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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 : 살다/彿國記

Bienvenu!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때에도, 비행기를 타고 나서도 그다지 실감은 하지 못했다. 그냥 내가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떠난다는 것 정도만 실감했다. 이륙할 때 드는 묘한 느낌 때문에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잔뜩 긴장한 티를 내다가 아사다 마오를 닮은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 언니와 눈이 마주쳐 웃음이 터져버렸을 때도, 기내식을 먹으면서 목적지까지 몇 시간 남았는지 체크를 할 때도, 내가 한국을 떠난다는 사실을 그다지 실감하지는 못했다. 아마 장본인인 나 보다는 부모님이 훨씬 걱정을 많이 하고, 불안해하지 않으셨을까 싶다. 물론 이건 그 때 뿐만이 아니라 체류한 지 4일이 넘어가는 지금에도 해당되는 이야기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샤를드골 공항에 갓 도착해서도 그다지 실감이 나진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간판들에 한국어나 영어가 쓰여 있지 않다는 것을 간신히 인식했을 때에도, 그냥 ‘아, 내가 도착은 했구나’하는 생각 정도밖에 들지 않았다. 단지 정신없는 상태에서 짐을 찾고, Terminal 1의 출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을 뿐이다. 나를 찾으러 나왔을 두 사람을 찾기 위해 감기는 눈을 애써 뜨면서.

 

 내심 내가 운이 꽤 좋다고 생각한다. 공항까지 나를 찾으러 온 사람이 둘이나 되었으니까 말이다. 원래는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왔었던 내 프랑스 친구 쥐스틴의 오랜 친구인 발드릭이 날 찾으러 온다고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아버지가 아는 분의 부하직원 되시는 분께서도 날 찾으러 오겠다고 하셔서 같이 동행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다소 걱정이 많긴 하지만, 어쨌거나 한국 사회에서 딸이라는 존재란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는데다가 낯선 곳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꽤 큰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군말 없이 두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나오자마자 바로 만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쥐스틴의 친구인 발드릭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는데, 내 이름을 든 종이가 아니더라도 '어쩐지 쟤 일 것 같아!'라는 느낌으로 한 눈에 알아봤다. 물론 양복을 입은 번듯한 비즈니스맨 같던 사진보단, 캐주얼하게 입고 차 열쇠를 들고 있던 실물이 훨씬 더 어려보였다. 아, 실제로 나보다 어리겠다. 단지 새파란 눈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서 파리 시내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보통 버스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급행전철 RER을 타고 이동한다. 하지만 절대로 RER 여자 혼자서 타지 말라는 말들에 겁을 먹어서 픽업해줄 사람을 미리 구했었는데, 그게 바로 쥐스틴이 소개해 준 발드릭이다. 한국만큼 치안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던 데다가 짐을 다 들고 이동하는 게 꺼려져서 여차저차해서 도움을 받게 되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장거리 비행으로 정신이 나가있는 상태에서 혼자 이동을 했다면....정말 상상도 하기 싫어진다. 게다가 처음 만났는데도 원래부터 알던 사이인 듯이 대해주던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긴장도 전혀 풀리지 않았을 터 이고, 단기 임대를 한 숙소 주인과의 대화 역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나 혼자 했다면 진짜 지옥의 열차를 탔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뜩이나 피곤해서 한국어로 얘기해도 말인지 막걸리인지 구분이 안 가고 나오는데 프랑스어라고 제대로 나올 리는 더더욱 없으니까. 그래도 파리의 야경은 나름대로 볼만 했다. 8시인데 거리에 사람이 적다는 점이 꽤 놀랐지만, 딱 봐도 오래된 듯한 건물과 에펠탑이 조화를 이루는 야경은 참 오묘했다. 박제된 도시인 것 같지만 곳곳에 묻어있는 때들이 사람 냄새를 느끼게 한다고 해야할까. 사상검열에 걸려서 파리로 망명을 했던 마르크스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집 주인인 린다와 이야기를 하고, 린다는 동행인과 함께 떠나고 다른 분도 약속이 있어서 떠난 와중에 발드릭과 단 둘이 남아 있을 때 문제가 터져버린 것이다. 일단 핸드폰도 전혀 안 되는데다가 도착한 시간이 금요일 저녁이라서 주말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인터넷이라도 연결을 해야 하는데, 백번을 시도해도 와이파이가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 때 나는 깨달았다. 조금이라도 연락이 안 되면 걱정하는 부모님은 둘째 치고, 일단 내가 타국 땅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다른 사람과 연결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하다는 것을. 그리고 허탈하게 머리를 쥐어 뜯는 날 보고, 발드릭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C'est Paris, bienvenue à Paris! (이게 파리야. 파리에 온 것을 환영해!)”

 

그제서야 나는 내가 파리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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