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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도빌-트루빌/20150529-20150530] 다 잊어버리고 싶었던 날 (2) 다음 날, 언제 그렇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냐는 듯 날씨는 아주 쾌청했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으며 태양은 환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치 어제의 비바람은 없었던 일이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아쉽게 꼭 떠나는 날만 날씨가 좋냐는 생각이 들어 서운할 만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래도 떠나기 전에 맑은 하늘의 도빌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역시 같은 장소라도 날씨에 따라 인상이 확 바뀐다. 첫날의 도빌이 비바람을 쏟아내며 회색과 청색이 뒤섞인 우울한 우수를 자아내는 도시였다면, 떠나는 날의 도빌은 태양과 바다를 끼고 빛나는 새하얀 보석 같은 휴양지였다. 첫날에는 그렇게 우중충하게 각이 져 보이던 도빌 시내의 건물들 역시 태양빛을 받으니까 평화로운 동화마을처럼 보였다. 날씨라고 하는.. 더보기
[도빌/20150529-20150530] 다 잊어버리고 싶었던 날 (1) 파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노르망디이다. 프로방스나 랑그도끄처럼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해안은 아니지만, 차갑고 거친 것 같은 모습 뒤에 숨겨진 우아함과 정갈함이 매력적인 바다이다. 그 중에서도 도빌은 인근의 옹플뢰르, 에트르타와 함께 ‘노르망디의 3대 보석’이라고 일컬어지는 휴양 도시이다. 파리와 가까운지라 파리지앵들이 가장 선호하는 바닷가 도시이기도 한데, 특히 영화제와 승마가 유명한 고급 휴양지이다. 파리를 떠나 도빌로 향할 때 나는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물론 2월 달에 프랑크푸르트와 암스테르담으로 떠날 때의 나도 학기 말 슬럼프에 허덕이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피곤함과 어지러움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2월 달의 내가 적응기를 겨우 넘긴 상태에서 오는 정체기에 빠.. 더보기
[퐁투아즈/20150517]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는 순간, 퐁투아즈 중세축제(Medievald'Oise) 퐁투아즈는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고흐가 살았던 마을인 오베르 쉬르 우와즈를 지나는 환승역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프랑스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마을이다. 퐁투아즈는 프랑스와 영국, 두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은 큰 전쟁인 백년 전쟁 당시 가장 큰 전투가 벌어졌던 마을 중 하나이다. 한 세기 동안 수십번이나 점령국이 바뀔 정도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곳이다. 그리고 마침내 3개월간의 포위전 끝에 1461년, 샤를 7세가 영국군에게서 퐁투아즈를 탈환하고 이를 계기로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어 프랑스는 영국군을 프랑스 영내에서 완전히 몰아내게 된다. 중세의 끝자락에서 프랑스란 나라를 구해내고 성공적인 중앙집권국가로 탈바꿈하게 되는 데 퐁투아즈가 오를레앙만큼이나.. 더보기
[뮌헨/20150417-20150503] "남기고" 여행을 끝내다 뮌헨은 대도시이지만 녹지 공간이 상당히 잘 조성되어 있는 도시이다. 과거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였던 만큼 궁전과 왕실 정원이 잘 보존되어 남아있는데,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녹지 공간이 어마어마하게 넓기 때문이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유력 가문은 바이에른의 왕가이던 비텔스바흐 가문인데, 그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황후 씨씨가 이 가문 출신이다. 그리고 씨씨의 사촌이 바이에른의 마지막 왕이자 ‘백조의 호수’의 무대가 되는 퓌센 노이슈반슈타인 건설로 유명해진 루드비히 왕이다. 흔히 한국 사람들이 독일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는 꽤 상반된 편인데, 하나는 기계와 각종 공업으로 유명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목가적이고 동화책 같은 풍경으로 나라 전체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딱 절반만 맞는 .. 더보기
[뮌헨/20150417-20150503] 가장 촌스럽지만 가장 아름다웠던 것 유난히도 아쉬움이 남는 도시, 뮌헨. 뮌헨은 정말로 큰 아쉬움이 가득 남은 도시이다. 물론 다른 도시나 지역에서도 아쉬움은 여전하다. 카를스루에, 바덴바덴, 슈투트가르트, 뉘른베르크, 밤베르크, 뷔르츠부르크...이미 갔다 온 도시들도 못 본 곳이 너무 많아서 아쉽고, 울름, 아우크스부르크, 로텐부르크, 바이로이트 등 못 간 도시들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하지만 뮌헨에 대한 아쉬움은 누군가를 붙잡고 길게 하소연을 하고 싶을 정도로 크다. 뮌헨은 내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였다. 도착한 첫날은 너무 피곤해서 파김치가 되어 뻗어버렸고, 둘째 날은 노동절이었고, 나머지 이틀은 계속 날씨가 좋지 않았다. 볼 게 많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이 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없는 뮌헨에 대한 경험이.. 더보기
