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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프랑크푸르트/20150212-20150215] Ich bin in Wunderland! 이상한 나라에 떨어지다

 

 

 

 

 

 

 프랑크푸르트의 첫인상을 말하라고 한다면, 난 단 한마디로 요약할 것이다. 바로 ‘전차 원더랜드(Wonderland)’. 아, 프랑크푸르트는 영국이 아니라 독일이니까 독일어로 표기하면은 분더란트(Wunderland)라고 해야 하려나. 여하튼 프랑크푸르트는 그랬다. 전차가 다니는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도시. 파리나 슈투트가르트, 스트라스부르처럼 고층 빌딩이 거의 없는 도시만 보아온 나에게 있어서 프랑크푸르트의 풍경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물론 지난 크리스마스를 보낸 쾰른도 고층 건물이 있는 도시이지만, 워낙에 대성당이 지닌 위엄과 힘이 대단한데다 라인 강이라는 거대한 자연물의 아우라와 도시 곳곳에 고풍스러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들이 자리 잡고 있는 지라 고층건물들은 도시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주었었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는 정말로 달랐다. 프랑크푸르트의 고층건물은 쾰른의 고층건물이나 파리의 몽파르나스 타워와는 달리 말 그대로 도시 그 자체를 이루고 있는 유리의 숲 이었다. 게다가 빌리 브란트 광장의 유럽중앙은행 앞에 거대하게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유로화 조각상을 보면, ‘마인하탄(Mainhattan)’이라는 이곳의 명성이 허울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14세기부터 마인 강 연안의 상업도시로 이름을 날리던 이곳은 이제 유럽 연합의 금융 심장이 되어 전 유럽의 경제의 혈관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겉모습만이 프랑크푸르트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이상한 나라 같은 것이다. 고층 빌딩으로 이루어진 유리의 숲을 조금만 지나면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마인 강 유역의 거대한 돔(Dom) 교회와 오래된 시가지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구시가지 뢰머(Römer)는 중세 프랑크푸르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과 동시에 프랑크푸르트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고층빌딩 한 가운데에 선명한 파란색을 드리우고 있는 유로화 조각물도 프랑크푸르트의 상징이지만, 어디선가 전통 의상을 입은 동화 속의 소년 소녀들이 뛰어나올 것 같은 뢰머 역시 프랑크푸르트의 상징이다. 한 마디로 말해 프랑크푸르트는 이 전혀 다른 두 가지가 한꺼번에 공존하는 곳이다. 특히 아기자기한 구시가지 한 가운데에서 넋을 잃고 있다가도 조금만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 고층 빌딩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중세의 풍경과 SF에서나 나올 법한 마천루들이 시야 한 가운데에 동시에 담기는 도시는 아마 프랑크푸르트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6-7세기의 시간 간격을 지닌 풍경이 한 시야에 공존하는 그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신비롭기 이를 데 없어서, 마치 거대한 것과 원자만큼이나 작은 것이 모두 존재하는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걸리버나 앨리스가 된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프랑크푸르트에 와서 든 첫 번째 느낌이었다.

 

 

 

 

 

 

 

 

 쾰른에서는 대부분을 걸어 다녔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주로 전차를 타고 다녔다. 사실 도시 규모 자체는 쾰른이 훨씬 더 크다. 당연하다. 쾰른은 독일의 제 4의 도시이니까. 물론 그 뒤를 잇는 도시가 프랑크푸르트이지만, 인구 100만이 넘는 쾰른과 60만을 간신히 넘는 프랑크푸르트는 거의 두 배가 차이난다. 하지만 도시의 설계 자체가, 쾰른은 도보 위주로 되어있고 프랑크푸르트는 전차와 지하철(U-Bahn)위주로 되어있기 때문에 장거리를 걸어 다니기에는 생각보단 마땅치가 않다. 나의 경우는 숙소가 프랑크푸르트 동역 근처의 마인 강 항구(Osthafen)에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시내로 가는 전차를 줄곧 타고 다녔다.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는데, 이는 전차가 주요 교통수단인 도시에 처음 와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파리에도 전차가 있지만 전차보다는 지하철인 ‘메트로’나 급행열차 ‘RER’이 주요 교통수단이고, 전차는 이들이 지나지 않는 노선을 보조하는 정도이다. 쾰른에도 당연히 전차가 있지만 쉴더가세나 에렌슈트라세, 대성당 주변 같은 주요 시내와 라인 강의 길들은 전부 도보이고,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전차를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인지 프랑크푸르트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노면 전차를 타고 가면서 구경한 창 밖 풍경이 너무나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파리에 오기 전까지 ‘유럽’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으레 떠올리곤 한 풍경이 바로 동화같은 도시 위를 한가롭게 지나다니는 노면 전차였는데, 프랑크푸르트는 이 같은 클리셰에 상당히 들어맞는 도시이다. 아, 물론 하늘을 긁을 것처럼 쭈욱 뻗어있는 고층 빌딩의 모습은 유럽보다는 뉴욕이나 서울 같은 대도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일부의 독일인들은 프랑크푸르트를 가리켜 멋없는 고층건물들이 가득한 못생긴 도시라고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의 틈새 가운데에 뢰머나 성 니콜라이 교회 등의 고즈넉한 옛 모습이 보인다는 것은 여전히 신기하다. 그리고 마인 강변을 따라 도시 위를 달리는 전차는 아주 귀엽고 아담하다.

 

 

 

 

 

 

 관광객들, 특히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있어서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는 ‘볼 거 없지만 일단은 유럽여행의 시작(혹은 끝)인 도시’라는 인상이 강하다. 우선은 고층의 빌딩이 자아내는 모습이 여타의 유서 깊은 유럽의 도시들과는 달리 별 볼 일 없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 첫 번째이고, 그 다음은 프랑크푸르트가 유럽 전역을 잇는 철도망과 항공망의 심장부에 있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아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도 독일 노선에 있어서 프랑크푸르트를 가장 우선적으로 취항하는 도시로 취급할 것이다. 게다가 금융과 상업이 발달한 도시이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관광객보다는 출장이나 업무로 온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도시의 거리, 특히 주요 기관들이 집중되어 있는 빌리 브란트 광장을 거닐다보면 이곳이 뉴욕 한복판인지 유럽인지 분간이 안 되기도 한다. 물론 유럽중앙은행의 트레이드마크인 유로화 조각상을 보는 순간 정신을 차리게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여행은 큰 기대를 하고 오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는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작지만 강하고, 구시가지와 마천루들 사이의 커다란 갭이 도리어 신비롭게 다가왔다. 오히려 이처럼 큰 갭이 존재하는 풍경이 옆 나라 프랑스가 누리던 근대식의 해방을 누리지 못하고 좌절된 채 단절되어 중세식의 구체제를 계속 간직하다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통해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현대를 맞은 독일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근대는 없지만 중세와 현대는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프랑크푸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프랑크푸르트가 훨씬 더 개방적이고 상업적인 도시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말이다. 독일의 역사나 문화에 큰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을 못 끌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환승만 하고 지나치기에는 이 도시의 얼굴이 지닌 의미가 너무 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