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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쾰른/141219-141229] Weihnachtsmarkt in Deutschland!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관한 단상

 독일은 유럽의 국가들 중에서 중세 봉건 체제의 잔재가 가장 많이 잔존하는 국가이다. 물론 독일은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테크놀로지의 국가이기도 하다. 현대 물리학의 수많은 거장들이 독일에서 탄생했고, 의학과 생리학, 기계공학 등의 첨단 분야 연구 실적은 세계 최정상급인데다 지멘스, 보쉬, 다임러 등의 회사들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살에는 현존하는 유럽 국가들 중 가장 중세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독일의 지방자치제이다. 유럽 최초의 종교전쟁이자 가장 끔찍한 이념전쟁으로도 묘사되는 30년 전쟁 이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인해 신성로마제국이 붕괴되고, 독일 각 지역은 그 지역 하나가 영방 국가의 단위로 쪼개지면서 철저한 중앙집권으로 가는 이웃 프랑스와는 정 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독일이 연방공화국이 된 것도 이와 같은 역사적 유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주 편성은 지역격차를 해소하고, 프로이센 같은 거대 정치세력이 성장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과거 전근대 시대의 영방국가 단위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크리스마스 마켓 역시 지역마다 다르고, 또 각종 종교 행사에서 보이는 각기 다른 모습에서 각 지역의 특색이 드러난다. 흔히들 생각하는 동화 같은 작은 마을의 모습은 주로 바이에른이나 바덴-뷔르템베르크, 그리고 헤센의 일부 지역에 해당하고, 다른 지역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많게는 350개가 넘는 영방으로 쪼개져서 국가 단위로 역할을 했으니 각 지역 하나하나가 지금도 그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독일의 크리스마스 라고 하면 으레 예전에 읽었던 토마스 만의 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 나오는 장면을 떠올렸지만 그곳은 북독일의 뤼베크라는 상업 도시이기 때문에 내가 갔던 지역들과는 다른 나라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문화적 차이를 지니고 있다.


이러니 내가 독일을 두 번 째 방문했을 때, 마치 독일에 처음 온 사람인 마냥 충격을 받은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처음 갔던 슈투트가르트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수도로써 자동차 등의 첨단산업과 전근대 뷔르템베르크 공국 시절의 전원적인 모습이 공존하는 곳이었고, 반면 쾰른은 그보다 훨씬 크고 현대적인 대도시의 모습 한 가운데에 거대한 성당이 웅장하게 상징 마크로 자리 잡고 있는 기괴한 형상을 띠고 있었다.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에 내렸을 때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마크가 달처럼 떠있었지만, 쾰른 중앙역에 내리자 보이는 것은 주변을 마치 블랙홀마냥 압도하는 웅장한 대성당의 실루엣이었다. 이렇게 첫인상이 다르니 두 지역을 같은 나라라고 느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실제로 첫인상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지역적 특색은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파는 물건들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물론 요즘은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파는 물건이나 장식이 많이 일원화된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마켓은 지역마다 다른 특색을 확인하기 가장 좋은 장소이다. 일단 앞선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쾰른이 슈투트가르트보다 규모가 더 큰 도시라서 그런지 크리스마스 마켓의 숫자 자체가 훨씬 더 많다. 역 주변으로 이어진 궁전과 교회 부근의 광장만을 중심으로 열린 슈투트가르트의 크리스마스 마켓과는 달리 쾰른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대성당, 노이어마크트 광장, 호이어마크트 광장, 루돌프 광장, 라인 강 하구의 항구 등등 도시의 곳곳에서 열린다. 내가 머문 숙소가 노이어마크트 광장 근처에 있어서 항상 지나다닐 때마다 노이어마크트의 크리스마스 마켓인 ‘천사의 크리스마스 마켓(Markt der Engel)’을 가로질러 갔었다. 물론 이 기간 동안은 도시의 어디를 가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파는 기본 메뉴는 슈투트가르트나 쾰른이나 큰 차이는 없다. 감자튀김과 소시지를 넣은 빵, 과일에 초콜릿을 입힌 군것질 거리 등이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들이다. 하지만 쾰른에선 슈투트가르트에선 없는 연어가 있었고, 또 쾰른 대성당 모양의 와플도 있었다. 내륙인 슈투트가르트와는 달리 강을 통해 바다와 직접 연결되는 지라 그만큼 해산물의 공급도 더 수월할 것이다. 그리고 쾰른 대성당이 워낙 유명한 건물이자 도시의 상징이기 때문에 당연히 대성당 모양의 군것질거리나 기념품이 인기 있을 수밖에 없고. 기념품에서는 더더욱 차이가 두드러진다. 역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쾰른 대성당의 모습이 돋보이는 모형들이나 파노라마, 향초, 엽서들이다. 특정한 도시의 랜드 마크 보다는 메르세데스 벤츠, 포르쉐 등의 자동차로 상징되는 슈투트가르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쾰른에는 대성당이 있고, 슈투트가르트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가 있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하지만 가장 크게 돋보이는 차이점은 크리스마스 마켓을 돌아다니는 구성원들의 모습이다.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주로 가족단위로 구경나온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는데, 쾰른에서는 가족 단위 뿐만 아니라 친구들이나 연인들끼리 외출 나온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일단 기본적으로 젊은 사람들의 비율 자체가 쾰른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아무래도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인데다가 슈투트가르트보다는 개방적이고 구성원들이 다양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파리의 학교에서 만난 독일인 친구들이 독일의 부르주아들을 보고 싶다면 바이에른이나 바덴-뷔르템베르크로, 독일에서 가장 개성이 강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싶으면 쾰른으로, 독일의 프롤레타리아들을 보고 싶으면 라인란트로 가라는 말을 했었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알 것 같다. 한 시간만 벤치에 앉아서 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느껴지는 도시 특유의 분위기와 공기의 색깔이 보인다. 슈투트가르트는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유능한 가장들이 가족과 함께 살기 좋은 도시였고, 쾰른은 세련된 사람들과 젊은이들, 각자 자신의 모습을 지니고 개개인의 목소리를 내는 노동자들이 한데 어우러진 도시였다.


내가 독일을 갔을 때는 전부 겨울이었다. 유럽 여행은 여름이 정석이라고는 하지만 겨울의 독일도 썩 나쁘진 않았다. 물론 날씨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도시가 주는 개성과 활기, 그리고 크리스마스 마켓의 풍경이 상당히 강렬한 인상으로 뇌리에 자리 잡았다. 다음에는 여름에 꼭 다시 같은 장소들을 가보고 싶다. 어떤 느낌이 들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