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耽世 : 느끼다

[슈투트가르트/141127-141130] Wiedersehen, Herr Stuttgart!

 

 

 

 

 

 

 

숙소가 포르쉐 뮤지엄 근처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가장 나중에 간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나의 열차시각과 체크아웃 시간 사이의 간격 때문이다. 호텔 체크아웃은 11시까지 인데 열차 출발 시각은 4시 45분. 이 애매하게 뜨는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골머리를 앓다가, 호텔을 떠날 때 이곳과 미술관(Staadtgalerie)을 들렀다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일단 박물관에서는 돈을 주고라도 외투와 짐을 맡길 수 있으니 무거운 짐들을 들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파리에서는 비싸서 살 수 없었던 사소한 생활용품들 문구용품들, 그리고 기념품들을 하나씩 사다보니 슈투트가르트에 갓 도착했을 때는 가벼웠던 짐이 어느 새 꽤 무거워져 있었다. 그러다보니 결국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독일에 처음 와서 모든 것이 낯설어서 헤매던 순간이 바로 방금 전 같은데, 이제 조금 익숙해졌다 싶으니 어느 새 떠나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은 본래 일상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여행이 즐거웠던 만큼 앞으로의 파리에서의 생활 역시 즐겁고, 파리에서 겪을 일들이 힘든 만큼 앞으로의 여행도 즐거울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으니까. 여하튼 그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체크아웃을 했다. 그리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 호텔 밖으로 나오자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독일의 고속도로 사이를 뚫고 들어와 내 코트를 건드리는 차가운 바람이 가장 먼저 나를 맞아 주었다. 기가 막히게도, 국경을 사이에 두고 날씨가 달라진다는 말이 딱 맞았다. 슈투트가르트가 파리보다 훨씬 남쪽인데도 슈투트가르트가 더 차갑고 춥다. 목도리를 여민 채 짐 덩어리들을 양쪽 손에 하나씩 짊어진 채 포르쉐 뮤지엄으로 향했다.

 

 

 

 

 

 

 

 

 

 

 

나는 자동차에 대해선 정말 문외한이다. 운전면허도 없고, 심지어 속도 자체를 무서워해서 자전거도 못타는 속도 공포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쉐 뮤지엄은 꽤 재밌었다. 파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대식 건물이 황량한 고속도로의 풍경과 잿빛의 하늘과 동시에 맞아 떨어지면서 기묘한 조화를 자아내고 있었다. 세계대전 때 폭격을 당하지 않은 파리와 달리 전부 연합군에게 폭격 당하고 새로 지어진 지라 아무래도 독일의 건물들이 훨씬 연령대가 어리고 그만큼 현대적이다. 더군다나 슈투트가르트라는 도시 자체가 자동차라는 현대식 산업으로 대표되는 도시인만큼 더더욱 그런 면도 있고. 포르쉐 뮤지엄이 딱 그에 걸 맞는 건물이다. 우주선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미래적인 건물의 외형과,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근사한 차들 모두 이 도시의 현대적인 면을 적절하게 보여준다. 자동차에 대해서라면 포르쉐와 벤츠가 비싼 브랜드이다 정도 밖에 알지 못하는 나조차도 깊은 인상을 받을 정도로, 안에 전시된 자동차들과 자동차 제조 과정은 정말 놀랍고 근사했다. 그냥 ‘교통수단’ 정도로만 인식되던 기계 덩어리를 잘 빠진 선과 우아한 색조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물체로 만드는 과정도, 사치품으로만 여겨지는 포르쉐라는 자동차를 더 안전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공정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대상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상들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전시라고 하는 행위가 얼마나 다방면으로 활용될 수 있는 표현의 수단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제품의 홍보를 넘어 자동차라고 하는 문명의 키워드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내는 점이 신선했다. 특히 자동차에 대한 이해가 없이도 재미있게 전시를 보고 나아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포르쉐 뮤지엄을 관람한 후에도 시간이 남자 벼르고 벼르던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출발하기 전에 가이드북을 보고 이곳에서 네덜란드 회화를 꼭 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었지만 크리스마스 마켓에 정신이 팔려서 정작 이곳은 근처도 가보질 못했다. 고로 이 기회에 짧게라도 구경을 해야겠단 마음에 미술관행을 강행했다. 게다가 학생증이 있어 할인이 되었기에 표도 아예 특별전시와 상설전시를 동시에 묶어서 관람하는 패키지를 사버렸다.

