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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암스테르담/20150220-20150222] 걸리버의 도시에 가다!

 파리에 와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학제 시스템이었다. 안 그래도 한국이랑 전혀 딴판으로 다른데, 심지어 행정 절차도 복잡하고 학교마다 다 다르게 돌아가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휴가와 학기 구분도 과목마다 따로따로이다. 옆의 프랑스인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본인들도 모르겠다는 대답뿐. 결국 그렇게 난리 아닌 난리를 치던 와중에 나는 이미 예약해놓은 티켓이 고정되어있는 지라 여행을 강행해버렸다. 아마 이번 여행이 내가 파리에 와서 처음으로 ‘독일 이외의 지역’으로 떠난 해외여행일 것이다. 목적지는 암스테르담! 아무래도 이번 2월은 ‘할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이라는 노래 가사를 실현하는 달 인 것 같다.


 암스테르담을 선택한 이유는 별 거 없었다. 사실 2월말은 음력 설 연휴가 길게 겹친 기간이라서 분명 파리가 관광객으로 드글드글 발 디딜 틈도 없을 것이 분명하기에 어디로 떠날 계획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지만, 독일을 최근에 꽤 많이 갔던지라 기차로 갈 수 있는 곳 중 독일이 아니고 거리가 가깝고 비교적 물가가 비싸지 않은 곳을 선정하다 보니 암스테르담이 딱 걸린 것이다. 게다가 암스테르담에는 근 3년 이상을 만나지 못한 나의 친구가 살고 있고, 또 마침 한국에서 친하게 알고 지내던 분이 암스테르담에 온다고 해서 사람들도 만날 겸 충동적으로 암스테르담 행 티켓을 결제해버린 것이다!


“이봐, 올리. 나 이번 주말에 암스테르담 가는데 우리 맥주나 한 잔 하자!”


 그렇게 해서 나는 여태까지 내가 만났던 도시들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지닌 별세계,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열차에 올라탔다.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기 위해서는 쾰른을 갈 때와 마찬가지로 파리 북역을 출발하는 탈리스(Thalys) 기차를 타야 한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기차인지라 졸린 눈을 뜬 채 있는 힘껏 달려가 기차에 몸을 실었고, 쾰른으로 향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차 시트에 몸을 기대자마자 단번에 잠이 들었다






 정신없이 꿈나라를 헤메는 사이 기차는 어느 새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했고, 안내 방송을 들은 나는 주섬주섬 짐을 들고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내렸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네덜란드를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작은 나라’, 혹은 ‘독일과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아류’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맞는 말도 아니다. 네덜란드어는 게르만 어군에 속하고 사람들의 외모나 기원 역시 고대 게르만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독일과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는 조상을 공유하는 셈이다. 그러나 네덜란드어에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도 상당히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앙역(Station Centraal)’이다. 프랑스어로 중앙을 의미하는 ‘central’이 네덜란드어로 들어와 같은 의미를 지닌 형용사로 만들어진 것이다. 독일어로 중앙을 의미하는 단어가 ‘Haupt’이고 중앙역이 ‘Hauptbahnhof’인 것을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암스테르담에 내리자마자 나를 반겨준 것은 나의 친구 올리였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내가 다니던 모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 중 하나였던 올리는 그 학기의 유일한 네덜란드인 이었고, 가장 키가 큰 학생이었다. 본명은 올리비에인데 그 학기에 올리비에가 세 명이나 있어서 우리끼리 ‘키 작은 올리비에’, ‘키 큰 올리비에’, ‘네덜란드 올리비에’로 구분해서 불렀었다. 독특한 유머감각이 있지만 솔직하고 여러 가지 문제 해결에 능한 올리는 언제 봐도 재밌는 녀석이었고, 동남아시아에서 인턴 일을 하다가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와 사진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대략 3년이 넘는 시간동안 보지 못하다가 내가 파리에 오고, 암스테르담으로 주말여행을 오게 되면서 다시 만난 것이다.








