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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 : 살다/彿國記

벌써 1년











 2014년 10월 10일 정오, 나는 인천 공항에서 태어나서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는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2014년 10월 10일 저녁 6시,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캐리어 두개와 함께 떨어졌다. 내 왼손 안쪽에는 출국 이틀 전에 받은 비자가 선명하게 찍힌 여권이 쥐어져 있었고, 주변에서 들리는 말이 전부 다 프랑스어라는 사실에 내 뇌는 두려움과 걱정 반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행으로 인한 피로와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을 하며 터벅터벅 캐리어를 끌고 터미널로 나왔을 때, 후리후리한 금발의 남자애가 내 이름이 쓰여진 종잇장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걸어나갔다. 한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한 나의 친한 친구 J의 베스트 프렌드인 B와 나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파리에 적응을 할 틈도 없이 곧바로 나는 학교 입학식과 시간표 구성, 지도교수님과의 면담, 은행 계좌 개설 및 핸드폰 개통, 이어서 집 구하기 까지의 폭풍에 휘말리면서 첫 3주를 보냈고, 간신히 집을 구해 이사를 하자마자 개강을 맞았다. 


 지난 주, 나는 파리에 온 지 정확하게 1년이 되는 날을 맞았다. 아직 수업은 시작하지 않았고 (물론 학기 시작을 위한 오리엔테이션들은 마쳤지만), 기본적인 행정 처리는 끝을 보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리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이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파리는 매번 새롭고 행정처리와 서비스는 언제나 느리고 번거롭고, 집안일이든 학업이든 내 맘대로 따라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처음 파리와 마주하는 초보였고,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 파리에 익숙해지면서 간신히 초보 티는 벗었다는 것이 큰 차이이다. 더불어 그때의 나는 걱정과 두려움밖에 가진 게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 보다는 나아진 불어 실력과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때의 나보단 지금의 내가 훨씬 파리에 익숙해졌고, 파리가 가진 여러 매력들을 발견하고 즐기는 안목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확실히 나는 그 때보다 "업그레이드" 된 사람이다. 


 







 사실 파리는 아주 매력적인 도시이다. 물론 로맨틱하지는 않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딱히 로맨틱하지도, 그렇다고 사랑하거나 사랑받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는 청회색의 도시. 행정은 느리고, 절차는 복잡하고, 항상 서류와 종이 덩어리들을 방 한구석에 먼지와 함께 쌓아두고 있어야만 하는 도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즐거움이 있다. 일단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내가 하고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자유, 한국과 달리 여자답고 날씬하고 싹싹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 아플 때 하루이틀 정도는 시간을 내서 쉴 수 있는 여유, 그리고 힘들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잠깐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여력들이 있다. 이러한 혜택들을 고려하면 복잡하고 느린 행정 절차나 언어적 어려움 정도는 '자유를 위해 감당해야할 책임'이라고 받아들이고 편안해질 수 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권리를 행사하고 사회보장 헤택을 위해선 그를 위한 규율을 준수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니까 말이다. 


 파리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분과 우연하게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그분이랑 크게 공감한 부분이 있다. 바로 "한국에서는 몸은 편하지만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프랑스에서는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편하다"는 것이었는데,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시설이나 전자동 인프라는 한국이 훨씬 좋다. 어지간한 것들은 다 인터넷으로 해결할 수 있는 얼마 안되는 나라가 한국이 아니던가. 굳이 몸을 움직이거나 일일이 서류 덩어리들을 품고 있지 않아도 전산이 다 해결해주는건 꽤 편하다. 정확하게는 '중독성이 있는 편리함'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인간이란 감정을 느끼고 정신 활동을 하는 존재인데 어찌 육체만 편하다고 모든 것이 편하랴. 한국에서는 집 안에 앉아서 키보드와 마우스만 움직여도 어지간한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신, 항상 남의 시선을 신경써야 한다. 특히나 여자라면 더더욱.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이자 과제이고, 조금이라도 크게 목소리를 올리거나 자기 주장을 관철해서는 아니되며,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에도 가장이 될 남자 경쟁자들의 사정을 생각해주고 스스로는 좋은 아내이자 엄마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관리를 해야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다르다. 비록 검은 머리, 검은 눈을 지닌 제 3세계 출신의 외국인이라 할 지라도 프랑스라는 공화국이 제시하는 법 테두리 내의 규정들에 충실하면 나도 내 연구 영역의 일원으로써 존중받는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말하고 쓰기 때문에 다소 서투를 지라도 도움을 요청하면 흔쾌히 도와주는 교수님과 동료들이 있다. 그리고 여자라는 성별이 내가 공부를 하고 행동을 하는 데에 있어 장애가 되는 일도 없고. 그냥 나는 나라는 존재로써 인정받고 존중받고, 내 단점을 냉정하게 지적하되 내가 가진 장점도 있는 그대로 칭찬해준다. 결국 나는 조금 더 불편해지되 자유로운 길을 택했고 아직까지는 큰 불평불만없다. 


 1년 동안의 파리 생활 동안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때로는 인상을 찡그리기도,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우기도, 노심초사하기도 한 시간들이었지만, 대신 그만한 대가를 치를만한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나처럼 한국에서는 누려보지 못한 자유를 누린 케이스라면 그 시간들이 얼마나 가치있는 지를 잘 알 것이다. 사실 모국어를 버린다는 것은 생각과 표현의 측면에서 가장 원천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기에 모국을 떠나 자유를 얻는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것이다. 외국어라는 근본적인 장벽이 나를 감싸고 옥죄고, 동시에 외국어는 내가 늦은 나이에 학습한 제 2의 습관 같은 것이기에 나는 외국어로 완벽하게 내 의견과 생각을 드러내지 못한다. 따라서 모국과 모국어를 떠난다는 것은 어찌보면 가장 원초적인 의미의 "자유의 박탈" 혹은 "자유의 포기"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모국과 모국어에서 벗어남으로써 태어나면서부터 나를 얽매고 있던 다른 억압들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성별로 인한 억압, 출신으로 인한 억압, 학연과 지연으로 인한 억압 등등...나에게 모국어를 제공해 준 사회가 준 억압들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자유를 얻었다. 정말로 역설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가장 근본적인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더 큰 자유를 얻었다는 그 자체가 말이다. 이 역설때문에 파리에 온 1년 동안의 나는 그 동안 나를 옭아매던 억압들을 떨쳐내고 새로운 계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나름 발전한 인간상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잠깐 해본다. 더불어 앞으로의 나 역시 최근 1년 간의 나 만큼이나 긍정적인 변화를 겪는 사람으로 남기를 살짝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