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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 : 살다/彿國記

La folie (2)

 

 

 

 그렇게 해서 나는 두 친구들을 우리 집에 재우면서 동시에 파리 관광을 하기 시작했다. 혹여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원래 방 주인에게 이를 귀뜸해주고 싶어도 잠시 참아주시길 바란다. 사람이 다 그럴 수도 있지 너무 매정하게 구는 거 아니다.

 

 사실 파리에 왔어도 제대로 관광지를 다닌 적은 없었고 또 사람 많은 곳을 귀찮아하는 성격 때문인지 그럴 마음도 썩 들진 않았었는데, 티모는 파리가 처음인지라 결국 고전적인 관광을 하게 되었다. 유럽 애들이 확실히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유럽의 대도시들을 다 가본 애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착한 아침, 티모가 나에게 어디 괜찮은 곳 없냐고 하기에 “글쎄...나도 여기 온 지 2주 밖에 안 돼서 모르겠다”고 하자 “이봐 난 파리에 도착한 지 이제 겨우 2시간이야!”라며 펄쩍 뛰었을 때 새삼 그것을 느꼈다. 그래, 네가 그 유명한 독일 촌놈이구나....라기보다는, 파리나 런던같은 대도시가 없고 시골과 도시의 경계선상에 있는 중소도시 위주로 이루어진 독일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이런 곳이 낯설고 신기할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중세에도 독일은 독일이고 파리는 파리였는지 조금은 감이 온다. 더불어 유럽의 국가들 중 독일이 가장 중세체제가 많이 남아있다는 말에 대해 감이 오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궁금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난 알지 못했다. 내가 또 다른 불법을 자행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파리에 가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이 바로 ‘자전거’이다. 벨리브(Velib)라고도 불리는 공공 자전거는 곳곳에 정거장이 있고, 이용료도 저렴한데다 워낙 파리 시내의 자동차 교통이 워낙에 지옥 같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벨리브를 주요 이동수단으로 이용한다. 쥐스틴 역시 벨리브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것을 선호하고 길들을 다 꿰고 있는데, 문제는 내가 자전거를 못 탄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자전거 타다가 엎어져서 크게 다친 이후로는 자전거를 못타는데, 셋이서 벨리브로 이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 결국은 내가 티모랑 같이 자전거를 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아무래도 키 160의 소녀보다는, 180중반의 남자가 훨씬 힘이 세니까 두 사람을 태우고 자전거를 밟을 수 있다는 당연한 결론 하에, 벨리브 두 대로 사람 셋이 이동하는 것으로 말이다.

 

 

 

 

 

 

 원래 벨리브는 1인용이기 때문에 1대당 한 사람만 탈 수 있다. 두 사람이 타는 것은 불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위험하니까. 그러나 이곳은 파리이다. 걸리지만 않으면 과속을 해도 되고, 빨간불에 당당히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도 많다. 파리에 온 이상 파리의 법을 따라야 하는 법, 그리하여 나는 티모의 자전거 뒤에 달라붙어 이동을 하게 되었다. 쥐스틴이 앞장서서 안내하고, 둘이 따라가는 형상. 파리는 상당히 개인주의적이고 남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라지만, 나는 티모와 벨리브 덕분에 3박 4일 동안 1년 치의 시선과 관심을 한꺼번에 받은 것 같다. 가뜩이나 학과에 아시아인 나 혼자라서 시선 집중인데 학교 밖에서도 이만한 관심을 받게 될 줄이야! 술 먹고 밤에 객기부린 것도 아니고 백주 대낮에 1인용 자전거에 두 사람이 올라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시선을 집중시키는 일이다. 게다가 동성끼리도 아니고 키 차이가 20센티 이상은 나는 남녀가 타고 있으니 더더욱 구경거리 였을 것이다. 아마 자전거를 타고 가는 도중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내던 사람들은 나와 이 녀석이 커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확실하다.

 

 

 

 

 

 

 생각해보니 자전거를 타고 꽤 긴 거리를 이동했다. 첫날에 잠깐 아파트 보러 도메닐 부근에 갔다가 그곳에서 바스티유 광장까지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는데, 한번은 내가 티모를 놓치고 그대로 길가에 엎어져서 다들 당황했었다. 나도 놀랬고.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 바스티유에서 생 미셸, 노트르담, 생 루이 섬, 시테섬 등등 파리 한복판을 자전거로 질주했다. 그 다음날은 다시 파리 한복판에서 동역, 북역을 제치고 몽마르트 입구까지 자전거로 질주했다. 동역, 북역은 정말 위험하고 무서운 곳인데 그런 곳도 자전거에 붙어서 지나가니까 나름 재미는 있더라. 얼마 전에 헤센에서 아는 분이 오셔서 동역 갔을 때 진짜 무서웠는데, 그 때는 엄청나게 무서웠던 동역 주변의 색깔 짙은 남자들과 양아치들이 이번에는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 때는 날 흘끔 보던 양아치들은, 내가 티모와 함께 자전거에 올라 도로를 질주하자 역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가난한 이민자 양아치든, 중산층의 안정적인 파리 시민이든 신기한 것을 보면 신기해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역시 인간이란 보편적 감정을 공유하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피부색이나 경제력의 차이를 넘어서 말이다. 물론 나의 헛소리이다.

 

  이어서 다시 13구의 몽쥬 광장에서 몽파르나스까지 자전거로 고속 질주했다. 파리가 아무리 서울보단 작은 도시라고는 해도 긴 거리이다. 당연하다. 쥐스틴이 파리에 와서 1달 동안 다닌 거리와 1달동안 한 체험을 우리는 3박 4일만에 몰아서 했으니까 양이 적을 리가 없지. 그리고 그 이동거리에 비례해서 3박 4일 동안 파리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관심은 다 받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벨리브도 꽤 무거운데 거기다 내 무게까지 달고서 고속질주를 한 내 친구 티모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후리후리하고 날씬한데도 무지막지한 힘을 내는 그를 보니 역시 게르만족의 유전자는 무섭다는 생각도 해본다. 왜 로마인들이 게르만족을 보고 덜덜 떨었는지 이해가 간다. 로마인이든 비잔틴인이든 그 무시무시한 체격을 지닌 사람들이 물밀듯이 제국 국경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 무서웠을 것이다. 유럽에 있으니까 확실히 한국에 있을 때보다 인종과 민족의 차이를 더 실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 날 그 상태로 샹젤리제 거리 가로질러서 엘리제 궁 앞을 지나가다가 경찰에게 경고 받은 것은 유쾌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티모가 자전거든 자동차든 모범 운전을 하는 얌전한 드라이버인데다, 파리의 경찰아저씨들은 친절해서 잘못했다고 하면 한번은 봐주신다는 점이다. 결국 엘리제궁 앞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걸어가야 했다. 물론 엘리제궁이 멀어지는 순간 다시 둘이서 쥐스틴을 따라 질주하기 시작했지만. 파리는 자전거로 이동하면 정말 편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운전에 대해서 안 좋은 기억만 연속으로 축적했던 지라 아직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딱 두 개인데 바로 물이랑 운전이다.

 

“너 말이야. 파리에 살면 자전거 정도는 탈 줄 아는 것이 좋아.”

 

 마지막 날, 라파예트 백화점을 나와 커피를 마시면서 티모가 나에게 충고를 하였다.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여전히 엄두는 못 내고 있다. 오늘도 나는 열심히 지하철을 타고 걷고 걷고 또 걷는다. 파리가 걷기 좋은 도시라는 것이 그나마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