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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슈투트가르트/20150417-20150503] 다시 만난 도시의 품 속에서

 젊은 도시, 카를스루에와의 여정을 끝내고 슈투트가르트로 이동했다. 바덴에서 뷔르템베르크로 넘어간 것이다. 작년 겨울에 이미 한 번 갔다 온 지라 그냥 건너 뛸 법도 했지만 어쩐지 한 번 더 슈투트가르트에 가고 싶어진 지라 결국 슈투트가르트 행 기차에 올랐다. 겨울의 문턱에서 처음으로 회색의 무거운 코트를 걸친 곳, 그리고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창일 때 만났던 첫인상이 각인되었던 도시, 슈투트가르트. 하지만 같은 도시라 하여도 날씨와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수도 없이 실감했던지라 첫인상이 그 도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익히 체득하고 있었다. 그래서 슈투트가르트에 한 번 더 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부스스한 몰골로 몸을 기차 안에 집어넣고 약 30분간 졸다보니 어느 새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해있었다. 내가 처음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했을 때는 어두컴컴한 겨울 저녁이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날 맞아준 슈투트가르트는 햇살이 환하게 웃고 있는 오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째 생소해서 과연 이곳이 그 때 내가 방문했던 그 곳인가 하는 생각에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역을 한 발짝 나가자 눈에 익은 지명들과 지하철 노선도가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에는 U-Bahn과 S-Bahn도 구분 못해서 혼란스러웠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지리에도 익숙해졌고 어딜 가면 무엇이 있는 지 정도는 안다. 첫 방문과 두 번째 방문이 이렇게도 다르구나 싶어서 피식 웃어버렸다.











 그 때 그 겨울, 슈투트가르트에 왔을 때 두 번 놀랐었다. 분명 슈투트가르트가 파리보다 남쪽인데 파리와는 비교도 안 돼는 어마어마한 추위 때문에 놀랐었고, 두 번째로는 분명 슈투트가르트는 ‘자동차의 도시’라고 알고 있었는데 막상 와보니 자동차는커녕 울창하게 숲이 우거진 녹색의 도시라서 깜짝 놀랐었다. 슈투트가르트의 첫인상 무겁게 시린 추위와 녹색의 숲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도시였었다. 하지만 다시 찾은 슈투트가르트는 그때의 슈투트가르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기억을 더듬어 신 궁전 광장으로 걸어가자, 여전히 공사 중이지만 햇빛과 녹음을 한껏 머금고 있는 도시의 심장이 드러났다. 쌀쌀하고 사람도 없이 황량하던 그 때와는 달리, 태양빛과 바람을 한껏 들이마시며 계절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로 잔디 위가 가득 차 있었다. 새삼 내가 다시 슈투트가르트로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의 도시들은 ‘궁전’과 ‘광장’, 그리고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혹은 궁전 대신 오래된 성당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어디를 가든 도시의 가장 오래된 건물과 거리가 도시의 심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점이 파리와 사뭇 대비되는데, 그건 아마도 프랑스가 너무 일찍 중앙집권화 되어 파리가 전 세계인들의 도시로 우뚝 선 대신, 독일은 오랫동안 작은 영역들이 국가로써 기능하던 전근대 ‘작은 사회’의 흔적들이 아직도 짙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슈투트가르트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주도이자 가장 큰 도시이기는 하지만, 파리에 비하면 작고 아담한 도시이다. 서울과 비교하면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오래되었지만 우아하고 부드러운 건축들이 곳곳에 남아있는 파리에 비하면 다소 단조롭고 딱딱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슈투트가르트의 궁전 앞 광장을 꽤 좋아한다. 일단 어디를 가든 푸른 숲이 우거져 있고, 서늘하지만 맑은 공기가 바람에 섞여 들어와 부드럽게 코를 감싸는 그 느낌이 좋고, 현대적인 직선의 거리들 속에 과거의 흔적이 서려있는 그 오묘함도 좋다. 그 옛날 뷔르템베르크 공의 관저였을 궁전들은 지금은 각각 주립 박물관과 시청으로 쓰이고 있고, 보통 사람들은 감히 접근도 못했을 궁전 앞에는 잔디가 깔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흩날리고 있다. 역사의 흐름 앞에 권력이란 얼마나 무상한 것인가 생각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시대가 변하는 진통을 겪은 후 모든 사람들이 사람으로서 행복을 누려가는 과정이란 것을 생각하니 조금 씁쓸해지기도 한다. 결국엔 피를 흘려야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니.













 허나 역설적이게도, 이와 같은 고통의 과정으로 인해 생겨난 산물들이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파괴되고 다시 지어진 도시이지만, 파괴로 인해서 새로이 설계를 할 때 녹지를 우선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정말 도시 곳곳에는 나무가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고 잔디가 펼쳐져 있다. 그 중 백미는 역시 신 궁전 광장 뒤편으로 이어진 길인데, 발레와 오페라 등 공연이 펼쳐지는 극장과 시립 미술관이 위치한 이곳에는 연못을 낀 녹지가 풍부하게 조성되어 있다. 겨울에 왔을 때에는 회색의 하늘만이 잔디와 연못위에 내려앉아 있었는데, 여름의 문턱에 들어서자 연못 위에는 오리들이 도도하게 헤엄을 치고 있었고 잔디 곳곳에는 햇빛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 옛날 한 공국의 위상을 드러내던 공간은 전쟁을 거쳐서 파괴되었지만, 다시 사람들과 자연이 어우러져 문화생활을 즐기는 휴식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문득 전후 슈투트가르트 시장을 지냈던 ‘만프레드 롬멜’이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유명한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의 아들이다. 훌륭한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최후를 목격한 만큼 정치와 세상에 싫증이 날 법도 할 텐데, 그는 전후에 슈투트가르트 시장을 지내면서 도시를 복구하는 데에 힘썼다. 슈투트가르트가 지금과 같은 녹지와 풍부한 문화시설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공이 크다. 더불어 그는 실의에 빠진 시민들에게 힘을 불어넣으면서 유대인들이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와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과거의 슈투트가르트를 만든 것이 뷔르템베르크라면, 지금의 슈투트가르트를 만든 것은 롬멜이다. 역사엔 언제나 행운과 불행이 겹쳐지나간다. 다만 행운이든 불행이든,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잊어버리는 순간 재앙이 닥쳐오는 것에선 동일하다. 태양이 밝게 빛나는 푸른 하늘아래의 슈투트가르트는 여전히 남자들의 도시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지만, 처음보다 더 포근하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생각’을 주었다. 두 번 째 방문이지만 전혀 질리지 않았고, 나는 또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