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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利 : 생각하다

그들의 내밀함이 곧 나의 내밀함이니,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 중국의 민가를 기행하다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

 

다큐 PD 왕초의 22000 킬로미터 중국 민가기행

윤태옥 지음, 한동수 감수, 미디어 월 출판(2013)

 

 

 

 

"일반 중국인들의 실제 삶은 시사적인 관점으로 취합한 뉴스와는 꽤 거리가 있다.

(중략) 우리가 이웃으로 살아야 하는 중국인들의 대다수는 바로 아파트나 평방에 사는 이런 사람들이다."

 

 

 

 흔히들 가깝지만 알지 못하는 나라. ‘중국’을 수식하는 말로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을 없을 것 같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정치 및 경제 측면에서나 한반도와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온 지역이 바로 중국 대륙이다. 이는 아마 더 강조해봤자 입만 아프고 진부한 사실일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이 과연 중국대륙의 실제와 얼마나 맞닿아 있을까?

 

 사실 이 책은 그렇게 ‘학술적’이거나 ‘전문적’인 책은 아니다. 서문과 에필로그에서 저자 스스로가 밝혔듯이, 지극히 주관적이며 때로는 감상적이기 까지 한 기행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꽤 읽을 만한 것은 바로 초점을 두고 있는 ‘시각’이 돋보이기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다들 아시다시피 여행출판 시장은 이미 레드 오션을 넘어선 포화 상태이다. 거기다가 ‘악화의 양화 구축’ 현상까지 두드러지면서 좋은 여행기들은 어설프게 사진과 싸구려 감성팔이로 떡칠한 책들 사이에 묻혀버리고, 이에 따라 독자들 역시 전반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출판물들로부터 발을 돌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기행문이라기엔 너무 전문적이고, 전문 서적이라기엔 너무 감상적이다. 하지만 책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집’과 ‘삶’은 여행자가 쉽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읽을 가치가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국의 집’이란 어떤 것일까? 한번 들어 간 순간 나오지 못할 것 같은 금지된 도시 자금성? 천혜의 요새이자 철옹성인 산해관? 허나 이런 것들은 ‘집’이 아니다. 꿈틀거리는 용과 같은 굵직한 역사의 흔적이기는 해도, 그 거대한 역사라는 물줄기 속에서 살아간 ‘보통 사람들’의 집이라 할 수는 없다. 책은 중국의 민가들을 보면서 대륙과 역사라는 거대한 폭풍 아래서 근근이 살아간 ‘보통의 중국 사람들’의 삶에 집중하며 우리에게 ‘중국’이라는 땅의 의미를 재조명해주고 있다.

 

 ‘중국’과 ‘중국사람’은 다르다. 마찬가지로 ‘북방’과 ‘남방’은 다르다. 중국 관련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다 보면 북방과 남방을 비교하고 대립시키는 성어들이 많은데, 이는 그만큼 중국이라는 나라가 거대한 대륙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거대한 만큼 하나의 키워드가 물줄기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함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 황하로 대표되는 ‘북방’과 장강으로 대표되는 ‘남방’이라는 키워드 내에서도 갖가지 다양함이 존재한다. 북방에서도 권력의 중심지면서 도시 서민들의 거주지인 북경, 거친 황야와 유목민족의 강역이던 만주 동북지방과 내몽골, 그리고 전란과 사막의 연속이던 변경의 서북 지방은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어 단순히 이 모든 지역들을 북방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남방 역시 마찬가지이다. 개항 이후 동방의 진주로 성장하여 국제도시가 된 상해, 장강 하구의 전통적인 부촌이던 절강과 강소 지방, 험준한 산악지대에 위치한 안휘, 바다로 열려져 있어 화교의 기원이 된 복건과 광동, 그리고 다양한 소수민족이 사는 내륙의 오지 마을들과 티베트 까지. 마치 중국이라는 나라는 각양각색의 재질과 색감, 크기의 천들이 묶여서 이루어진 퀼팅 보자기 같다.

 

 자, 이만큼 각 지역의 특성이 뚜렷하게 다른데, 하물며 각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다르겠는가. 다소 서툰 면이 있지만 이 책이 그래도 ‘괜찮은 책’이란 호칭을 들을 만 한 이유는 이러한 지극히 사소하고 당연하면서도 지나치기 쉬운 부분에 관심을 기울기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건축학자도 민속학자도 아닌 저자가 이렇게 기나긴 여정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큐멘터리 PD라는 그의 직업 역시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카메라들이 취하던 뷰포인트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것에 카메라 초점을 맞췄다는 부분이 상당히 인상 깊다. 가장 일상적이고 중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그 존재감을 잊어버리는 존재인 ‘집’에 초점을 맞추면서 중국과 중국인들을 보고 있다. 가까운 나라이기에 더 강하게 쓰일 수밖에 없는 편견들을 제지하고, 그들 역시 ‘사람’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며 하나하나 베일을 벗겨낸다. 전문가가 하면 지나치게 무겁고, 여행자가 보기에는 너무나 지나치기 쉬운 주제를 중간자의 입장에서 차분하고 솔직하게 풀어내는 점이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이완시킨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대충 흘려보내던 각종 무협의 배경들이 보다 입체적으로 와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리국의 풍경, 묘족들이 활약하는 소호강오 속의 집들, 용문객잔이 자리한 서쪽 변경의 집, 강남의 우아한 건축, 그리고 남방과 북방 대륙 전역을 휩쓰는 거대한 역사의 물결과 그 속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생생하게 눈앞에 살아난다. 아마 중국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무협을 즐기기 위해서는 한번 쯤 읽어야 하지 않을 까 싶다. 나아가 가깝기에 더 복잡한 한일 관계와 여러 가지 모순점들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같은 21세기 사람들’로써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용히 제시하고 있다. 어쨌건 중국인이건 한국인이건 모두 ‘집’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이기에,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해 각자의 삶을 살아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