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耽世 : 느끼다

[쾰른/141219-141229] Römisch-Germanisches Museum, 로마-게르만 박물관






  여느 유럽의 대도시처럼 쾰른에도 박물관이 상당히 많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박물관은 단연 쾰른 대성당 바로 옆에 붙어있는 로마-게르만 박물관과 루드비히 박물관인데, 쾰른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이 두 박물관이 곧 쾰른을 대표하는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시대부터 중세 직전까지의 쾰른을 보려면 로마-게르만 박물관에 가면 되고, 중세의 쾰른을 보려면 다시 쾰른 대성당으로, 그리고 근대부터 지금까지의 쾰른을 보려면 루드비히 박물관을 관람한 후 출구로 나와 라인 강을 따라 걸으면 된다. 쾰른 대성당뿐만 아니라 그 주변이 모두 쾰른의 연대기를 품고 있는 장소이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로마-게르만 박물관은 로마 시대의 유물이 주를 이루는 박물관임과 동시에 ‘게르만’이라는 쾰른의 역사적 연원을 전시하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 ‘게르마니아’라고 불리던 라인 강 유역은 로마인들에게 있어서는 미지의 세계였고, 로마인들과 달리 푸른 눈에 건장한 체격을 지닌 ‘게르만’인들의 모습은 호기심과 공포를 한꺼번에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대립했지만 싸우기만 한 것이 결코 아니고, 접촉 과정에서 게르만 인들은 로마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며 서서히 로마화하기 시작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게르만 인들은 야만인이라는 설은 어디까지나 서구 제국주의 시대 당시 야만과 문명이라는 이중적 제국주의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날조된 것이 불과하다. 이미 이때부터 게르만은 빠르게 로마화의 과정을 걷고, 서로마를 멸망시킨 게르만 장군 오도아케르나 그 라이벌인 테오도리크는 라틴어에 상당히 능숙하고 스스로를 로마인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 말기 국경이 무너지면서 대거 유입된 게르만 인들은 이미 로마화 되어 있었던 것이다.







 쾰른이라는 지명은 ‘식민지’를 의미하는 고전 라틴어 단어인 ‘콜로니아(Colonia)’에서 왔는데, 이는 이 지역 역시 로마의 영향권 아래에 편입되면서 이곳의 게르만 인들이 로마화 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로마’와 ‘게르만’이라는 두 가지 단어는 쾰른이라는 도시의 모태를 잉태하게 된 뿌리이자, 동시에 쾰른을 만들어내고 쾰른의 정체성을 형성한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로마의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이지만 ‘로마’와 ‘게르만’이라는 단어가 한꺼번에 박물관 이름을 장식하고 있는 데에는 이와 같은 역사적 유래가 있는 것이다. 더불어 박물관 이름이 곳 도시의 탄생과 역사를 드러내고 있다.







 로마 제국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유럽인들에겐 ‘로망’인 것 같다. 비단 로마의 맏딸 격인 이탈리아가 아니더라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심지어는 그 때 당시에는 야만인이라 불리던 자들의 후예인 독일에게도 로마는 경탄의 대상이다. 11월에 슈투트가르트에 갔을 때에도 주립 박물관에서 ‘로마의 꿈(Ein Traum von Rom)’이라는 제목으로 로마 유물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쾰른에는 아예 로마-게르만 박물관이 있다. 이탈리아가 아닌 독일에서 연속으로 로마를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놀라긴 했지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로마의 영향력이 지중해 유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 걸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로마 제국 붕괴 이후 중세가 도래한 시대에도 샤를마뉴나 유스티니아누스 같은 걸출한 군주들 역시 로마의 계승자를 자처함을 물론이고, 그들 치하에 있던 사람들 모두 스스로를 ‘로마인’이라고 칭했다. 비록 제국은 그 수명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어도, 제국이 남긴 유산은 사람들의 정신 속에 남아 유럽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가장 강렬하게 기억이 남는 유물은 박물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모자이크 이다. 거대하지만 작은 동작과 장식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조각된 모자이크는 목욕탕의 바닥을 장식하는 타일이었다고 한다. 작품의 주요 테마를 이루는 신은 디오니소스 인데, 이는 작품 곳곳에서 보이는 포도 도상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디오니소스는 술, 그 중에서도 포도주를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헌데 목욕탕에 술의 신이라니. 뭔가 조합이 살짝 맞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음주를 하고 사우나를 하면 심장발작으로 인한 사망의 위협이 높아지는데 목욕탕에 디오니소스라니. 로마인들이 술을 마시고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을 즐겼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왜 하필 디오니소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사는 내 전공분야는 아니지만 전공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꽤 관심이 있는데 이 기회를 통해 한 번 더 살펴봐야 겠다.












 놀랐던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유리 유물들의 양 이었다. 내가 가봤던 그 어떤 로마 관련 박물관이나 전시보다 유리병과 유리 공예품들이 많았다. 2층의 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어마어마하게 펼쳐진 로만 글라스(Roman Glass)들의 모습에 압도당해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이 당시에 유리는 사치품 이었을 텐데 제국의 변방인 콜로니아(쾰른)에서 이 정도의 양이 출토되었다면 수도인 로마나 부유한 지중해의 주요도시들에선 얼마나 많은 유리 공예와 호화 생활이 이어졌다는 걸까. 지금 많이 소실되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현대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화려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욕망은 그다지 다르지 않고, 지금보다 기술이나 물자가 부족했던 과거라 해도 인간의 심성은 큰 변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리병들은 실용적인 용도의 단순한 병들에서부터 화려한 장식용까지 종류도 모양도 다양하다. 온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일그러지고, 다 완성되어도 살짝 부주의하기만 해도 깨지기 쉬운 재료들을 가지고 여러 가지 복잡한 도상들을 생동감 있게 입체화 한 것을 보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고 이 유리병이 같은 시기 신라의 무덤에서도 나왔다는 사실에 그저 감탄을 할 뿐이다. 당대 로마인들의 기준에선 바이킹들이 사는 유럽의 북방이나, 말로만 전해오는 국가가 존재하는 아시아의 동쪽 끝이나 모두 미지의 세계로 여겨졌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건과 사람을 끊임없이 이동하며 각 지역을 연결해주었다. 먼 옛날에도 사람을 통해 서로 다른 세계가 이어져있었다는 점에 새삼 놀라며 전혀 나와 관계가 없는 것 같았던 라인 강 유역 역시 내가 태어난 곳과 연결되어있었다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이제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해서 전 세계 곳곳이 그 때 보다는 훨씬 쉽게 연결되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인간의 정신이 과거에 비해 진보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들도 많이 잔재하고 있다. 정말로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연결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