 반가움도 잠시, 올리의 손을 따라 역을 나오자마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확실히 암스테르담은 예쁘다. 사진으로만 봤던 길고 좁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들은 참 귀엽다. 이 건물들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작은데 그래서 더 귀엽다. 건물이 작은 만큼 길도 좁고 트램도 작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탄 트램은 그래도 나름 크고 세련되었었는데, 암스테르담의 파란 트램은 레고의 레일 위에서나 돌아다닐 법한 장난감 전차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것도 멀리서 보았을 때나 할 수 있는 감상이지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내리자마자 보이는 트램 정거장을 보는 순간, 이 모든 느낌들이 싹 증발되고 단 한 마디의 소리 없는 비명만이 나온다.


‘세상에나!’


 그렇다. 세상에나. 아기자기하지만 정말로 좁은 그 길 위에, 트램과 자전거와 사람들이 한 데 뒤엉켜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떠나려고 하는 트램의 문을 강제로 열어젖히고 승차를 하거나 카드를 찍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허나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은 없다. 당연하다. 트램 기사가 엄격하게 지키고 있고, 요금이 없으면 트램 기사에게서 티켓을 사는 구조이니까. 파리지앵들이라면 가볍게 장애물을 넘어 무임승차를 할 것이고, 독일인들이라면 떠나는 트램을 그냥 보내고 다음 트램을 기다릴 것이다. 멀리 보이는 귀여운 건물들의 실루엣을 벗어난 순간 내게 다가온 암스테르담의 첫 인상은 좁은 길에 트램, 자전거, 차, 사람이 섞여있는, 한 마디로 파리와는 또 다른 의미의 ‘개판’이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 긴 팔을 쭉 뻗어 트램 문을 열어젖히는 암스테르다머(Amsterdamer)들의 모습은 신기 그 자체였다. 그러고 보니 건물과 거리는 정말로 작고 좁은데, 사람들은 엄청 크다. 장난감 나라의 미니어처 월드 같은 도시이지만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민족이다. 190 센티에서 아주 조금 모자라는 올리 역시 여기서는 그저 ‘보통’의 신장일 뿐이다.


“봐봐, 나는 평균이라고.”


 절대로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올리랑 몇몇 독일 남자애들만 한국인들 머리 위에 떠다녔었는데, 암스테르담에서는 정말로 모두가 올리만한 키이다. 독일에서도 워낙 독일인들 키가 커서 벽 사이를 지나다니는 느낌이었는데, 암스테르담에서는 걸리버가 거인들만 사는 곳에 갔을 때 이랬겠구나 싶은 심정이었다. 게다가 독일은 건물들이라도 다 크고 새로 지었지만 암스테르담은 정말로 건물도 길도 다 작다. 큰 사람들과 작은 건물....17세기에 상업과 금융의 번영으로 도시가 급성장하면서 인구가 몰리게 되고, 이로 인해 주택난과 인구과밀이 심해지자 주거 공간 확보를 위해 집들을 좁고 길게 짓고, 집의 넓이와 창문의 크기 까지 세금으로 규제했다고 한다. 그 이후 도시는 거의 외관이 바뀌지 않은 채 지금까지 그 모습을 간직해오고 있다. 마치 시간이 멈추어버린 장난감 모형 속의 마을처럼.








 확실히 암스테르담은 귀엽다. 정말 귀엽다. 생각보다 훨씬 작았지만, 그 작은 건물과 좁은 길들로 인해 실망하기는커녕 재미가 배가 된다. 그렇게 길쭉하니 키가 큰 사람들이 그런 작은 건물과 좁은 골목들을 드나드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건물에 비해 사람들이 너무 크다. 헌데 더 신기한 것은, 그렇게 몸을 많이 구부림에도 불구하고 암스테르담에서 본 중장년층과 노인들은 꽤 허리가 곧고 자세가 바른 축이라는 것이다. 걸리버의 나라인 것 같기도 하다가 엄지공주의 나라처럼도 보이는 오묘한 도시, 그것이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