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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 : 살다

외국어, 애증의 대상에 대해서

 

 

 

 프랑스어를 배운 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되었다. 대학교 3학년 때 부터 불문학 부전공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였으니...대략 3-4년 정도는 한 셈이다. 처음에는 학교 수업만 들으면서 공부를 하고 자격증 시험도 보았는데, 아무래도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혼자 공부하기엔 다소 힘에 부치는 지라 결국 외부 수업도 들으면서 공부를 병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에 까지 이르렀다.....

 

 사실 외국어를 그리 "잘"하지는 못한다. 단지 배우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어렸을 때 부터 무언가를 시리즈나 종류별로 모으는 그런 기묘한 버릇이 있었는데, 아니 어릴 땐 누구나 다 그런 버릇이 있지. 하여튼 뭔가 이상하다 싶은 수집 욕구가 꽤 강한 편이었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책과 그림, 그리고 언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뭣도 모르던 꼬꼬마 시절에는 공룡 화석을 발굴하거나 우주를 탐사하는 과학자가 되겠다면서 사진이 가득한 과학 서적 세트를 모으는 것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좀 더 크면서 지금의 전공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관련 서적을 사 모으고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열중하게 되었다. 마치 인형을 종류별로 수집하듯이.

 

 고등학교 때는 일본어를 배었었다. 중간에 많이 쉬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나는 일본 소설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일본 관련 서적들을 즐겨 읽는 편이기에 충분한 모티브를 받을 수 있었다. 프랑스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별 거 없다. 고등학교 때 알베르 카뮈와 발자크, 빅토르 위고,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소설을 인상깊게 읽었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꼭 배우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학부 들어와서 레비 스트로스와 마르셀 모스, 페르낭 브로델, 필립 아리에스, 자크 르 고프 등의 프랑스 출신 석학들을 접하게 되면서 더 욕심이 커졌고. 다른 언어들을 배우게 된 계기 역시 그다지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 때 삶의 빛과 같았던 <서부전선 이상없다>, <개선문>, <생명의 불꽃> 등의 걸작을 쓴 레마르크의 소설을 꼭 읽고 싶다는 생각에 독일어를 배우고 싶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을 읽기 위해 러시아어를 배우겠단 생각을 했고, 마르케스의 소설집을 읽으면서 스페인어가 배우고 싶어지고, 홍콩 영화와 중국 고전들을 접하면서 그 쪽 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그런 식으로 점점 확장이 되면서 여기까지 왔다. 물론 영어교육 열풍인 대한민국에 태어난 이상 영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지만, 그래도 영어도 나름 재미있게 배웠고 드라마나 소설들 보는 것도 상당히 좋아한다.

 

 유명한 역사학자이자 문화교류사학자, 작가, 그리고 실크로드학의 대가이신 정수일 선생님은 15개에 이르는 언어들을 구사하는데, 이를 두고 "나를 보다 넓은 세계로 이끌어준 행운의 여신"이라고 표현하셨다. 프랑스 중세사학의 대가이신 자크 르 고프나, 구조사학의 대가이신 페르낭 브로델 역시 독일어, 그리스어, 라틴어, 동유럽 언어들 등을 구사하였다. 중화권 최고의 연기파 배우인 이립군(드라마 신용문객잔의 위공)은 대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표준 보통화와 북경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광동어도 더빙없이 홍콩영화를 찍고, 그 외에 외국어 급의 차이가 나는 각종 대륙 방언들을 무리없이 소화하며 연기에 녹아낸다. 아무래도 역사연구든 문화연구든 예술이든 이를 표현하고 담아낼 수 있는 수단이 '언어'이다 보니 피할 수는 없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재미있다. 정수일 선생님의 말 처럼, 또 다른 세계와 나를 이어주면서 나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마법의 열쇠이기에, 힘들어도 배우는 보람이 있고 즐겁다. 언어를 배워나갈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예쁜 양장본 책을 모아 책장에 꽂아넣는 것 같은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요즈음은 외국어가 정말로 지겹다. 징그럽다. 프랑스어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더 지긋지긋함을 느끼는 줄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는 "언제든지간에 그만 둘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동안 들인 돈과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는 마음에 이만 악 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싫다고는 말을 해도, 결국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도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을 보면 이쪽 분야든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든 나에게 아주 안 맞는 것은 아닌가 보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 안심이 된다. 언젠가 내가 이 글을 부끄러워 하게 되든, 혹은 이 글을 보면서 웃음을 지으며 과거를 회상할 정도의 욍국어 능력을 가지게 되든, 어떠한 쪽이 되든지간에 적어도 공부에 들인 시간 만큼은 후회하지 않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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