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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利 : 생각하다

문명과 삶으로써의 도시 (2) 고찰명, 중국 도시 이야기 & 도시로 보는 유럽 통합사

 

 

 

 아직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 특정한 용어에 대한 정의를 함부로 내리는 것은 위험한 것이란 사실을 잘 숙지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에서 ‘문명을 이해할 때 필요한 키워드’들을 정리해서 도서 속에 드러나고 있는 도시들과 연결시키고자 시도하려고 할 뿐, 문명이 무엇인가 혹은 유럽이나 중국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함부로 내리지 않고자 한다.

 

 유럽과 중국이라는 두 상이한 문화권을 이루는 공통적인 키워드를 뽑자면 바로 ‘통일성’‘다양성’이 아닐까 싶다. 언뜻 보기에는 상이한 것처럼 여겨지는 이 두 가지가 공존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하면서 지금의 두 거대한 문화권을 아우르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문화권이 보이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여러 가지 공통 요소를 가지고 상호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낸 유럽이지만 지금은 각양각색의 국가로 쪼개져 있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구성 체계를 가진 중국 대륙은 통일된 하나의 국가 체제 하에 일률적으로 묶여져 있다. 통일성과 다양성이 혼재되어 역사적 발전을 거듭해왔어도 그 결과는 매우 상이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에 흥미롭다.

 

사실 이 책들은 한권 내에 여러 도시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깊이 있는 분석보다는 대략적이고 개괄적인 내용들을 위주로 다뤄 살짝 겉핥기 같은 느낌을 주긴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앉아서 읽어볼만한 이유는, 도시 하나하나에 담긴 키워드들을 차례대로 연결하다보면 그동안 뭉뚱그려서 간과하고 지나갔던 점들을 스스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혹은 ‘중국’이기 이전에 보통의 사람들이 삶의 공간으로 영위하는 장소로써의 도시들의 모습을 통해서 보다 일상적인 관점에서 문명과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유럽 대륙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시 지중해와 알프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독교’와 ‘근대성’이 아닐까 싶다. 카톨릭, 그리스정교, 루터파, 칼뱅파 등등 교리와 의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고 과거 반목을 했을지라도 어쨌거나 유럽 대륙을 이루는 종교적‧정신적 근간은 기독교이다. 이런 기독교를 전달시켜주고, 기독교 이전에 유럽 대륙에 통일 의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기원을 제공한 그리스 문명과 로마제국을 잉태시켜준 지중해, 그리고 ‘문명’으로 대비되는 지중해 지역 유럽과 대치하기도 융합하기도 하면서 현재의 유럽을 이룬 근대적 개념들을 만들어낸 알프스 산맥 이북의 유럽이 유럽을 이루는 역사지리학적 요인이다.

 

 중국의 경우는 ‘황하’와 ‘장강’이라는 두 가지 지리적 구조가 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을까 싶다. 중화사상이라는 중국적 세계관을 잉태하고 중국의 권력 쟁탈 무대가 된 황하 유역, 그리고 변방에서 중국으로 편입되면서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인구를 부양하고 학문과 문화를 꽃 피울 수 있는 자양분을 마련한 장강. 남선북마(南船北馬), 남권북퇴(南拳北腿), 남상북항(南狀北杭)등의 성어들이 말해주듯이 남방과 북방이라는 상이한 두 가지 거대한 대립구조와, 이를 아우르는 통일성간의 긴장을 통해 지금의 중국이 형성된 것이다.

 

 자, 이렇게만 보면 상당히 애매할 것이다. 도대체 도시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문명의 구조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는 것일까? 바로 ‘네트워크’이다.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도시들이 모여서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두 문명을 만들고 오늘날을 만들었다.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단 하나의 단일 요소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하물며 문명과 국가는 더더욱 이나 동일한 것이 아니다.

 

