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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 : 살다/彿國記

현실같은 악몽, 악몽같던 현실이 교차하던 이틀을 보내고








 뭐라고 운을 떼어야 할 지 모르겠다. 연초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13일의 공포'라는 관용구는 현실이 되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이게 정말 현실인지 악몽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아니,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이것은 현실이라기엔 너무 잔혹하고, 끔찍하고, 그리고 있어서는 안돼는 일이었다. 


 참사 발생 당일부터 오늘 아침까지, 꼬박 이틀 밤을 새하얗게 애 태우며 지새웠다. 집 앞의 대로변을 지나는 경찰차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에 놀라 뉴스를 켜자 참극이 벌어지고 있었고, 학생조합원들의 문자를 받고 자정부터 새벽까지 서로의 안위와 소재를 확인하느라 비상연락을 돌렸다. 참극이 일어난 장소 근처의 바에서 기타리스트로 일하는 친구가 늦게까지 답장이 없어서 모두가 가슴을 졸이고 있던 와중, 새벽 4시가 다 되어서 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총격 소리를 듣고 바 안에서 모두가 대피해있느라 답을 일찍 못했고 자신은 무사하다는 그 메시지를 받는 순간, 한번에 긴장이 확 풀리면서 마치 혈관에 마취제가 녹아드는 것 같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전화를 걸어서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를 듣고 페이스북에 서로가 안전함을 태그하는 것을 알리는 진동이 울리는 와중에도, 싸늘하게 식어서 얼음장처럼 굳어진 뇌는 원래대로 돌아올 줄 모르는 것 같앗다.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낭트, 뚜르, 스트라스부르,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한국, 일본 등...파리 바깥에서 날아오는 연락들을 받으며 내가 안전함을 알리느리 이틀 밤을 꼬박 뜬 눈으로 지냈다. 더불어 지금까지도 소셜 네트워크 연락망엔 실종자를 찾는다는 포스트가 올라오고 있다. 


 여러모로 심란해서 생각도 정리가 전혀 안 되는 지라 언어도 중구난방으로 흩어진다. 마치 작년 4월 처럼. 꽃이 한창이던 시기에 어쩌다 병원 신세를 져야했는데 그 때 300명의 학생들이 수장되고 있을 때에도 그저 잠깐의 악몽이라고 멍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눈물도 안나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싸늘게 뇌가 식은 채로 얼어붙는 감각을 느꼈었는데 지금 딱 그때와 똑같은 감각을 온 세포에 새기고 있다. 차라리 현실을 부정하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나쁘지 않으련만 애석하게도 현실은 현실이다. 참사 현장에서 2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일하던 친구가 살아 돌아온 것도, 현장 바로 앞에 사는 친우들이 요행히 불운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더불어 수많은 사람들이 비극을 당한 것도 모두 현실이다. 운이 좋아 참극을 피해갔어도 어쨌거나 내가 사는 곳에서 벌어진 일이고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고보니 서울에서는 또 다른 테러가 자행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쪽에서는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 만행을 저지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어쩌면 특정 지역이나 세력의 문제를 넘어 전 지구적으로 지금 이 시대가 혼란의 과도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심란해진다. 이런 세상 속에서, 혼탁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공부를 하고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것이 내가 택해야 할 방향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당황스럽고 두렵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일상을 지속시키는 것과 극단주의에 꾸준히 반대하는 것 밖에는 없다. 더불어 이 사건이 특정한 집단에 대한 이유없는 박해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항상 숙지해야 한다. "자유는 테러보다 강하다. 그러므로 극단주의 테러 폭력이 우리의 일상을 훼손할 수 없다"는 파리지앵 친구의 말처럼, 급박한 상황에서도 일상을 유지하면서 살아남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극단주의에 맞선답시고 극단주의를 택하는 괴물이 될 수는 없다. 9.11, 세월호, 샤를리엡도, 그리고 오늘 벌어진 일들....이 모든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선 살아야만 하고, 동시에 살기 위해서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을...아무튼 저는 괜찮아요. 일단은 괜찮습니다. 친구들도 무사하고,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오고 또 중태자가 엄청난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고작이라는 점이 심정을 무력하게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힘을 내는 것만이 최선입니다. "괜찮아요".


 다시 한번 걱정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하고, 파리든 서울이든 어느 곳이든 더 이상 큰 문제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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