 

 

 

 

 

 

 

 

 

전시는 만족스러웠지만 사실 아쉬움이 좀 남는다. 시간적 여유가 좀 더 있었더라면 천천히 감상을 했을 작품들인데, 사실 시간이 조금 부족했기 때문에 서둘러서 관람을 한 면이 없잖아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 방문한다면 좀 더 넉넉하게 일정을 짜서 이곳과 헤겔 생가를 한 번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외의 수확은 있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중세 슈바벤 지역(Schwaben : 독일의 남서부 지역, 지금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일부)의 회화 전시실이 생각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네덜란드 회화실로 가기 위해 서둘러 가로 질러 가다가 문득 멈추게 되었는데, 압도적인 거대한 도상 앞에서 몇 분 동안 발을 떼지 못하고 그대로 지켜보게 되었다. 중세사를 전공하지만 전혀 종교도 신도 믿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상에 사로잡히게 된 이유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과 죄로 인해 괴로워하는 여성의 얼굴이 배경의 푸른 숲과 유난히 대비되어 자아내는 기묘한 풍경이 충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중세는 성직자, 기사, 농노의 3위계를 바탕으로 하여 종교라는 체계를 이용해 악마로 상징되는 보이지 않는 공포를 매개로 욕망을 통제하는 시대였다. 전 유럽이 기독교라는 단일한 매개로 묶여있는 시대였지만, 동시에 각 지역마다 또렷하게 대비되는 강한 지역적 특색이 두드러지던 시대이기도 하다. 슈투트가르트에서 본 중세의 그림에 시선을 빼앗긴 것은, 그것이 내가 공부하는 시대이자 화려하지만 각종 현실적 위기에 가득 찼던 비잔티움의 위풍당당한 중세 도상과도, 그로테스크 하지만 적당한 웅장함과 질서를 위한 노력의 흔적이 보이던 파리의 중세 건축물과도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평온한 것도 같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아름답고 신비롭지만 으스스하기도 한 슈바르츠발트의 숲이 대비되면서 그림 동화의 삽화가 연상되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이곳을 방문해서 자세히 보고 싶다. 시간에 쫓겨서 미술관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필연 이곳을 다시 오라는 운명의 손짓일 수도 있겠지.

 

 그렇게 서둘러서 미술관을 나온 나는 기차를 타기 위해 양손에 짐을 한 가득 든 채로 헐레벌떡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을 향해 달려갔다. 독일이 프랑스보다 물가가 훨씬 저렴해서 컵과 각종 문구류들을 이것저것 사다보니 도착했을 땐 가벼웠던 짐이 어느 새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있었다. 슈투트가르트가 그나마 큰 도시가 아니라 금방 찾아가서 다행이지 잘못 정신을 놓고 있다간 일요일 오밤중에 파리로 못 돌아간 미아가 될 뻔했다. 그리고 겨우 좌석에 앉아 제대로 열차를 찾아간 것에 안심하며 안도의 한숨을 쉰 순간, 내 옆 자리에 아이를 동반한 4인 가족이 앉았고 곧 열차가 출발했다. 아마 그 때까지도 여행이 끝난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감상에 젖어 있다가 파리 동역에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일상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그렇게, 현대같기도 하다가 중세같기도 한데 이상하게 근대는 보기 힘들던 기묘한 도시에서의 3박 4일이 끝났다. 나는 여행을 끝내자마자 바로 전공 세미나에 들어감으로써 일상으로 되돌아왔고 지금도 그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 꿈같던 첫여행은 내 뇌리의 한 구석에 지워지지 않는 도장마냥 남아 언제든지 나로 하여금 떠날 수 있도록 부추기는 일종의 촉매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