 우선 유럽을 예로 들어보자. 사실 ‘통일된 하나의 유럽’이라는 개념은 로마 제국에서 비롯된 것이다. 로마 멸망 이후에도 샤를 마뉴를 비롯한 수많은 제왕들이 로마의 제위를 이었다고 자처했으며, 나폴레옹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처럼 제국을 건설하고자 영국을 정복하고자 했고, 히틀러 역시 로마 제국을 모델로 한 게르마니아 세계 제국을 구상했었다. 여기에 중세 시대를 거치면서 기독교라는 공통의 정신문화가 더해져 현재의 통합 유럽을 구상하는 구심점이 되었다. 실제 당시의 유럽 사람들에게 ‘당신은 어디 사람입니까?’라고 물어보면 ‘나는 로마인입니다’라고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만큼 하나의 유럽이라는 의식은 꽤 강력한 것이었다. 허나 각 국가별로 왕정이 강화되면서 중세의 통일적 체제는 국가 단위로 쪼개지게 되고, 이는 근대에 이르러 더욱 강해지면서 지금과 같은 완전한 각개 국민 국가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유럽이라는 대륙은 공통분모를 공유하면서 동시에 개별성과 개별의 자유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국가가 한 대륙 안에 공존하는 상태로 귀결된 것이다. 이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유럽의 도시들이 보여주고 있는 성격과 네트워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로마라고 하는 유럽 통합의 원조 상징 격 되는 도시부터 근대의 최첨단을 달리고 유행을 주도했던 런던, 파리, 여기에 21세기 들어서 주목받는 신흥 도시들과 각 도시들 간의 네트워크를 연결 짓는 소도시들이 가세하면서 ‘유럽적 연결망’이 형성된 것이고, 바로 이 연결망이 도시들이 개별성을 유지하면서도 유럽이라는 공통적인 카테고리 하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아마 이 연결망이 없었으면 소도시들은 물론이고 파리나 런던, 베를린 등과 같은 대도시들까지도 그저 선 없이 고립된 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고로 유럽의 도시와 도시 사이를 잇는 연결망을 통해 도시의 역사를 볼 수 있고, 동시에 그 도시를 만든 통합 유럽의 과거와 앞으로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중국의 경우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물론 문명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선 동일한 선상을 유지하고 싶지만, 지리적 조건이 유럽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허나 확실한 것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명은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도시들로만 대표될 수 없다는 점이다. 한 성이 국가 규모인 것으로 생각하면 각 성의 중심을 이루는 도시들이 점처럼 모여서 정치적으로는 베이징을, 경제적으로는 상하이를 정점으로 선을 이루어 중국이라는 면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겠다. 국민당의 장제스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임시정부의 수도였던 남경에만 집착했던 나머지 패했고, 그와 달리 거대한 공룡 대륙의 다면적인 면을 이해하고 내륙의 농촌에서부터 전선을 직접 만들어나간 마오쩌둥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이 현상은 중국이 단순히 한 두 개의 도시로만 대표되는 단순한 나라가 아니라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 나라이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라는 푯말 아래 수많은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구심력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이 유럽과 매우 대조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차이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유럽이든 중국이든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물을 확보할 수 있고, 교역 네트워크의 이점을 지닐 수 있는 곳에 대도시가 발달하였다. 또, 도시는 국가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때로는 국가와는 별개로 스스로를 고유의 공간으로 탈바꿈함으로써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가 되기도 했다. 런던은 산업혁명과 차티스트 운동을 이끌어냈고, 파리는 대혁명과 사회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었으며, 베를린은 21세기의 새로운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상해는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중국 변화의 선봉에 섰으며, 창사와 우한은 신해혁명을 통해 전통왕조의 문을 닫았고, 쑨원과 홍수전을 탄생시키며 근대 중국사의 광풍을 유도한 광저우와 선전은 현재 중국의 고속 성장을 이끌며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 모든 현상들은 도시라는 작은 울타리 단위가 나비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을 증명해준다.


 다만 특이한 점을 미리 메모해두자면, 역시 북경서안이 굉장한 특수 케이스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세계의 거의 모든 대도시들, 특히 수도는 무조건 강이나 하천을 끼고 있다. 도시의 발달과 물자유통, 식수원 확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사막의 도시들도 오아시스를 바탕으로 발달 되었고, 스페인 침략 이전 아메리카 역시 호수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지만 북경과 서안은 말 그대로 물이라는 요소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거대한 성벽과 인구밀집지역으로 이루어진 인공적인 도시이다. 대도시가, 그것도 오랫동안 수도역할을 한 도시가 이와 같이 물이라는 요소가 전무한 인프라 속에서 그 지위를 유지한 것은 상당히 보기 드문 일이므로 주목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또 특별한 점은 변화의 광풍 속에서도 비교적 보수적인 지위를 유지하는 기간이 상당히 길다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 수도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중산층이 형성되면서 변화를 유도하는 젊은 도시가 되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위치를 점하기 마련인데 북경과 서안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사항들이 중국과 유럽의 차이점을 드러내주고 동시에 중국 대륙이 지니는 독특한 구조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도시로 보는 유럽 통합사>는 ‘네트워크’와 ‘길’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각 도시의 역사와 유럽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정리하는 책이고, <고찰명: 중국도시이야기>는 한국인에게 친숙하지 않은 중국의 다양한 도시들을 소개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편견을 벗기고 중국이라는 복합문명이 지닌 다중적인 면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를 보면서 이 둘을 같이 읽어 봄으로써 우리가 일상을 영위하는 ‘도시’라는 공간을, 우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두 문명권으로 확대해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