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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슈투트가르트/141127-141130] Stuttgarter Weinachtsmarkt, 중세의 환상을 보다

 

 

 나는 커다란 것보다는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는 차이들에 많이 신경을 쓰는 편인데, 이번 여행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즐겁긴 하지만 여러 가지 할 일들이 산재해 있고 복잡하고 머리 아플 때도 많다. 그래서 훌쩍 떠나온 것인데, 떠날 때나 갓 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정신이 없었던 지라 ‘여기가 독일이구나’ 정도의 생각밖에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한 걸음씩 떼면서 사소한 차이를 느낄 때마다 ‘아, 여기는 파리가 아냐! 여긴 독일이야!’를 실감하게 되었는데...예를 들어 보자면 주로 아래의 상황들이라고 요약을 할 수 있겠다.

 

1. 승강장 안내 방송이 프랑스어가 아닌 독일어로 나오는 순간

2. 손으로 직접 문을 열어야 하는 파리 메트로의 수동문과는 달리 정차할 역에서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열리는 열차의 문

3. 갑자기 훌쩍 커진 사람들의 신장

4. 의자와 변기가 높아지고, 열차 표를 사려고 동전투입구를 찾는데 동전투입구가 너무 높은데 있다. 당연하다. 이 동네 사람들 평균 신장에 맞춰서 설계되었으니까.

5. 현금인출기를 찾는데 내 은행인 Caisse d'Epargne은 커녕 프랑스에선 그렇게나 흔한 BNP나 Société gérérale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보이는 것은 Baden-Württembergische Bank 뿐.

 

 게다가 티켓을 사는 방식이나 열차가 드나드는 방식 역시 파리와는 많이 다르다. 파리에서는 티켓을 사지 않으면 열차를 타지 못하는데, 여기서는 열차 승강장으로 들어가 자동발매기에서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무임승차하기 정말 좋은 구조이고, 나도 딱 한번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다니다가 덥썩 열차를 타버려서 본의 아닌 무임승차를 했었다. 더불어 위에 제시한 예시 중 마지막의 경우는 정말 약 1분 동안 나를 패닉에 빠뜨렸다. 파리에서 출발할 때 부랴부랴 출발한 지라 독일에 도착했을 때는 현금이 하나도 없어서 돈을 찾아야 했는데, 파리에서 쓰던 은행이나 자주 보이던 은행들이 없었을 때에는 정말 순간적인 패닉에 빠졌었다. 그리고 슈투트가르트 시내에 가장 많이 보이던 Baden-Württembergische Bank(바덴-뷔르템베르크 주립은행)를 보고 나서야 내가 있는 곳이 파리가 아니라, 독일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지역임을 깨달았다. 그렇다. 멍하니 정신 놓고 왔다가 은행이 달라진 것을 보고 정신을 차린 것이다.

 

 

 

 

 

 

 

 

 

