았다. 그래서일까. 한손에는 우산을 든 채, 한 손으로는 캐리어를 잡은 채 역 앞에서 한 몇 분 정도는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