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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프랑크푸르트/20150212-20150215] Goethestadt! 천재를 낳는 공기에는 자유와 부유함이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두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나는 ‘괴테’와 ‘풍경’을 꼽을 것이다. 물론 앞선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프랑크푸르트의 상징은 당연히 유럽중앙은행 같은 고층 건물들과 아기자기한 구시가지 뢰머이고,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경’과 ‘괴테’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이들이 바로 고층건물과 구 시가지를 모두 아우르는 역사를 잉태한 근원지이자 증언자이기 때문이다. 고층 건물들을 배경으로 서있는 괴테의 동상을 보는 순간 '아, 이곳은 괴테가 태어난 곳이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괴테가 태어나고 성장한 부유한 상업도시 프랑크푸르트와 유럽의 금융 심장인 프랑크푸르트가 같은 곳임을 실감했다.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중앙은행'과 '괴테 광장'이 같이 있는 도시이다!






 이러한 요소와 상징들을 한꺼번에 묶어내는 키워드가 바로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의 구조 그 자체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상업’. 고층 건물이 가득한 초현실주의적인 첫인상과는 달리 프랑크푸르트는 14세기부터 마인 강변의 주요 중계 무역 장소 역할을 해 온 유서 깊은 상업도시이다. 상업은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를 잉태한 원천이며, 동시에 현재의 프랑크푸르트를 유지시키고 이끌어가는 심장이다. 전근대의 프랑크푸르트는 북쪽의 한자 연맹 도시들과 독일 내륙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자 중계 무역지 역할을 했다면, 현재의 프랑크푸르트는 유럽 각지로 나아가는 교통망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이자 동시에 유럽 전역의 기업 활동과 유럽 금융의 집결지로써 현대적 자본주의 상업도시의 표본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이쯤 되면 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에 나오는 하이디 친구 클라라의 아버지 제제만이 ‘프랑크푸르트의 대상인’인지 알 것 같다. 알프스의 깡촌과 대비되는 상업과 무역의 도시로 프랑크푸르트만한 도시가 없을 테니까. 더불어 대상인이자 대부호인 인물이 사는 독일의 도시로도 프랑크푸르트 외의 도시를 상상하기가 힘들테고. 여담이지만 한국인들에게 베를린이나 함부르크보다 ‘프랑크푸르트’라는 이름이 친숙한 것은 프랑크푸르트가 항공 교통의 관문인 것도 있겠지만,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때문인 까닭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어릴 적 읽은 동화의 기억이란 생각외로 꽤 오래가는 법이고, 하이디가 뛰어노는 알프스의 깡촌과 화려하지만 시골 소녀에겐 너무나도 가혹했던 상업도시 프랑크푸르트의 모습은 완벽하게 대비되니 말이다.








 하지만 상업도시라고 해서 상인만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전근대의 프랑크푸르트는 클라라 아버지 제제만 같은 성공한 상인들로 대변되는 상업도시였고, 현재의 프랑크푸르트 역시 ‘마인하탄’이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은 상업과 금융의 도시이다. 허나 여기엔 또 다른 의미가 숨어있다. 상업의 도시라는 것은 도시에 돈이 많고 풍족함을 의미하고, 다시 이것은 풍족한 환경 속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신의 재능을 펼치는 천재가 나타나는 토양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괴테가 프랑크푸르트 태생인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괴테는 유럽적 르네상스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독일이 낳은 천재를 꼽으라고 하면 두말할 것 없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이 바로 괴테이다. 뛰어난 작가이면서 오랫동안 재상을 역임한 정치가이고, 미술과 연극에 재능이 있고, 독자적으로 과학을 연구하기도 하며, 연애의 고수이기도 했던 ‘전 우주적 인간’이었던 괴테. 하지만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탁월한 천재라고 하여도 그 재능을 펼칠 수 있을 만한 토양과, 재능을 펼치기 위해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는 물질적인 기반이 없으면 결국 꽃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버리기 마련이다. 괴테가 다방면에 능한 천재로 성장하여 전인적인 성취를 이룰 수 있던 것도, 그가 프랑크푸르트의 부유한 상인가문 출신이며 동시에 프랑크푸르트라는 자유로운 도시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업은 곧 프랑크푸르트와 괴테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카테고리이자 그 자체인 것이다.


















 보통은 프랑크푸르트에 일을 하러 가거나 아니면 다른 지역으로 가는 교통 수단으로의 환승을 위해 오지 관광을 가진 않는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출장이나 업무로 오는 사람들, 혹은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교통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지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를 보기 위해서 오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다. 내가 프랑크푸르트로 ‘여행’을 간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에 온 이상, 그리고 나의 관심사가 경제 및 도시와 관련된 역사와 인류학에 집중되어 있는데 유럽 최고의 상업 도시를 보지 않는 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프랑크푸르트에 왔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 왔는데 괴테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게 해서 찾은 괴테하우스, 괴테 생가 겸 박물관은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자그마한 건물 안에 옛날 양식의 가구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을 보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벽 곳곳에 옛 양식의 시계들과 그 당시의 프랑크푸르트의 풍경을 그린 그림들이 걸려있어서 더더욱 그 시대에 온 실감이 났다. 걸어 다닐 때마다 나무 바닥과 계단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생생했다. 비록 낡고 색이 바래기는 했어도 정교하고 우아한 가구들과 각기 다른 색들로 꾸며진 방들은 당시 프랑크푸르트 최고의 부잣집이기에 손색이 없었다. 역시 아름다운 것을 가려내는 안목과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창의력은 물질이 기반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괴테가 쉴러보다 더 연애를 많이 하고, 활동적인 성격이었던 데에는 프랑크푸르트라는 자유 도시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중세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던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위계질서에 속한 엄숙한 군의관 가정과 자유로운 분위기의 상업 도시는 엄연히 다른 법이다. 이미 지난번에 슈투트가르트를 갔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더 이런 부분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역시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준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유효한 말이고, 프랑크푸르트와 괴테는 이 문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고층 빌딩의 숲이 창연한 프랑크푸르트 시가지와 고풍스러운 괴테의 옛 생가가 한 장소에 공존하는 것을 보면 다소 기묘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괴테의 집은 지금이라도 당장 기다란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가 종종 걸음으로 걸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옛 모습이 잘 보전되어 있다. 괴테의 집 안과 밖에는 대략 300년 가량의 시간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조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떠올리다보면, 시간 차이의 갭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부조화가 아닌 역사의 연장선으로 다가온다. 천재를 낳아 길러낸 부유한 상업도시의 전통이 이어져 지금의 금융의 심장을 이루어낸 것이다. 유럽적인 근대와 자유의 개념, 그리고 전인적인 천재의 탄생이 어떻게 연관을 가지고 연쇄 작용을 이루어내는 지에 대해서 생각한 시간이었다. 이런 면만 봐도 그냥 지나치기엔 다소 아까운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