 슈투트가르트의 시내는 독일 전역과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도착하는 열차들이 모이는 슈투트가르트 중앙역과 붙어있는 지하철(U-Bahn) 역 아르눌프-클레트 광장(Hauptbahnhof Arnulf-Klett-Platz)에서 시작된다. 역에서 바로 나오면 여행안내소가 보이고 지도를 얻을 수 있다. 지도를 보면 여행안내소 에서부터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쾨니히 거리(Königstraße)가 바로 슈투트가르트 시내의 중심이다. 이 거리를 중심으로 슈투트가르트 시내의 심장부가 형성되어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주도라고는 해도 슈투트가르트는 서울이나 파리에 비하면 아주 작은 도시이다. 여기서부터 독일이란 나라가 가진 독특한 특징을 엿볼 수 있다. 파리라는 도시의 여왕을 정점으로 철저한 중앙집권으로 돌아가는 프랑스와는 달리, 중소 도시들과 농촌이 비슷한 크기로 연결되어서 각 지방 자치로 돌아가는 것이 독일이라는 나라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이다. 각 주(Bundesland)는 외교권과 국방권을 중앙정부에 위임한 것 외에는 모든 시스템이 한 나라 돌아가듯이 돌아간다. 비스마르크의 통일 이전에는 적게는 50-60개에서 많게는 300개가 넘는 영방국으로 분열되어있던 나라라 그런지 이런 면에서는 전근대적이고 중세적인 지방자치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연원은 그 유명한 호엔촐레른 왕가 치하에 있던, 독일 남부에서는 바이에른 다음으로 크던 뷔르템베르크 공국이다. 당시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지역은 서부 일부를 차지하던 바덴 공국과 현재의 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뷔르템베르크 공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슈투트가르트는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수도였고, 쾨니히 거리를 걷다보면 나오는 뷔르템베르크 공의 관저가 이를 증명해준다. 내가 숙소에서 무작정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으로 나와 쭈욱 걸었을 때 만난 거대한 광장과 궁전이 바로 뷔르템베르크 공의 관저였다. 사실 건물 자체는 그렇게 멋있고 웅장해보이진 않았다. 내가 파리에 살아서 그런지, 파리의 건물들에 비하면 화려하고 우아한 맛은 떨어진다. 직선의 단조로움과 실용성, 더불어 약간의 웅장함이 곁들여진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미워보이지는 않는 이유는 건물 주변을 감싸고 있는 구조와 공기가 건물과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당해 쑥대밭이 되고 다시 재건한 도시이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건물과 거리는 그때가 언제냐는 듯 당당하게 서 있다. 그래서일까. 뷔르템부르크 궁 앞에 서있는 사자상을 보면서 ‘아, 저기가 대충 왕궁 이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걷고 걷고 걸었다. 궁전 앞의 공원과 광장(슐로스플라츠; Schloßplatz)를 한 바퀴 돌고 사진을 찍은 후 계속 발걸음을 옮기자 아주 단조로운 사각형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건물 겉면에서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립 박물관이라는 문구가 거대하고 써져 있었고,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철이 들 무렵부터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상당히 좋아했고, 어디를 가면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이 서점과 박물관, 도서관이다. 그런 내가 박물관이 보이자마자 들어간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 운이 좋게도 박물관 내에는 꽤 흥미로운 전시를 하고 있었다. ‘Ein Traum von Rom(로마의 꿈)’이라는 제목의 전시였는데, 트리어(Trier)와 마인츠(Mainz)를 비롯한 독일 남부 로마 도시들에서 나온 유적들을 테마로 하는 전시였다. 그 때 당시의 독일 영토는 대부분이 로마 국경 밖의 이민족들이 몰려 사는 게르마니아(Germania)였고, 트리어나 마인츠 같은 도시는 국경의 요새였었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건 통일된 유럽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로마에 대해 향수가 있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박물관 전시를 보고 난 다음 건물 안쪽을 둘러보고 있을 무렵, 내가 들어왔던 입구 말고 건물의 옆구리에 또 다른 문이 있는 것을 보고 무심코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박물관을 들어오기 전에 지나온 쾨니히 거리와 궁전이 아닌, 또 다른 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바로 그 유명한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Weinachtsmarkt)이 개장한 것이다.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보통 크리스마스 약 한달 전부터 개장해서 크리스마스 직전에 폐장하는데, 각 지역마다 고유한 특색을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일종의 축제의 장이다.

 

 처음 독일을 방문한 시기가 하늘이 푸른 여름이 아닌 음울한 회색의 겨울이어서 운이 나빴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오히려 나는 이 시기에 독일을 방문한 것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갓 개장한 지라 아직은 활기 넘치고 생동감이 가득했다. 겨울의 문턱에 다가선 슈투트가르트는 파리보다 훨씬 남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뼈 속까지 스며드는 추위가 날카로웠는데, 크리스마스 마켓에 들어가 손에 따뜻한 와인(Glühwein)을 들고 사람들 사이에 껴서 돌아다니자 어느 새 그 열기에 추위도 한풀 꺾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정교하게 조각된 공예품들과 각종 미니어처, 양초 등의 기념품들과 예쁜 컵들, 그리고 간단하지만 맛있는 먹을거리들은 오감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파리나 런던, 혹은 서울만큼 큰 도시는 아니지만 슈투트가르트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상당히 유서 깊고 독특하다. 물론 바이에른의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마켓이 제일 유명하긴 하지만,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는 슈투트가르트가 호엔촐레른 왕가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수도였던 만큼 이곳의 크리스마스 마켓 역시 꽤 규모 있고 역사가 깊다. 2차 대전 이후 새로 단장되어 신식 건물이 가득한 자동차의 도시지만 동시에 중세 공국의 수도였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비교적 새로 지어진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거리 곳곳에서 중세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것에 상당히 놀랬다. 게다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모여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대화도 살짝 엿들으면서 분위기를 느끼다보면 금세 그들이 이곳 토박이 이면서 동시에 어릴 때 친구가 늙어서까지 평생을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흘러 들어온 여러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고 오가는 파리와는 전혀 다른 도시인 것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묘한 매력이 있다. 대충 둘러보고 자리를 뜰까 했지만, 어쩐지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들린 컵이 바뀐 채 나는 6번째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고, 어느 새 해는 떨어지고 어두운 공기 속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의 각종 장식들이 환하게 빛나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그 때 그 불빛 아래 모여서 사람들이 하하호호 왁자지껄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모습이, 꼭 카니발 축제에서 신나게 놀아 제끼는 중세의 사람들과 겹쳐보였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현대적인 도시인 슈투트가르트의 시내 중심부인 마크트할레(Markthalle)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모인 사람들을 보자 내가 중세로 시간 여행을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정적인 대신에 보수적이고 관광객이 그렇게 많은 도시는 아닌지라 아시아 여자는 그 한 가운데 홀로 와인 잔을 들고 있던 나 하나였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이봐요, 아가씨. 혹시 혼자 오셨어요?”

