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럽

[토리노/20150604-20150607] 고상함과 즐거움 사이의 간격 시간은 참 빨리 간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의 시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뜨거운 태양이 강하게 내리 쬘 때는 '아, 도대체 이놈의 더위는 언제나 되어야 들어갈까' 싶은 생각을 하며 어서 밤이 되길 기다리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그 장소의 시간은 엄청나게 빨리 흘러가버린다. 거의 절반은 충동으로 인해 시작된 이탈리아 여행이었고, 얼른 일정을 끝내고 더위를 피해 파리로 가고 싶단 생각이 처음엔 강했지만 어느 새 3박 4일이 훌쩍 지나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괜시리 서운한 마음이 든다. 여행이란 다 그런것 같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토리노에는 박물관이 정말 많다. 피에몬테 지방의 수도라고는 해도 서울이나 파리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도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른 개 가까.. 더보기
[제노바/20150604-20150607] 가장 생명력있는 푸른색 내가 제노바에 간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연구 주제를 위해 책 속의 도시를 직접 내 몸으로 체험하고 확인하는 것, 두 번째는 작년에 우리 학교에 교환 연구생으로 왔다 친해진 이탈리아인 친구 다니엘을 만나는 것이었다. 제노바 출신인 다니엘은 토리노에서 공부를 마친 후 작년에 우리 학교에 연구 교류 차 왔던 이탈리아 교환학생이다. 비잔티움과 지중해 문화교류 및 십자군을 연구하고 있는데, 지금은 논문을 쓰면서 제노바에 살고 있다. 전공의 성격 상 내 주변에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지중해 국가 출신들과 세르비아,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등 발칸 반도 출신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고, 학교와 이쪽과의 교류도 상당히 활발하다. 다니엘 역시 이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학교에 왔었고, 그 때 여러 친.. 더보기
[토리노/20150604-20150607] 시간의 스펙트럼, 그리고 실재와 환상의 경계선 둘째 날의 토리노는 여전히 더웠다. 한국처럼 습기로 인해 푹푹 찌는 찜통 같은 느낌을 주는 더위는 아니다. 굉장히 건조하기 때문에 일단 그늘이나 실내에 들어오면 시원하다. 하지만 태양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낮에 돌아다니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과 햇빛에 대한 내성을 요구한다. 한국의 더위가 습기 가득한 만두 찜통이라면, 이탈리아의 더위는 철판 위에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빛을 직격탄으로 맞으면서 탈수기에게 습기를 빼앗기는 것 같은 더위이다. 세련미가 넘치고 정교한 건물들과 잘 정돈된 거리는 일류 세공사의 손을 거친 다이아몬드만큼이나 아름답지만, 결국 더위에 지친 나는 거리 구경을 미루고 박물관 관람을 하기로 결정했다. 토리노의 중심은 궁전 앞에 펼쳐진 카스텔로 광장이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궁전과 각종 기념물.. 더보기
[토리노/20150604-20150607] 태양이 만들어내는 미적 감각에 대한 첫인상 나에게 있어서 이탈리아는 라면의 건더기 스프 같은 존재이다. 직접적으로 이탈리아를 연구하는 전공자는 아니지만, 이탈리아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연구는 진척되지 않는다. 마침 하던 일도 제대로 풀리지 않던 지라 결국 이탈리아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일이 수틀리거나 기분이 안 좋아지면 여행을 떠나는 습관이 생겨버린지라 딱히 새로운 것은 없었다. 혹자는 이것도 일종의 병이라고는 하지만, 어쨌건 여행이라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멋진 존재이다. 하물며 책에서 본 도시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결국 기차표를 결제했다. 본래 여행의 목적지는 토리노, 더불어 하루 정도 시간을 내서 토리노 주변 지역이나 친구가 살고 있는 제노바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더보기
[도빌-트루빌/20150529-20150530] 다 잊어버리고 싶었던 날 (2) 다음 날, 언제 그렇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냐는 듯 날씨는 아주 쾌청했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으며 태양은 환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치 어제의 비바람은 없었던 일이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아쉽게 꼭 떠나는 날만 날씨가 좋냐는 생각이 들어 서운할 만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래도 떠나기 전에 맑은 하늘의 도빌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역시 같은 장소라도 날씨에 따라 인상이 확 바뀐다. 첫날의 도빌이 비바람을 쏟아내며 회색과 청색이 뒤섞인 우울한 우수를 자아내는 도시였다면, 떠나는 날의 도빌은 태양과 바다를 끼고 빛나는 새하얀 보석 같은 휴양지였다. 첫날에는 그렇게 우중충하게 각이 져 보이던 도빌 시내의 건물들 역시 태양빛을 받으니까 평화로운 동화마을처럼 보였다. 날씨라고 하는.. 더보기