[뉘른베르크/20150417-20150503] 성벽에서 밤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낼 때 뉘른베르크의 정취를 더해주는 것은 역시 성벽이다. 구시가지 전체를 감싸고 있는 성벽은 중세의 느낌을 한껏 풍기면서, 동시에 뉘른베르크의 구시가지가 지닌 고전적이면서 동화 같은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11세기 즈음에 적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 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해 이후 조금씩 변화하면서 뉘른베르크를 보호하는 갑옷의 역할을 해왔다가,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 지금의 성벽이다. 성벽은 지난한 역사 속에서 꾸준히 뉘른베르크를 보호해준 갑옷이자 방탄조끼이며, 동시에 이제는 역사적 아름다움으로 많은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상징물이다. 뉘른베르크를 떠나기 전, 여전히 보지 못한 것들과 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너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벽은 꼭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보기
[밤베르크/20150417-20150503] 운하의 도시, 그리고 신과 인간의 도시 밤베르크의 아름다움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들었다. 작은 도시이지만 운하와 고전적인 건축물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가히 '북방의 베니스'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고. 허나 너무 지나친 기대는 오히려 실망감을 안겨주는 데다가, 비는 안와도 날씨가 맑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듣자 기대는 장대비 속의 촛불 모양 쏙 꺼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별 기대 없이, 제발 처음 뷔르츠부르크에 갔을 때 같은 날씨만은 아니길 기도하며 밤베르크행 기차에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기차역에서 내린 내가 마주 친 하늘은 금방이라도 무겁게 떨어질 것 같은 구름을 잔뜩 머금은 회색 하늘이었다. 그저 비만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속으로 빌며 터벅터벅 구시가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의 도시답게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강이 들어서 있다. 구름이 잔뜩 .. 더보기
[뷔르츠부르크/20150417-20150503] 두 번 방문한 도시, 두 번의 선물 뉘른베르크에 있을 동안 주변 도시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어서 탐색하던 중, 전부터 가장 가보고 싶었던 뷔르츠부르크에 갔다. 이 때 나는 뷔르츠부르크를 두 번 갔다. 본래는 한번은 뷔르츠부르크를, 한번은 로텐부르크나 뒹켈스뷜 같은 다른 작은 도시들에 가려고 했지만, 뷔르츠부르크에 상당한 아쉬움이 남았기에 결국 두 번 갔다. 처음 뷔르츠부르크에 갔을 때에는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에서는 구름이 다소 끼겠지만 비는 안 내린다고 해서 안심하고 왔는데, 막상 뷔르츠부르크에 도착했을 때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결국 시내 구경은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주교좌의 교회만 보고 중단해야 했고, 알테 마인 교 근처 비를 피하러 들어간 건물의 처마 밑에 앉아서 마리엔 요새를 바라보는 것으로 그 날 하루 전부를 보냈다... 더보기
[뉘른베르크/20150417-20150503] 박물관에서 만난 다른 삶 뉘른베르크에는 박물관이 많다. 뉘른베르크가 낳은 독일 대표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 박물관부터 장난감 박물관, 미니어처 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들이 있다. 못가서 아쉬운 박물관들이 상당히 많지만, 일단 가장 대표적인 박물관인 국립 게르만 박물관을 관람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다음 여행의 몫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뉘른베르크 국립 게르만 박물관은 독일 내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박물관 중 하나로 오페라 하우스, 구시가지의 성벽과 함께 뉘른베르크를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총 망라하는 컬렉션으로 명성이 자자한데, 특히 독일의 문화와 예술 및 시민들의 생활 용품과 관련된 유물들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슈투트가르트의 시립 미술관이 고전 회화와 현대 예술, 쾰.. 더보기
[레겐스부르크/20150417-20150503] 처음만난 도나우 강, 새하얀 보석 뉘른베르크에서 당일치기로 레겐스부르크에 간 날은 날씨가 아주 좋았다. 독일의 4월 날씨가 워낙에 변덕을 부렸던 지라 은근히 걱정을 했었지만,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햇볕이 쨍하고 공기가 따뜻했다.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속의 녹색은 내내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역에 내리는 순간 적당하게 따스한 태양과 아름다운 대리석의 거리가 나를 반겨주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도시 곳곳을 날아다니듯 걸어 다녔던 것 같다. 레겐스부르크는 도나우 강과 레겐 강이 만나는 강 하구 어귀에 자리 잡은 도시이다. 도시의 이름 역시 레겐 강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도나우 강 역시 끼고 있기에 독일에서는 ‘도나우 강의 레겐스부르크’라는 의미로 ‘레겐스부르크 암 도나우(Regensburg am Donau)’라고도 부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