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耽世 : 느끼다

[쾰른/141219-141229] Schokoladen! 초콜렛 박물관을 가다

 사실 초콜렛 박물관은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시간 때우려고 갔다. 책자에서 잠깐 언급이 되긴 했었지만 일단 로마-게르만 박물관이나 루드비히 박물관 보다는 뒷전이었고, 또 초콜렛을 좋아하기는 해도 굳이 박물관 까지 가야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쾰른 출신인 친구의 적극적인 추천과 애매하게 뜨는 시간 덕분에 그냥 발걸음을 옮겼고, 결과적으로 난 후회 없는 훌륭한 선택을 한 셈이 되었다.








 초콜렛 박물관은 시내에서 좀 떨어진 라인 강 하구의 항구에 위치해있다. 박물관을 가기 위해 라인 강을 따라 걸으면서 오래된 교회와 대성당이 있는 구시가지와 대비되는 강 건너의 쾰른 신시가지를 구경하는 것이 꽤 운치가 있다. 더불어 강을 산책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구경하면 나 역시 쾰른 시민들의 일상 속에 녹아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강에는 유람선들이 여럿 정박해 있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유람선은 쾰른-뒤셀도르프라고 크게 박힌 로고를 가진 것 이었다. 라인 강 연안에서 가장 큰 도시인 쾰른과 주요 산업 요충지인 뒤셀도르프를 오가는 유람선이 자주 오간다고 한다. 여름에는 이 두 도시를 끼면서 마인츠와 코블렌츠, 심지어 로렐라이 언덕까지 오가는 라인 강 크루즈가 운항된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여름에 다시 쾰른을 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아무튼 그렇게 라인 강변을 따라 걷다가 하구에 섬처럼 자리 잡고 있는 예쁜 박물관에 도착했다. 인공 섬인지 아니면 나의 시각적 착각이었는지는 아직도 확인하지 못했지만, 정말 멀리서 보면 초콜릿 박물관은 라인 강에 떠 있는 섬 같다. 게다가 내가 갔을 때는 강 하구에서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창이었던 데다가, 건너편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가 있어서 그런지 중세의 풍경과 SF의 한 장면이 묘하게 섞여있는 것 같은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여러모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며 정박해 있는 배들을 가로질러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디저트라면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단연 최고이기는 하다. 더군다나 내가 현재 살고 있는 파리가 어떤 도시인가. 마카롱, 에끌레어, 무스 등등 눈과 혀를 모두 즐겁게 하는 각종 디저트들의 어머니 격인 도시가 아닌가. 하지만 초콜릿에 있어서는 독일 역시 뒤지지 않는다. 킨더, 밀카, 리터 등등...각양각색의 초콜릿 천지인 곳이 바로 독일이다. 프랑스의 디저트들이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맛과 시각 모두에서 극한의 기교를 이끌어낸 예술의 경지를 보여준다면, 독일의 초콜릿은 기교나 예술성은 떨어지지만 초콜릿이라는 음식 본연에 충실한 ‘진짜 초콜릿’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프랑스의 빵이 부드럽고 식감이 좋은 반면, 독일의 빵은 투박하지만 간단하게 식사로 때우기 좋은 느낌인데 이러한 차이들이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 같다. 국민성이라고 하는 애매한 단어를 넘어 자연 환경과 문화, 산업구조 등 다각도의 차이가 음식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초콜릿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가 독일에 와서 초콜릿 박물관에 가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겠지 싶다.








 초콜릿 박물관은 초콜릿의 유래, 경제적 가치, 공정 과정, 역사 등 초콜릿과 관련된 여러 가지들을 전시하고 있다. 흥미로웠던 것은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의 공정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이슈들을 함께 보여주고 있던 것이다. 특히 아동노동이라는 카카오 거래의 어두운 면을 보여줌으로써 초콜릿이라는 식품이 단순한 가공식품을 넘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지구 한쪽에선 행복하게 초콜릿을 먹으며 가족의 사랑을 받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학교도 가지 못한 채 초콜릿을 만들기 위한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이가 있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문명의 저변에는 어두움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초콜릿의 공정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 역시 신기했다. 카카오 고형을 녹여서 첨가물을 넣고 틀에 찍어내 각종 모양의 초콜릿들을 만들어낸다. 단순한 모양의 초콜릿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의 입체적인 초콜릿들 역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척척 찍어낸다. 이래서 유럽 세계에서 제과나 제빵이 그저 요리에 그치지 않고 예술이라는 영역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짐작이 들었다. 미각의 만족에만 그쳤다면 신경 쓰지 않았을 시각이라는 영역까지 신경 쓰면서 초콜릿의 상품가치는 더욱 올라가고 다양한 초콜릿들이 출시된다. 보기도 좋으면서 먹기도 좋은 음식,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지만 이것은 아주 기초적인 영역에 지나지 않고 이 영역을 지나면 오히려 욕구가 창조를 이끄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초콜릿의 역사를 전시해놓은 전시관을 만나게 된다. 초콜릿의 본래 고향인 메소아메리카부터 초콜릿이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 식품으로 변모한 2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의 모습을 순서대로 파노라마처럼 보여주고 있다. 아즈텍 사회에서의 초콜릿은 인간을 구원하는 선한 신 '케찰코아틀'의 상징이자 왕족들만이 마실 수 있었던 고귀한 음료수 였다. 그러나 태양의 왕국은 에스파냐 군대에게 처참하게 무너지고, 이들이 그렇게나 숭배하던 음료인 초콜릿은 에스파냐 군인들을 통해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 상류층의 기호품으로 자리 잡게 된다. 신대륙에서 온 이 신비로운 음료수는 단번에 유럽 상류층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 음료수를 담기 위한 각종 그릇들이 제작된다. 또, 한편으로는 초콜릿에는 병을 치유하는 신비한 기능이 있다는 속설이 돌면서 초콜릿은 약국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품목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과학이 발전하고 공장에서 모든 것을 대량 생산하는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초콜릿 역시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산품으로 변화하고, 나아가 식량이 모자란 전쟁 시기에는 높은 당과 탄수화물 함량으로 비상식량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초콜릿이라는 한 대상을 가지고 이렇게나 많은 것을 보여주고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물론 내가 초콜릿을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재미있게 본 것 일수도 있다. 하지만 박물관은 재미없고 따분하고 오래된 것들만 전시하는 곳이라는 편견을 벗어나서, 우리의 일상 속에 존재하는 평범한 것에서도 여러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인상 깊었다. 어쩌면 평범하고 생활 속에서 커다란 의미를 찾아내는 행동이, 소박하고 근면하게 살지만 행복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현재의 독일을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치고는, 루이비통 회장이나 삼성 오너 일가 같은 재벌은 거의 없지만 대체적으로 골고루 잘사는 중산층들로 대표되는 독일이라는 나라의 특성과 너무나도 잘 들어맞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