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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 : 살다/彿國記

La peau de Paris (파리의 피부)

 

 

 

 

 

 

 

 

 사실은 도착하자마자 시내도 돌아다닐 겸 은행 통장을 개설하려고 했지만 임시숙소인지라 거주 증명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게다가 토요일 오후인지라 영업을 하는 곳이 없었고. 신기했던 것은 은행이나 영업점들이 토요일 오전에는 영업을 하지만 월요일까지 쉰다는 것 이었다. 근무시간이 생각 외로 짧고, 특히 은행의 경우는 미리 예약을 잡고 가야 한다는 점이 주의사항인 듯. 이런 사소한 면에서 한국과 상반임이 새삼 느껴지기도 한다. 소비자, 사용자 위주의 문화이냐 노동자 위주의 문화이냐가 꽤 큰 차이인 듯. 무엇이 더 바람직한 지는 조금 더 경험을 하고 생각을 해봐야 겠다.

 

 덕분에 둘째 날에는 발드릭과 함께 신나게 시내구경을 했다. 웬만한 관광지는 다 돌아다닌 것 같음. 에펠탑, 샹젤리제, 루브르, 오르세, 노트르담 등등. 단 들어가 본 것은 노트르담 뿐 이고 나머진 그냥 지나다녔다. 더불어 학교도 한 번 들러보고. 시차적응도 될까 말까한 상황에서 신나게 돌아다녔는데, 그래도 생각보단 많이 피곤하지 않았다. 무슬림이나 아프리카계 깡패애들도 있긴 하지만 나는 발드릭과 함께 있어서 그랬는지 플러팅이나 시비를 거는 애들은 없었다. 발드릭이 나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고, 지하철 수동문 여는 것도 시범을 보여주고 하는 것을 보면 딱 봐도 초짜 티가 났을텐데 말이다. 역시 7년차 베테랑 파리지앵과 함께 한 것이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셋째 날에는 아버지랑 잘 아시는 분이 파리에 오셔서 어른들과 함께 이곳저곳 돌아다녔고. 어른들이긴 하지만 다들 지적이고 조용하셔서 꽤 즐거웠다. 아저씨라도 다 똑같은 아저씨가 아닌 것 같다. 누구는 개저씨가 되고, 누구는 신사가 되고.

 

 이제 갓 파리 생활을 시작한 초짜이지만, 얼마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강렬하게 박힌 파리의 인상은 ‘걷기 좋은 도시’라는 점이다. 더불어 다소 불편한 면이 있어도 사람냄새가 나는 도시이기도 하고. 오래된 도시라 그런지 때가 많이 묻어있고, 길도 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사람 위주라는 느낌을 준다. 고즈넉하게 걷기도 좋고, 얼핏 보기엔 무채색 같지만 듬성듬성 다양한 표정들이 묻어난다. 사람들의 표정도 훨씬 편안하고,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짓고, 아이들은 일찍 퇴근한 부모님들과 함께 공원을 돌아다니고, 나이든 사람들도 평온한 미소를 입에 담고 있다. 거리는 살짝 지저분하고, 석재 건물들에는 먼지와 때가 껴있다. 심지어 요즘은 날씨가 음울해서 그냥 회색 같다. 허나 절대로 단조롭지 않다. 좁은 골목 사이사이로 보이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색이 다양한 톤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때로는 그로테스크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사람 냄새가 난다. 인간적이다. 무표정해보여도 사실은 이것저것을 다 담고 있는 이 도시의 표정은 아마도 몇 년이 지나도 내게 강렬한 첫인상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지하철을 보면 더욱 서울과 대비된다. 지하철 시설 자체는 서울이 훨씬 현대적이고 깨끗하지만, 서울의 지하철 몸통 속에 애써 몸을 집어넣은 사람들의 표정에는 피곤과 근심이 가득하다. 이곳의 지하철도 항상 만원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보단 덜 피곤해보이고 평화로워 보인다. 퇴근도 6-7시면 다 하는 것 같고, 또 그만큼 과로에 시달리지 않으니까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생각 외로 사람들은 노약자들에게 자리를 자연스럽게 양보해준다. 하지만 나이나 신체를 위세로 삼아 내 자리이니 일어나라고 땡깡을 부리는 사람도 없다. 서울이 결코 파리보다 물질적으로 빈곤한 도시는 아닐 텐데 어째서 사람들은 안팎으로 빈곤에 시달리는 것일까....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나는 이곳이 꽤 마음에 든다. 도시의 색이랑 표정이 참 편안하다. 관광객들도 많고 상업에 집주오딘 중심부 보다는, 주거지역이나 작은 거리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표정이 좋다. 마음이 편하다. 모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작금의 반도 같은 생지옥에서도 버텼는데 이곳을 못 버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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