[도빌/20150529-20150530] 다 잊어버리고 싶었던 날 (1) 파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노르망디이다. 프로방스나 랑그도끄처럼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해안은 아니지만, 차갑고 거친 것 같은 모습 뒤에 숨겨진 우아함과 정갈함이 매력적인 바다이다. 그 중에서도 도빌은 인근의 옹플뢰르, 에트르타와 함께 ‘노르망디의 3대 보석’이라고 일컬어지는 휴양 도시이다. 파리와 가까운지라 파리지앵들이 가장 선호하는 바닷가 도시이기도 한데, 특히 영화제와 승마가 유명한 고급 휴양지이다. 파리를 떠나 도빌로 향할 때 나는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물론 2월 달에 프랑크푸르트와 암스테르담으로 떠날 때의 나도 학기 말 슬럼프에 허덕이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피곤함과 어지러움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2월 달의 내가 적응기를 겨우 넘긴 상태에서 오는 정체기에 빠.. 더보기
[퐁투아즈/20150517]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는 순간, 퐁투아즈 중세축제(Medievald'Oise) 퐁투아즈는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고흐가 살았던 마을인 오베르 쉬르 우와즈를 지나는 환승역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프랑스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마을이다. 퐁투아즈는 프랑스와 영국, 두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은 큰 전쟁인 백년 전쟁 당시 가장 큰 전투가 벌어졌던 마을 중 하나이다. 한 세기 동안 수십번이나 점령국이 바뀔 정도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곳이다. 그리고 마침내 3개월간의 포위전 끝에 1461년, 샤를 7세가 영국군에게서 퐁투아즈를 탈환하고 이를 계기로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어 프랑스는 영국군을 프랑스 영내에서 완전히 몰아내게 된다. 중세의 끝자락에서 프랑스란 나라를 구해내고 성공적인 중앙집권국가로 탈바꿈하게 되는 데 퐁투아즈가 오를레앙만큼이나.. 더보기
[뮌헨/20150417-20150503] "남기고" 여행을 끝내다 뮌헨은 대도시이지만 녹지 공간이 상당히 잘 조성되어 있는 도시이다. 과거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였던 만큼 궁전과 왕실 정원이 잘 보존되어 남아있는데,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녹지 공간이 어마어마하게 넓기 때문이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유력 가문은 바이에른의 왕가이던 비텔스바흐 가문인데, 그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황후 씨씨가 이 가문 출신이다. 그리고 씨씨의 사촌이 바이에른의 마지막 왕이자 ‘백조의 호수’의 무대가 되는 퓌센 노이슈반슈타인 건설로 유명해진 루드비히 왕이다. 흔히 한국 사람들이 독일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는 꽤 상반된 편인데, 하나는 기계와 각종 공업으로 유명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목가적이고 동화책 같은 풍경으로 나라 전체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딱 절반만 맞는 .. 더보기
[뮌헨/20150417-20150503] 가장 촌스럽지만 가장 아름다웠던 것 유난히도 아쉬움이 남는 도시, 뮌헨. 뮌헨은 정말로 큰 아쉬움이 가득 남은 도시이다. 물론 다른 도시나 지역에서도 아쉬움은 여전하다. 카를스루에, 바덴바덴, 슈투트가르트, 뉘른베르크, 밤베르크, 뷔르츠부르크...이미 갔다 온 도시들도 못 본 곳이 너무 많아서 아쉽고, 울름, 아우크스부르크, 로텐부르크, 바이로이트 등 못 간 도시들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하지만 뮌헨에 대한 아쉬움은 누군가를 붙잡고 길게 하소연을 하고 싶을 정도로 크다. 뮌헨은 내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였다. 도착한 첫날은 너무 피곤해서 파김치가 되어 뻗어버렸고, 둘째 날은 노동절이었고, 나머지 이틀은 계속 날씨가 좋지 않았다. 볼 게 많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이 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없는 뮌헨에 대한 경험이.. 더보기
[뉘른베르크/20150417-20150503] 성벽에서 밤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낼 때 뉘른베르크의 정취를 더해주는 것은 역시 성벽이다. 구시가지 전체를 감싸고 있는 성벽은 중세의 느낌을 한껏 풍기면서, 동시에 뉘른베르크의 구시가지가 지닌 고전적이면서 동화 같은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11세기 즈음에 적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 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해 이후 조금씩 변화하면서 뉘른베르크를 보호하는 갑옷의 역할을 해왔다가,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 지금의 성벽이다. 성벽은 지난한 역사 속에서 꾸준히 뉘른베르크를 보호해준 갑옷이자 방탄조끼이며, 동시에 이제는 역사적 아름다움으로 많은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상징물이다. 뉘른베르크를 떠나기 전, 여전히 보지 못한 것들과 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너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벽은 꼭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