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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루드비히스부르크/20150417-20150503] 다시 찾은 궁전의 품에 안겼을 때



  루드비히스부르크에 다시 간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냥, 작년에 보았던 궁전을 다시 보고 싶어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작년 겨울, 무작정 떠난 첫 여행길에 루드비히스부르크에서 나를 맞아준 것은 화려한 나비 날개 장식이 빛나던 크리스마스와 황량한 궁전이었다. 바로크 양식에 레몬 빛깔을 뽐내던 궁전은 회색의 칙칙한 겨울 하늘과 대비되는 아름다운 조형물이었지만, 싸늘한 바람과 아무도 찾지 않는 황량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왕국의 영광과 겹쳐져 우울한 느낌을 주었었다. 허나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운 건축 양식과 우울한 풍경이 어우러진 기묘한 모습으로 인해 루드비히스부르크의 궁전은 유달리 강한 인상으로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래서일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과연 이 궁전은 강렬한 태양빛 아래에서도 우울할까? 꽃이 활짝 피고 녹음이 가득한 계절의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여러 가지 궁금증들이 뇌리를 채웠었다. 그리고 마침내 봄이 다가오고 태양이 중천에 뜨자 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루드비히스부르크는 슈투트가르트의 교외 지역이다. 파리의 일 드 프랑스, 서울의 근교 경기도 지역과 같은 위성 도시라고 해도 무리는 없겠다. 다만 일 드 프랑스와 독일의 대도시 근교의 차이라면, 편의상 '위험도'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다. 파리 근교와 파리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인 센-생-드니(Seine-Saint-Denis) 지역은 거의 게토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다. 2005년에 폭동이 일어나 전 유럽에 충격을 주고, 이주자들에 관한 문제의식을 환기시킨 지역도 바로 이 지역이다. 하지만 독일의 근교와 도심은 겉보기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물론 베를린 근방에도 일 드 프랑스의 생드니 지역과 같은 곳이 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안정적이고 부유한 남부 지역엔 그런 곳이 없는 것 같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에슬링엔으로 가는 길이나, 루드비히스부르크로 가는 길이나, 열차 창밖으로는 녹색으로 이어진 한가로운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RER을 탈 때에는 긴장의 끈을 꼭 쥐고 있어야 하지만, S-Bahn을 타고 교외로 나갈 땐 살짝 긴장을 풀고 숲이 우거진 풍경을 즐겨도 된다. 파리에서의 삶에 상당히 만족중이고 파리를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RER을 거의 타지 않는 나에게 독일의 이런 점은 언제나 신선한 매력을 던져준다.









  번잡한 슈투트가르트 시내를 빠져나와 열차를 타고 루드비히스부르크 역에 내리자 조금 더 느긋하고 조용한 풍경이 나를 반긴다. 바로크 양식의 시청사는 작년에 본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건물을 새로 개축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공사를 한 것도 아니다. 여전히 바로크 양식의 건물은 아담한 마을의 중심부 역할을 하고 있고 사람들은 이곳에 모인다. 다만 그때에는 어두운 하늘 아래에 내려앉은 천사 형상의 장식들이 빛을 발하며 크리스마스 마켓을 수놓고 있었고, 이제는 크리스마스 마켓 대신 환한 태양과 길어진 낮이 주는 따스함이 내려앉아 있다. 차가운 공기 속에 손을 데우기 위해 들고 있던 크리스마스의 뜨거운 와인 잔 대신에 시원한 맥주잔이 사람들의 손에 들려있고, 아이들은 바스라지는 태양빛에 눈부셔 하면서도 뭐가 그리 신나는지 연신 시청 앞 광장을 뛰어다닌다. 사람들이 모인 곳 특유의 활기와 작은 마을 특유의 조용함이 어우러진 것을 보니 이곳이 확실히 내가 작년에 왔던 그곳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궁전으로 가는 길을 아주 쉽게 찾아 따라갈 수 있었다. 여전히 내 발과 머리가 길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찾은 궁전은 햇빛을 머금어 한층 더 빛나고 있었다. 황량했던 겨울의 궁전은 드레스 위에 털코트를 얹고 손을 데우던 귀부인 같았는데, 이제는 가벼운 노란색 드레스를 나풀거리며 일광욕을 즐기는 젊은 아가씨 같았다. 정원에는 녹음이 가득 찬 가운데 꽃이 만발해 있었다. 그 때에는 다 시들시들한 채 상록수만 남아 흘러간 역사를 추억하는 쓸쓸함밖에 느껴지지 않던 궁전과 정원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비록 역사는 흘러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루드비히스부르크는 도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뷔르템베르크의 왕이던 '루드비히'에게서 연원한 도시이다. 베르사유를 본 딴 궁전을 짓고 싶었던 뷔르템베르크 왕 루드비히가 수도 슈투트가르트 인근에 터를 잡고 궁전을 지었고, 그 궁전이 바로 이 루드비히스부르크 궁전이다. 허나 과도한 토건 공사로 인해 재정에 무리가 와 인부들과 건축가들에게 임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되자 왕은 임금 대신 궁전 주변의 땅을 배분해 주었고, 이로 인해 건축가들이 궁전 주변에 모여 살게 된 것이 이 도시의 연원이다. 따라서 궁전이란 곧 이 도시의 시작이자 상징이며, 나아가 도시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부 독일에서 큰 공국 중 하나였던 뷔르템베르크도, 결국 역사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과거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뷔르템베르크 왕 루드비히는 베르사유를 건립한 절대 군주 루이 14세와 같은 영광을 누리고 싶었겠지만, 그러기엔 뷔르템베르크의 재정은 너무 빈약했고 역사의 흐름은 절대 군주제와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궁전의 완공을 끝으로 뷔르템베르크의 영광은 종말을 고했고, 결국 뷔르템베르크 왕국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 영광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남아 빛을 발하며, 이제는 새로운 시대의 주역인 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 잡았다. 궁전을 거닐던 왕은 없지만 여전히 녹음은 푸르고 꽃은 아리따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역사의 주역은 바뀌었지만 문화유산은 빛을 발하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다시 만난 루드비히스부르크 궁전은 새로운 주인들을 꽤나 좋아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