 

 남부 지방 특유의 악센트가 들어가 있지만 비교적 깨끗한 발음이 인상적인 중년의 여인이 말을 걸었다. 웃으면서 그렇다고 하자 여인의 옆에 있던 멀쑥한 신사와 예쁘장한 금발의 소녀 두 명이 내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 가족은 카를스루헤와 슈투트가르트 근방의 바덴바덴(Baden-Baden)에 살고 있지만 주말을 맞아 슈투트가르트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놀러왔다고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금빛의 머리칼과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귀여운 소녀들의 어머니는 슈투트가르트 외곽 출신이고, 둔탁한 악센트가 인상적인 아버지는 사투리가 심한 바이에른의 뮌헨 출신이라고 했다. 와인 잔을 부딪치면서 건배를 외치고 나 역시 이곳의 사람들처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본래는 한국 출신이지만 지금은 파리에 살고 있고 잠시 여행을 온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깜찍한 소녀들의 눈이 동그랗게 빛났다.

 

“우와, 언니 파리에 살아요? 멋지다!”

 

 유럽의 어느 소녀들에게나 파리는 동경의 대상인가보다. 정작 살기에는 주거문제라던가 행정처리 등이 굉장히 복잡해서 실제 파리에서의 삶은 녹록치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이나 큰 차이가 없는 독일의 한적한 중소도시에 사는 소녀들에게 파리는 화려함의 이상 그 자체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파리에서는 그렇게 많이 보이던 것들이, 학생들 이라던가 혼자 다니는 젊은 사람이라던가, 혹은 아시아인이라던가 하는 요소들이 슈투트가르트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단위로 놀러 나온 사람들이나 노부부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여러 자동차 회사들의 본사가 있어서 그곳에 근무하는 젊은 사람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이곳은 젊은이들의 도시라기보다는 가족들이 살기 좋은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여자들보다는 남자들, 특히 보수적이지만 책임감 있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강인한 아버지로 상징되는 남성성이 강한 도시이다. 더불어 규모가 작기는 해도 여러 고가 매장이 들어서 있는 것으로 보아 그만큼 경제력이 있는 도시인 것도 같았고. 학교에서 사귄 헤센 출신의 독일 친구가 바이에른과 바덴-뷔르템베르크를 가리켜 ‘돈 많고 재수 없는 부르주아’라고 묘사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파리에 와서 사귄 독일인 친구들은 우연히도 전부 프랑크푸르트와 헤센 주 출신의 여학생들이다)


 

 

 

 

 

 

 여행 자체는 상당히 즐거웠지만 그래도 나같이 혼자 사는 외국인 여성이 살기에는 파리가 훨씬 더 다채롭고 역동적인 도시이다. 허나 어두운 밤 속에 반짝이던 크리스마스 마켓의 전경은 정말로 잊혀 지지 않는다. 더불어 아르눌프-클레트 광장을 나와 걸어가다가 마주친 뷔르템베르크 공관과 광장의 단조로운 전경 역시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파리와는 다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짙게 각인을 새기며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굉장히 현대적이고 첨단 산업으로 대표되는 도시이지만, 마치 그런 현대적인 모습이 사막위의 그림자인 것 처럼 흔들리면서 갑자기 중세 시대 장원의 풍경이 드리워지는 도시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지 않는 때에 와도 과연 나는 그런 인상을 받을까? 나중에 다시 오게 되면 확인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나의 첫 독일 여행은 내 뇌리에 기묘한 무늬의 책갈피를 꽂아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