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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世 : 느끼다

[뉘른베르크/20150417-20150503] 박물관에서 만난 다른 삶



 뉘른베르크에는 박물관이 많다. 뉘른베르크가 낳은 독일 대표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 박물관부터 장난감 박물관, 미니어처 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들이 있다. 못가서 아쉬운 박물관들이 상당히 많지만, 일단 가장 대표적인 박물관인 국립 게르만 박물관을 관람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다음 여행의 몫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뉘른베르크 국립 게르만 박물관은 독일 내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박물관 중 하나로 오페라 하우스, 구시가지의 성벽과 함께 뉘른베르크를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총 망라하는 컬렉션으로 명성이 자자한데, 특히 독일의 문화와 예술 및 시민들의 생활 용품과 관련된 유물들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슈투트가르트의 시립 미술관이 고전 회화와 현대 예술, 쾰른의 로마-게르만 박물관이 로마 시대의 역사에 특화된 박물관이라면 뉘른베르크는 고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독일인들의 일상과 문화 및 독일 특유의 예술에 특화된 박물관이다.












 박물관 안은 한적하고 고요했다. 관광 성수기가 아닐 시기의 평일에 가서 그런 지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얼핏 보기에는 최대 규모라는 이름 치고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착시현상일 뿐이다. 일단 층이 4층이나 되고, 큰 방 한두 개 대신 오밀조밀하게 칸이 나눠져 있는지라 실제로 박물관 안을 돌아다녀야지 그 크기를 실감할 수 있다. 여러 유물들이 흥미롭게 전시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내가 중세사 전공이라 그런지 중세 관련 유물들에 먼저 시선이 갔다.















 뉘른베르크가 중세 시대의 번영으로 유명한 도시인만큼 중세가 박물관의 컬렉션 중 가장 볼만한 부분이다. 용을 퇴치하는 성 게오르기우스의 조각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형상을 띄는 성모의 조각, 예수의 형상, 여러 성인들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중세는 기독교라는 일체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위계사회이다. 이 위계는 3개의 계층으로 이루어진 신분제를 의미하고, 이 체계를 유지하는 3신분 체제는 ‘기도하는 자(성직자)’, ‘싸우는 자(기사)’, 그리고 ‘일하는 자(농민)’이다. 프랑스에서는 후에 기사 계급이 궁정 귀족으로 편입되면서 프랑스 혁명의 원인을 제공하는 구체제의 모순을 만드는 주범이 된다. 하지만 독일은 프랑스와 다르다. 특히나 뉘른베르크는 더더욱. 전통적으로 이곳은 3 위계 체계에서 벗어난 상인들의 힘이 더 강했고, 그랬기에 금전으로 도시의 자치권을 사서 자유도시로 남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똑같은 조각이라도 역시 왕가의 품위와 권위가 느껴지는 프랑스의 조각들보다 자유분방하고 재치가 넘치면서, 한편으로는 기독교 이전의 민속 신앙의 흔적들도 간간히 엿보인다. 획일적인 사회라 할지라도 그 안에선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다.














 현대인들의 시각에서는 다소 비논리적, 비과학적이고 이해가 안 되는 시대가 중세이다. 물론 중세보다 더 오래된 고대라는 시대도 있지만, 그 시대에는 종교보다는 인간을 중심으로 사고했던 시대인지라 오히려 중세에 비해 더 이해하기 쉽다. 철저하게 종교적인 세계관 하에 구성되어 오로지 신을 위한 의식으로써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지금보다 생산량은 훨씬 떨어지지만 영주의 착취는 가혹했던지라 중세인들의 삶은 고달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뾰족한 고딕 첨탑과 아이를 안고 있는 인자한 성모상을 통해 천국에 갈 수 있음을 믿었을 것이다. 마치 남산에 불상을 안치하고 팔만대장경을 열심히 새기던 신라인들과 고려인들이, 정말로 부처를 통해 구원과 평화를 얻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역사란 이해되지 않는 삶의 조각들을 이어놓은 보자기 같아도, 때로는 의외의 면에서 진실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